손등에 가까스로 심겨진 주사바늘의 끝을 감각하며 당신을 위해 편지를 씁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내 의식儀式이 얼마나 거창한지요.
첫 번째, 심호흡을 크게 하고요.
두 번째, 기도해요.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
내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거나
초점이 흩어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 짧은 편지를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잠시만이라도
내가 구토를 견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속이 뒤집힐 듯한 이 역한 약냄새가
영화 빅 피시에 나오는 수선화 향으로
달리 맡아지기를 최면해 주소서
졸음이 가득한 나의 몸,
이 건조한 흙덩이가
라벤더를 뒤덮은 상쾌한 대지가 되게 하시어
내 영혼이 그 위를 맨발로 내달리게 하소서
바람에 펄럭이는 나의 긴 치맛자락과
나의 긴 머리칼의 물결침이
나의 노래와 나의 춤이 되게 하소서
내가 흠모하는 당신이
나의 순수 앞에
오히려 무릎 꿇는
꿈결 같은 일들이 펼쳐지게 하소서
나의 무지無知가 당신의 깨달음이 되게 하소서
내가 당신의 심장소리에
나의 숨소리를 기대게 하소서
모든 게 헛될지라도
이 편지에 담긴 내 영혼만은 진실되게 하소서
짧은 기도 후에 마지막 세 번째,
이제 나는 편지를 쓸 겁니다.
주의사항, 눈물 간수를 잘합니다.
편지에 쓴 글씨,
뚝뚝 떨어지는 나의 눈물에
잉크가 번지게 되는 일이 없게 합니다.
당신에게 슬픔이 번지게 하는 일은
내게 오욕汚辱같은 일이랍니다.
편지에 남겨 놓을 말은 거창하지 않아요.
사랑한다고.
그저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