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어느 바닷가 모래 속에 나를 파묻었다. 뒤따라오는 죄책감, 지겨운 한숨, 부질없는 눈물, 거짓된 미소, 잔인한 그림자, 뾰족한 통증, 아물지 못하고 덧나는 상처 따위를 묻었다. 묻어 놓고서야 싸나운 밀물이 쳐들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들어왔다 맥없이 나가 버리는 것들에 휩쓸리지 않기를, 사람들의 발차임에 허물어지지 말기를, 그곳에 언제까지나 안전히 묻혀 있기를 바랐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숨만 붙어있는 이 공허한 산 송장 껍데기는 어찌할까. 모래를 좀 더 깊이 팔 걸 그랬어. 나머지는 수장시키자. 그 공허한 껍데기가 가벼움에 가라앉지 못하고 둥둥 뜨는 걸 보았다. 나는 베인 상처 없이도 짜가운 바닷물에 온몸이 쓰라렸다. 표류하다 표류하다 물거품과 부디 하나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 역시 욕심이란 것을 안다. 잠시만이라도 나를 떠나 파묻혀 있고, 잠시만이라도 나에게서 멀어져 떠 다니다가 다시 내게 찾아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