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인
서정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옆에서"라는 제목을 주목합니다.
시인은 국화 옆에 있습니다. 그냥 곁에 멀뚱히 선 것이 아니라 국화를 연인 마냥 바라 보고 있습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보면 모든 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꽃이 피기 전의 처음 씨앗이 심겨진 날들과 싹이 자라고 잎이 피고 마침내 꽃이 피어날 때 까지의 숨결을 느끼고 싶지 않았을까요?
사랑하면 모든 일들이 그를 중심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봄부터 울던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마치 국화를 피우기 위한 노래로 들리고 여름 한철의 천둥도 개화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시인에게 국화가 특별했던 것은 누님을 떠올리게 해서 일까요? 사랑하는 누님을 닮아서 국화를 좋아하게 됐을 수도 있고 국화가 주는 느낌 속에 누님이 그려졌을 수 있겠지요.
저는 상상해봅니다. 국화처럼 단아함을 지닌 누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소년이 어느날 누나가 시집을 가게되면서 누나의 빈자리에 그리워하고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국화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고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노인이 지금은 세상에 없는 누나와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국화를 바라보는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 많은 변화를 줍니다. 실제론 꽃한송이 핀 것 뿐이겠지만 그 곁에 있고 싶어지고 그 존재의 현재의 모습만이 아니라 시작과 과정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합니다.
또 우리를 설레임에 잠못들게 할 수 있죠.
시인이 국화 옆에서 그런 마음들을 느낀 것 처럼 우리는 누구의, 혹은 무엇의 옆에 서서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까요?
분명한 건 그런 감정들은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더욱 느낄 수 있게 하고 사랑의 대상이 변화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먼저 변화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