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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말 Sep 23. 2024

서민들의 삶을 그린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하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우리나라 시 중에서 서민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시를 

꼽으라면 단연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이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에 당선작이기도 한 

이 시는 심사평에서도 나타났듯이 

언어를 다루는 기량의 뛰어남과 더불어

삶을 바라보는, 삶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보잘것 없고 작은 간이역에서 

이름도 없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서민들의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청색의 손바닥,

담배 연기, 

그 속에서 또 몇은 그믐처럼 졸고 있는 모습이

대합실 밖 눈송이와 어우러져 

따뜻하면서도 먹먹한 삶의 풍경을 그려낸다.  


사실 이 시는 

어떤 부연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 없는 시다. 

서민들의 삶을 거울처럼 바로 알아볼 수 있고,

어떤 철학적인 의미를 숨기지 않고 있는 시다. 


그래서 이 시는 

투명하면서도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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