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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서

by 정말 Feb 18. 2025

 휴대전화 진동음이 거실 한가운데서 울리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석우의 뒤척거림이 들리는가 싶더니 짧게 끊기는 음성이 반복되다가 멈췄다. 율미는 잠옷 그대로 거실로 나왔다. 차갑고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이제 막 사무실 블라인드를 통과해 기하학적인 빛의 구조물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율미는 금방이라도 완성될 건축물 위를 걸어가듯 길쭉한 발가락에 힘을 주고는 기지개를 켰다. 

 그 사이 세수를 마친 석우는 화요일의 드레스코드 진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걸치고는 서둘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장형식 의장이 실종됐대.”


 금붕어들에게 아침밥을 던져 주려던 율미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먹이를 뿌렸다. 금붕어들은 요란한 물거품 소리를 내며 단숨에 먹이를 해치우고는 율미 앞을 떠나지 않고 다음 먹이를 기다렸다. 그 옆으로 전자레인지가 한동안 위잉거렸고 이어지는 석우의 말은 거실을 부유하다 흩어졌다. 도시락과 텀블러를 챙겨 가방에 넣는 소리, 냉장고 문을 여닫는 묵직한 소리가 멈추더니 율미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안해. 앞으로는 더 단호해질게…….”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율미는 커피잔을 들고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간밤의 비바람 탓인지 들마루에서 커피를 마시려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석우를 향한 원망만 커졌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론을 내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을 알지만, 번번이 약해지는 마음이 문제였다.


 창문 너머로 들어온 공기는 왠지 더 차갑게 느껴졌다. 한여름 매미처럼 온 집안의 창문을 울리는 이 공기는 그녀의 마음까지 찌릿하게 만들었다. 율미는 늑골 깊숙이 공기를 끌어당기듯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 차갑고 투명한 얼음 같은 공기가 몸속을 가로지르는 순간, 정신이 또렷해지며 상쾌함이 밀려왔다.

 그래, 바쁜 일은 걱정을 잊게 한다는 말도 있잖아. 율미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이는 불안을 품은 채 거실과 현관문 사이에 자리 잡은 자신의 탐정사무소 ‘프리즘스튜디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일찍부터 전화할 사람이라면, 푸름일보 유 기자밖에 없다. 아직 언론에 퍼지기 전인가? 검색창에 문화군의회라고 치자 실종뉴스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속보라면 친구도 팔아먹을 사람인데, 헛된 기대를 하다니.    

 매주 수요일 열두 면의 타블로이드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석우에게 속보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마감을 앞둔 주간지 기자에게 일간지 기자가 소스를 준 것만으로도 유 기자는 고향 후배로서, 동료 기자로서 의리를 지킨 셈이다.      


 실종이라. 사건 의뢰가 들어올 수도 있겠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니까. 외출을 하게 되려나? 율미는 옷장에서 즐겨 입는 청색 쟈켓을 꺼내 사무실 의자에 걸쳐 놓고 문화군의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홈페이지는 여느 의회와 다르지 않았다. 블라인드를 올리면 온종일 해를 맞을 수 있는 이 사무실처럼 메인 화면에는 장형식 의장을 포함해 일곱 명의 의원이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율미의 시선이 장 의장에게 멈췄다. 왜소하지만 날렵한 체구, 과장된 웃음이 그의 날카로운 인상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짧고 검은 머리는 이마를 드러낸 채 깔끔하게 빗어 넘겼고, 푸른색 슈트에 검은 구두를 매치해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다음 회기 일정이 고시 공고란에 올라와 있고 한 주민이 ‘에덴빌리지 자연치유특구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하여’ 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판의 최근 소식이었다.     


 율미는 두 평 남짓한 이 사무실이 마음에 들었다. 두 달 전 회사와 집밖에 모르던 집순이 율미가 스무 해나 다닌 법률사무소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석우는 손수 이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러고는 가끔 기사 작업을 할 수 있게 빌려달라고만 했다. 비싼 임대료를 내겠다는 썰렁한 농담을 곁들여서. 

 사무실 역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그들의 삶처럼 단출했다. 대리석풍의 긴 책상에는 컴퓨터와 노트북, 복합프린터기가 다였으며 안쪽으로 책과 사무용품을 정리할 수 있는 흰색 수납장에는 범죄심리학이나 사회학 같은 책들로 가득했다. 

 탐정사무소 오픈 기념으로 석우가 선물해 준 아비스 고사리의 진한 녹색 잎 덕분에 그나마 단출함은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율미는 괜히 먼지 없는 손님용 의자를 툭툭 털어 보고 약속된 만남이라도 있는 듯 정리 정돈이랄 것도 없는 사무실의 상태를 눈으로 점검해 본다. 혹시 고대하던 첫 사건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의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회의록이다. 최근 회의록에 접속해 훑어 내려가던 율미의 눈에 에덴빌리지 자연치유특구 조성사업과 관련한 질의답변이 상당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게시판을 클릭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먹색 트렌치코트를 차분하게 소화한 여자가 서 있었다. 은테 안경은 윤기 나는 단발머리와 잘 어울렸고 흰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어디서 봤더라. 그녀는 율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자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박경희 의원입니다.” 

 아, 방금 봐놓고선. 

 새벽별당 비례대표로 선출된 재선의원으로 지난해 전반기 의장 선거에서 장형식 의장에게 한 표 차이로 탈락한 인물이다. 최초로 문화군의회 여성 의장이 탄생할 것이라며 선거 하루 전 지역 일간지와 석우의 주간지, 인터넷 신문에서 일제히 ‘지방자치 시대, 문화군의회 유리천장 깨지나?’ ‘우먼 파워 기대’ 등등의 제목을 쏟아내게 했던 장본인. 그녀는 미디어에서 보이는 당찬 모습보다는 아담한 체격에 선한 눈매를 지닌 사람이었다.  

 접이식 손님용 의자에 앉아 몇 번 자세를 고쳐 잡던 그녀는 긴 숨을 내쉬며 어색한 기운을 떨쳐내려는 듯했다. 투명한 유리 머그 속 보이차는 자신의 빛을 마음껏 발산했고 아주 잠깐 그녀의 어색한 시선을 묶어두기에 충분했다. 


 율미가 명함을 건네자 탐정이라는 단어에 대한 기대와 의문이 섞인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의장님과는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랐어요. 오빠와 절친이기도 하고. 가능하면 조용히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경찰만 믿고 있자니 불안해서요.”

 그러고는 가방에서 장형식 의장의 선거 공보물을 꺼내 율미에게 내밀었다. 박 의원은 사무실과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주택가에 있어 찾기 어려운 점이 오히려 좋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종 뉴스가 퍼진 지 두 시간도 안 돼 사건을 의뢰하러 온 그녀의 태도는 다소 조급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급한 성격이거나, 아니면 실종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율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혹시 실종과 관련해서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세요?”

 율미의 질문에 그녀는 입술을 굳히다 말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형식 오빠, 아니 의장님이 별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물론 사건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만요.”

 “별거요? 조금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율미는 일단 그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필요한 건 장 의장 실종과 관련된 휴지조각 같은 정보라도 끌어모아야 한다. 운이 좋다면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보석은 발견되는 법이다. 율미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이어리를 펼쳤다.


 장형식 의장의 아내 안수정은 문화농협 상무라는 직함보다 장 의장의 배우자로 더 알려진 박 의원의 여고 선배다. 별거 사실은 군대에 가 있는 아들과 대학생 딸 외에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묵비에 부쳐졌으나 장 의장이 에덴빌리지 본가로 거처를 옮기면서 수행비서가 눈치를 챈 모양이라는 것이 박 의원의 설명이었다.  

 “별거 사유에 대해서 들으신 건 없으신가요?”

 “그건 모르겠어요. 세 번의 낙선을 겪은 뒤에 의원이 되고 재선에 의장까지 돼 수정 선배가 좋아했다고 들었거든요.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별거라니 의아하긴 했죠. 의회 직원들도 아는 눈친데 쉬쉬하고 있는 것 같고.” 

 박 의원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안수정은 남편의 당선을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이른바 ‘안수정 표’라 불린 동정표마저 그녀의 헌신을 증명하듯 적지 않았다.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렇다면 의장에 당선되고 최근까지 그녀의 삶을 흔들 만한 중요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으리라.

 배우자나 연인이 사건의 중심에서 영순위 용의자가 된다는 것은 이제 세상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농협 상무라는 사회적 위치를 지닌 그녀가 남편을 절벽 끝으로 몰아붙였다면 과연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잃을 것이 많아 보였다. 

 현재 안수정은 문화군과 삼십 분 거리에 있는 단촌시의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상태고 장 의장의 수행비서는 지난 연말부터 에덴빌리지로 의장을 모시러 다녔다고 했다.  

 “주변 탐문도 해야 하고, 그럼 금방 퍼질 겁니다. 문화군이 인구 몇십만 도시도 아니고. 아시잖아요.” 

 “그렇겠죠. 지금도 믿어지지 않아요. 작은 시골 의장이 무슨 큰 문제가 있어서 실종이 된 건지. 사람들은 모일 때마다 실종 얘기를 할 거예요. 의원들이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가 되는 걸 즐기거든요. 의원에게 명예의 실추는 사망선고나 다름없어요. 진짜보다 뒷담화와 가짜뉴스가 판을 칠 거고, 어지럽고 흉흉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겠죠.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거대한 늪의 소용돌이요. 궁금해 하셨겠지만 제가 서둘러 사건을 의뢰하러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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