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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

by 정말 Mar 11. 2025


 수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가 저녁까지 이어졌다. 만약 이번 사건이 범죄와 연관이 있다면, 지금 이 비를 반길 사람은 범인 한 명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석우에게서 저녁을 먹고 퇴근하겠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율미는 다이어리를 펼쳤다. 장 의장과 박 의원의 연애사를 기록한 뒤, 언론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푸름일보와 각종 신문 사회면에는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된다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기상청은 내일 오전에 비가 그칠 것이라고 예보했지만 경찰은 계획보다 수색 인원을 두 배로 늘리고, 수색 범위와 기간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율미는 문화군 행정지도를 펼쳐 들고, 만약 사건에 휘말린 것이라면 범인이 범행 장소로 어디를 물색했을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금요일 정상 출근, 오후에 안수정과 통화. 토요일 오후 수행비서와 행사 참여 후 일정 공유. 일요일 통화나 만난 사람 확인 불가. 월요일 오후 실종신고 접수. 화요일 언론 기사화, 경찰 실종사건 전담팀 구성. 수요일인 오늘 수색 시작. 이렇게 타임라인이 그려진다면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일 가능성이 높다. 지도를 보던 율미는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다음 날, 수백 명의 경찰 인력은 우비를 쓰고 수색에 나섰다. 주요 수색 범위는 에덴빌리지 마을과 에코공원을 비롯해 장 의장 집 주변, 취수원 가는 길, 시루산 등산로까지 포함됐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수색은 비가 그친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별 소득 없이 끝났고 에덴빌리지 마을은 취재 인파로 북적였다.


 에덴빌리지 건너편 밧도로 가는 길은 폭이 좁은 다리를 건너 한번 들어가면 돌아서 나와야 하는 원점회귀형 길 좌우로 띄엄띄엄 집들이 있는 마을이다. 원래 밧도마을도 개발형 전원주택 후보지였으나 질질 끌던 보상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문화군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율미의 차는 어라강 진입로 앞에서 멈췄다. 무거운 바리케이드에는 마을 이장의 번호로 보이는 숫자가 적혀 있었고, 문은 반쯤 열린 상태였다.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자 취수원으로 이어지는 돌길이 어슴푸레 보였다.   

 비 갠 하늘 아래 물기를 머금은 억새꽃의 하얀 솜털이 물안개와 뒤섞여 시야를 방해하자 그녀의 시선은 손목시계와 억새밭을 자꾸만 오갔다. 피어오른 물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눈에는 어둡고 깊은 강물만 보였다. 속을 알 수 없는 검푸른 물빛이었다.      

 율미는 가방에서 혜인이 탐정사무소 오픈 선물로 준 망원경을 꺼냈다.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이야.’ 

 안개가 걷히자 율미는 망원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초보자용이긴 하지만 등산로와 연결되는 절벽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어림잡아 다세대주택보다 한 층은 더 높아 보였고 윗부분의 바위는 뭉툭하게 튀어나와 다이빙 도약대를 연상시켰다. 무언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절벽에서 취수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에는 시선을 끌 만한 단서나 증거로 보이는 움직임은 없었다.

 율미는 얇은 패딩 밖으로 나온 후드티 모자를 쓰고는 망원경을 쓴 채 강물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에덴빌리지 주민들이 먹는 취수원인 어라강 위 절벽. 율미가 자갈밭에서 발길을 돌렸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누군가를 제거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범인이 이 지역 지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범행 장소다. 이런 상상들이 율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다시 망원경을 낭떠러지 위로 돌렸다. 비가 내리면서 흙이나 먼지 위에 남아 있는 발자국은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고 진흙이 아닌 풀밭일 경우 족적의 디테일한 부분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운이 좋다면 빗물이 닿지 않는 오목한 곳에 혈흔이나 머리카락의 증거가 있는 행운을 만날 수도 있겠지. 상상과 추측을 오가던 그녀의 굳은 표정이 풀린 것은 수색팀의 움직임을 본 이후였다.  


 문화읍 중심가로 들어서자 거리에는 은행잎들이 도로와 인도에 달라붙어 눅눅함을 더했다. 마라탕집은 저녁시간 전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얼마 전 오픈한 데다 다른 식당보다 위생적이고 매장 분위기가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다. 

 공원을 끼고 중심가를 따라 흐르는 강, 구도심과 신도시의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예미솔교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거기에 맑고 윤기나는 창을 연결한 벽 사이의 붉은색 타일은 중국을 대표하는 정통 식당의 분위기를 풍겼다. 

 혜인은 마라탕이라면 죽고 못산다. 며칠 전에는 오픈 기념으로. 어제는 복지관 직원들과 점심으로. 아마 내일이나 모레 또 먹을 건수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두 사람의 순서가 호출되고 흡족한 미소로 마라탕을 맞이하려는 순간 메시지음이 울렸다. 석우였다. 

 목격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두 사람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포장한 마라탕을 뒷좌석에 실은 채 밧도로 향했다.

 

 경찰은 이미 취수원 근처 현장을 통제하고 민간 전문 잠수팀과 장비를 동원해 수중 수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부력장치와 방수 시신 운반백을 준비한 경찰은 시신 손상을 방지하고 물속 유출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규모 인력을 투입했다.

 한편에서는 드론이 낭떠러지 주변을 맴돌며 윙윙거렸고, 형사들은 어딘가로 전화를 하거나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형사는 다른 형사와 함께 목격자로 보이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가끔 생각에 잠긴 시선으로 취수원을 바라봤다. 어느새 취재기자 서너 명이 경찰 관계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며 몰려들었고, 주민들은 먼발치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습 현장을 지켜봤다. 

 율미의 머릿속은 시신의 부패 정도와 사망 원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찼다. 물속으로 추락했다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적지 않음에도 추락 직후 사망했다면 단순 사고를 넘어 고의성이 있었음을 뜻한다. 흉기로 살해된 것일까? 그렇다면 흉기는? 

 그때, “찾았습니다!”라는 잠수부의 굵은 목소리가 취수원 주변에 울려퍼졌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충격 때문인지 몇몇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찰서장은 살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시작하겠다며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고 있었다. 한 기자가 사망 원인을 묻자, 그는 “현재로서는 외상에 의한 범죄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러자 현장은 곧 탄성과 한숨이 뒤섞여 술렁거렸다.

 

 차가운 물속에 있었던 시신은 부패가 더디게 진행되었다. 피부는 약간 검푸르게 변색되고 일부 부위가 벗겨졌지만, 복부 팽창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증거 보존 상태가 양호했고, 경찰은 추가적인 증거 확보에 한껏 고조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곧이어 장 의장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가 발견되면서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며칠 동안 강물에 가라앉아 있었다면 부식과 침전물로 인해 전화기의 손상이 급속히 진행됐을 거라는 감식팀의 의견 때문이었다.    

 한편, 에덴빌리지 행정복지센터는 임시 취수원이 가동되기 전까지 생수를 받으려는 주민들로 북적였다. 일부 주민은 아예 짐을 싸서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소방차가 마을 곳곳에서 급수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농업용을 제외하고 이용하는 주민은 드물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문화군청은 대체 취수원 확보 문제로 동분서주하며, 1차 후보지로 거론된 밧도마을 건너편의 옛 수원지를 검토하는 동시에 2차 후보지 물색에도 나섰다.

 에덴빌리지와 밧도마을 등 지역사회에 빠르게 퍼진 장 의장 사건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신속한 대체 수원지 확보와 먹는 물 공급을 요구하며 군청을 강하게 압박했다.

 의회에서는 이동만 의원을 중심으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는 장 의장 사건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모든 조사와 자료 요구에 전 의원과 직원들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석우는 장 의장 실종 관련 기사의 업데이트를 위해 아침형 인간이 될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한편, 율미는 언론보도를 통해 장 의장 사건을 접하고 있을 안수정의 반응이 궁금했다. 언론에서는 장 의장의 과거 행적부터 최근까지의 범죄 연루 가능성을 제기하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은행에 확인한 결과, 그녀는 휴가를 낸 상태였다.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하려고 켜둔 캐리비안의 해적 OST가 세 번째 반복될 즈음, 그녀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프리즘 스튜디오가 뭐하는 곳이죠?”     

 안수정이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은 단촌시 외곽에 위치한 넓은 잔디밭과 작업실이 있는 갤러리 카페였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곳곳에 패브릭 소재의 가림막이 놓여 있었고 가장 안쪽 자리에서는 잔디밭 단풍나무가 비스듬히 보였다. 

 안수정은 율미가 건넨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단풍나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구모자 뒤로 긴 웨이브 머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청바지에 베이지색긴 가디건을 걸친 그녀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경희가 사건을 의뢰했다고요?”

 안수정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르려는 순간, 카페 주인이 투박한 도자기 커피잔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금요일 오후에 장 의장님과 통화하셨다던데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탐정님께 꼭 말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법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고요.”

 그녀는 까칠했다.    

 “물론 안 하시는 건 자유지만 살인사건으로 전환된 만큼 최대한 협조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사건이 빨리 해결되길 바라신다면요.”

 율미의 말에 안수정은 한동안 그녀를 응시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지금 기자들 인터뷰 요청이 빗발쳐서 전화기가 불이 날 지경이에요. 제일 답답하고 미치겠는 건 저라고요.” 

 “이해는 됩니다. 다만 저도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혹시 금요일 이후에 남편분과 다시 연락하거나 만나신 적은 없으신가요?”

 “없어요. 그날 오후에 아버님 제사 때문에 통화한 게 전부예요.”

 율미는 메모를 하며 물었다. 

 “아버님 제삿날이 언제죠?”

 “이달 말일이요.”

 “별거 중인데 가족 제사는 여전히 챙기시네요. 아니 이혼소송 중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별거는 별거고 제사는 제사니까요.”

 그녀는 짧게 답한 뒤 고개를 돌렸지만, 곧 다시 율미를 똑바로 쳐다봤다. 

 “근데 박 의원이 무슨 자격으로 사건을 의뢰한 거죠? 동료 의원이면 동료 의원이지 오지랖은…….” 

 ‘동료 의원’이라는 말에 힘이 실렸다. 마치 율미가 박 의원과 장 의장의 과거를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질문이 많지 않다면, 제가 좀 바빠서요.”        

 탁자 위의 자동차 키를 만지작거리던 그녀의 손이 잠시 멈췄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혼 사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사적인 질문에는 답하기 곤란하네요. 어제오늘 별거를 한 것도 아니고. 별거 후에 이혼으로 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잖아요.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는 점만 말씀드리죠.” 

 그녀는 단호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참고할 만한 부분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지워나가려는 거죠. 어차피 경찰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게 되실 겁니다. 문제 해결에 있어 솔직한 것만큼 깔끔하고 빠른 건 없으니까요.”

 안수정은 커다란 머그컵을 감싸 쥔 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요. 세 번이나 낙선한 끝에 남편이 의원이 되고, 의장 자리까지 오르더니 가정에는 점점 소홀해졌어요. 그리고 독불장군처럼 변해 갔죠. 주변 시선도 있고, 애들 생각해서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이러다간 내 인생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겠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셔서.”

 율미가 따뜻한 시선으로 인사말을 하자 안수정은 한 손을 이마에 대고 방금까지의 까칠함 대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혼소송 중이고 불의의 사건이었다 해도, 그는 아이들의 아버지였고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배우자였다. 그가 알 수 없는 거센 폭풍에 휘말린 것만으로도, 그녀의 마음 한편엔 지울 수 없는 자책이 스며들고 있을지 모른다고 율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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