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는 배우가 나온다. 시청자들은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고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며 작품 속 캐릭터와 감정을 공유한다. 깊이 몰입한 시청자들은 특정 작품으로 유명해진 배우를 볼 때면 캐릭터가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다. 배우가 연기하는 작품을 보면 자꾸만 저 인물이 연기할 때 어땠는지를 상상해 보게 된다. 지금 톤 좋다, 저런 제스처를 어떻게 했을까? 눈물 흘리려고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까. 등.
그런 내가 만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조금 이질적일까? 캐릭터가 움직이고, 성우가 뒤에서 연기하고, 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말도 안 되는 연출이 휘몰아치는 게 만화니까.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 앞에서 가장 깊이 몰입한다. 배우가 보이지 않으면 순수하게 그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다. 그 유명한 라라랜드를 보면서도 몰입 한 번 못 한 나는 되려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며 "고, 고, 키키! 고, 고, 키키!" 하고 작 중 인물들과 함께 외친다.
(*극 중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야 할 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 외치는 장면의 대사)
만화를 보면 별거 아닌 장면에서 와하하 웃고, 눈물을 흘리고, 생각이 깊어져 밤잠을 설치고, 하루 종일 검색창을 뒤적대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에는 몰입이 되지 않고 캐릭터에만 몰입이 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오타쿠인가보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와 책을 좋아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즐거워했으니 당연하다. 눈앞의 캐릭터가 눈앞에서 보이는 것 외에 펼쳐지는 세상을 상상하는 게 즐겁다. 아무래도 사람으로는 다채로운 상상을 펼치기가 어렵고, 또 어쩐지 죄스럽다. 그 사람의 한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고, 정답이 있을 것만 같아서. 정답이 있다고 가정이 되는 순간 상상은 한계에 직면한다.
만화 중에서도 특히 성장과 희생을 다룬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울리다 못해 몇 년이고 마음속에 남아 한 번씩 심금을 울린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찡- 해지고, 길을 걷다가도 피식대는 나를 누군가는 한심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럴 시간에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거라고. 그러나 나는 만화를 보며 힘을 내고, 우울에서 나를 건져 올리고, 나를 들여다보며 성장한다.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 소설을 읽고, 소설을 읽다 보니 그 심리적 배경이 궁금해져 인문학을 살피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세계가 다채로워진다.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진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유치원 졸업앨범 장래 희망 칸에 화가라 쓰던 내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초등학교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타 온 벅참은 어느 정도였을까. 고등학교 때 밤을 지새우며 그림을 그리던 내 눈빛은 어땠을까. 상상하다 보면 다시금 마음이 따끈해진다. 그리고 애써 잠재우려 노력하지 않는다. 따끈한 마음이 좋아서 그 반짝임을 한참이고 들여다보고 어루만진다.
하지만 만화가의 길은 험난할 게 뻔해서 회피하느라 길을 빙빙 둘러 이제야 출발점에서 조금 움직였다.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결국 돌아왔을 때 날 반겨준 건 예상보다 더 힘든 도전 길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합이 잔뜩 들어가서 자주 파이팅을 외쳤다.
취미로 그림을 그릴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예쁜 그림 몇 장을 그리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체의 다양한 동작, 복잡한 투시, 세세한 배경, 조화로운 배색, 그 안에서 명확한 명도차, 안정감 있으면서도 추구해야 하는 아름다움,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와 연출 등. 이런 것들을 마주할 때면 머리가 아프고, 가끔은 짜증도 나고,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 사라질까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래서 2024년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채웠다. 그 즐거움이 사라지는 게 가장 무서웠기 때문에. 2024년에 내가 가장 지켜야 할 건 절대적인 연습량과 시간이 아니라 반짝이는 마음이었다. 아주 조금 나아가더라도 그 마음을 지키려고 애썼다. 조금이라도 괜찮아, 이만큼만 해도 괜찮아, 꾸준히만 하면 괜찮아, 중요한 건 이 마음을 지키는 거야. 그렇게 나를 조절하는 법을 익히며 느리게 페이스를 찾아갔다.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제법 달라진 내가 보인다. 아픈 마음을 술로 달래고, 내일 없이 살고,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사람들과 모여 아침까지 흥청망청 놀던 나.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갑자기 눈물을 떨구며 곯아떨어지고는, 해가 뜨면 밍기적대며 출근하던 나. 허망한 눈으로 퇴근만 바라보며 일하고, 주말이면 기어나가 팬아트 한두 장 그리며 힐링하는 나. 그리고는 '이거면 됐다.' 하고 배달 음식에 맥주를 마시며 일요일 밤을 보내던 나. 그런 나는 이제 없다.
꿈이 있고, 매일 고민하고, 그걸 기록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이유 있는 시간을 보내며, 내 마음을 돌볼 줄 아는 사람. 꾸준히 나아가며 성장하고 싶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 하고 싶은 게 많고, 욕심이 나고,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사람. 새해를 맞이하며 올해도 힘내보자고 스스로를 응원할 줄 아는 사람. 조금 서툴러도 솔직하게 사람을 대하고 싶고,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고,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전하고 싶어 하는 나만이 여기 있다.
작년이 더 뜻깊었던 건 나도 달라질 수 있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낸 것 같아서가 아닐까. 줄곧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거라고, 언제까지 이렇게 마음이 아파야 하냐고, 밤에 눈을 감을 때면 이대로 눈을 뜨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행복하고 밝은 에너지를 지닐 수 없을 거라 믿었는데…. 성장하고 싶어 하는 내가 오래전의 나에게 건넨다.
"너도 꿈을 꿔도 돼. 행복해져도 돼."
그렇게 단단해진 2024년 위에 서서 2025년에는 조금은 뛰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너무 높이 뛰면 갑자기 땅이 푹- 꺼지고 말 테니까 그냥 가능한 만큼만 조심히 걸어보자.'라고 하던 건 작년의 나. 올해의 나는 대담해진다. '한 번쯤은 높이 뛰어보고 싶어. 땅이 푹 꺼지면 다시 고르는 시간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저 멀리 뛰어갈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은데.'
매일 그리는 그림만 그려서는 성장할 수 없다. 수학을 좋아하진 않아서 이런 비유는 좋아하지 않지만, 덧셈과 뺄셈만 한다고 수학 실력이 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부딪혀보고 새로운 공식도 익혀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이제는 평온하기만 한 일상을 벗어나 보고 싶다. 늘 하는 고민과 다른 고민을 해보고 싶다. 조금 더 어려운 걸 풀어낸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이제는 나를 조금 아니까, 내가 평온해지는 법을 아니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한계를 조금씩 늘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 수입원이고 내 꿈이니까 어려운 것들을 피해 가며 안전한 곳에만 머무르고 싶지 않다. 때로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성장하고 싶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림으로 전해지는 날이 올 것 같아서. 그날을 기대하며 2025년을 맞이한다.
정확한 시기를 콕 짚기는 어렵지만,
달라지고 싶다고 생각한지는 이제 좀 된 것 같아요.
겨울이면 늘 힘들어했는데,
이번 겨울은 처음으로 무탈히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감기도 앓고 컨디션도 많이 잃고 다 앓았지만요,
제가 온전히 무너지는 일은 없었어요.
처음이에요. 이런 겨울은.
그래서 올해는,
한 번씩은 뛰어보고 싶다. 는 다음의 목표가 생겼어요.
어려운 것들에 직접 부딪쳐 볼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달라질 제가 기대되고, 설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