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시 짚고 넘어가자면 미적 재능이 없다.

by uyen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인테리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못 그리는 때가 더 많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컬러링 북에 색칠하면 사람들은 편해진다고들 하던데 나는 오히려 불편해졌다. 색감각이 없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였다. 꽃잎을 색칠하는데 다른 색깔로 한번 그려볼까 하면서 도전정신으로 황금색으로 꽃잎을 칠했더니 뭔가 이상했다. 이게 손 힘을 주느냐 안 주느냐에 따라서 선의 굵기가 달라지고, 색칠을 많이 할 건지 적당히 할 건지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니.. 화가의 세계는 어려운 거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재능을 가진 사람도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는 거더라.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계속 연습해서 갈고닦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일수록 값비싼 장비들을 먼저 구비하고 시작한다. 나의 경우엔 그러했다.

그림을 그려볼까 생각하고 72색 파버카스텔 색연필이나 물감, 스케치북 등을 사서 그림을 그리는 거다. 시작 비용이 엄청났다. 결과물과는 반비례했지만..

실력을 쌓지 않은 채 값비싼 장비들을 사서 쓴다고 해서 부족한 그림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걸 사서 쓰면 나의 부족한 그림 실력이 조금 더 나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에 기대어 시도해 보지만, 초보자가 전문가용을 쓰는 것과 전문가가 초보자용 도구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똑같은 손을 가지고 있지만,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결과물이 다르다. 그리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뭔가 돈이 있고, 여유가 있다면 마음 인테리어를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마음 인테리어의 결과는 달라진다. 마음 인테리어의 경우에, 다른 사람의 마음 인테리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 SNS에 올려서 자랑할 수도 없다.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마음 인테리어 하는 재능이 있으면 더 좋을 수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본인만 알 수 있다.

마음 인테리어는 재능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완성이 된다.

누군가에게 비교되지 않고 성취감과 만족감을 준다.

어설프다고 포기하지 말자.


인도네시아 한 달 살기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계획이 하나도 없었다.

계획이라곤 입국 출국 날짜, 숙소 밖에 없었다.

뭘 먹을지, 어디를 갈지 하나도 정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놀러 나가고, 먹고, 자고 여행했다.

여행 다니면서 쓴 여행일기를 보니 꽉 채워져 있었다.

이때 사귄 친구들이 벌써 10년 지기가 됐다. 아직도 연락을 하는 친구들이다.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갔었다.

하노이에서 버스를 타고 또 배를 타고 들어갔다.

같이 여행했던 언니가 베트남에 살고 있고, 나도 베트남어를 할 수 있었다.


선실 안에 테이블이 6인용이라 베트남 가족과 함께 앉았는데 베트남 가족이 물과 음식들도 나눠주는 등 우리를 많이 챙겨주었다. 그 가족과 베트남어로 대화하고 있으니까 가이드분께서 우리에게도 베트남어로 설명하셨다. 다른 외국인 분들에게는 영어로 설명해 주셨다.


배에 타기 전에 과일을 사갔던 터라 과일을 깎을 칼이 필요해서 주방에 칼을 빌리러 갔더니

직원분이 나에게 어디 지역에서 왔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이국적으로 생겨서 이런 경험이 비교적(?) 익숙했다. 그 직원분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증명을 해보라고 했다.

내가 베트남에 가서 한국인인걸 증명해야 할 줄이야..

비행기 동요를 불러줬는데 직원들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직원들과 한참 수다 떨고 놀고 있으니까 다른 직원분께서 과일을 깎아 주셨다. 깎아주신 과일도 그들과 나눠먹었다.


하롱베이에서 다시 하노이에 돌아가면 하노이 공항으로 가서 바로 한국으로 출국해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하롱베이에서 배를 처음에 탈 때 시간이 지연돼서 많이 지났던 터라 내가 걱정하고 있었다.

그걸 들은 태국인 여행객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안심할 수 있었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공항에 뛰어 들어갔는데 진짜 늦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늦은 시간이었기에 앉아서 쉬고 싶고, 휴대폰 충전도 하고 싶었는데 게이트 앞 의자들은 이미 만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선물로 드릴 와인을 산 기념품 가게에 다시 가서 죄송하지만 휴대폰 충전을 할 수 있냐고 양해를 구했다. 직원 두 분이 계셨는데 나보고 작은 목욕탕 의자를 주시면서 구석에 앉아서 편하게 쉬었다 가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어디 지역을 여행했고, 뭘 먹었는지 수다를 떨었는데, 알고 보니 직원 한 분의 고향이 하롱베이의 그 하롱 지역이었다. 오늘 하롱베이 갔다 왔는데 비행기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했었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오전 12시쯤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 돼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나니까 직원분께서 다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어차피 1시간 지연돼서 새벽 1시에 탑승 시작할 거라고 알려주셨다.

정확히 한 시간 후에 탑승이 시작했다.


2년 뒤 두 번째 베트남 여행에서는 사파를 갔다. 슬리핑 버스를 타고 아침에 도착해서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숙소 가는 길에 볶음밥 집을 보고 저기를 와야겠다 생각하며 숙소에 짐을 맡기고 다시 음식점을 찾아갔다. 아침에는 볶음밥을 안 팔고 쌀국수를 팔았다. 현지인들이 가게 안에 꽉 차 있었다.

우리는 모르고 갔는데 현지인 맛집이었던 거다. 우리가 지나갈 때만 해도 문이 열지 않았고, 준비 중이셨다.

쌀국수 국물을 한입 먹었는데 내가 먹어본 분짜 쌀국수 중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점심의 볶음밥이 너무 기대가 돼서 케이블카 타고 판시판 산에 갔다가 내려와서 다시 먹어야지 다짐을 했는데 이미 다 팔렸었다. 너무 인기가 많은 집이라 솔드 아웃이었다.


판시판 산에 갈 때 케이블카를 타고 갔는데 케이블카 안에 베트남 50대 아저씨들 한 10명이 타고 계셨다.

친구들이랑 단체 관광 오신 느낌이었다.

우리가 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그들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물어보셨다.

어떻게 베트남어를 배웠니?

어디에서 왔니?

어디 여행하니?

직업이 뭐니?

결혼은 했니? 등..

그냥 한국에 계신 여느 아버지들과 같았다. 자식 걱정하시고, 사랑 많으신 우리네 아버지들 말이다.

그렇게 우리 자기소개 아닌 소개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서 정상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아저씨들이 입구에서 사진 찍으실 때 우리도 껴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한테 남은 여행도 잘하고 가라고 팝콘도 사주셨다.


사파에서 기동성이 없으니 너무 불편했던 나는 오토바이를 처음 타기로 결정했다.

산악지대로 유명한 곳이라 길 옆이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다.

핸들만 잘못 틀어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길이었다. 흙+자갈길로 오프로드이고, 초행길에 처음 오토바이를 타는 엄청난 일을 한 거다. 까딱했다가 나는 지금 이 글을 못 쓰고 있었을 거다.

오토바이 렌트를 하러 숍에 갔다. 우리가 얼마예요? 베트남어로 말하니 베트남어를 한다는 이유 만으로 핫이슈가 되어 그 가게 안에 있던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말을 걸기 시작하셨다.

반전은 우리가 절반도 못 알아 들었다. 그랬더니 한 베트남 분이 "얘네 베트남어 못해"라고 말씀하셨다.

절반도 못 알아들었는데 못한다는 얘기만 알아들었다. 웃픈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빌려서 시내에서 주행연습을 한 뒤에 산골짜기 마을로 들어갔다.

하.. 마을 표지판 보고 마을로 내려갔는데 길의 경사가 40도는 되어 보였다. 내려가면서 울었는데 다시 올라가지도 못해서 옆에 공사하는 현장에 가서 베트남 아저씨한테 오토바이 좀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익숙하고 편안하게 운전해서 도와주셨다. 돌아가는 길에 눈 뜨고 도착할 때까지 기도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무사히 도착만 하게 해 주세요.' 하고..

중간에 두 번 정도 넘어졌지만, 무사히 잘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골목길을 다니고 있는데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던 할머니가 "기념품 사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할머니 죄송해요. 어제 기념품을 이미 샀어요. 그래서 돈이 없어요." - 나

"너네 돈 있잖아. 나 알아" - 할머니

"진짜 없어요. khong co." -나

"있어~ co" - 할머니

할머니와 웃으면서 티카타카 하다가 웃으면서 헤어졌다.

또 사파 골목길을 돌아다니는데 한 할머니가 집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계셨다. 햇빛을 쬐고 계셨던 것 같다.

"잘 지내시죠? Co co khoe khong?" - 나

안부를 물었다.


내가 언어를 배우는 이유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웃으며 말을 건넬 수 있는 경험들이 내가 언어를 배우게 만들었다.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과 안부를 물으며, 웃고 떠들 수 있게 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그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게 여행이다.


한다면 하는 성격이다. 내가 하기로 결정했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기능사 시험을 접수해 놨는데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거다. 접수만 해놓고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

시험 치기 전 날 저녁 먹고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공부하고 조금 눈을 붙이고 시험을 치러 갔다.

한 번을 안 일어나고 책상 앉은자리에서 공부했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제집이 이론 200페이지, 기출문제 300페이지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렇게 공부하고 가서 필기시험을 치고 합격했다.

사실 시험 치르면서 시간이 남아서 가채점하고 합격이겠네 하면서 나왔다.

시험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는데 실기는 못 붙어서 결론적으론 떨어졌다.

실기가 손재주와 시간 안에 완료해야 하는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학원을 다닐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

지금 하라고 하면 체력이 떨어져서 안될 것 같긴 하다.


새벽 어중간한 시간에 잠이 깨면 차를 몰고 무작정 드라이브하러 나간다.

차를 타고 40분쯤 가다 보면 바다가 있다. 일출을 보러 나가는 것이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아침 일찍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바다에 도착해서 일출을 보면 또 하루가 시작됐다. 그리고 또 살아가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일출 보고 시작한 하루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평소보다 많이 일찍 일어났다면 일출 시간 검색해서 한번 보고 오시길 추천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따뜻해서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

2월의 어느 하루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이 보고 싶어서 강릉으로 출발했다. 5시간이 걸렸다. 눈이 뒤덮인 설산을 보고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왔다. 풍경이 비현실적이고, 하얗게 덮여있는 산이 신기했다. 만약 내가 그곳에 살고 있다면 하늘에서 내리는 예쁜 쓰레기라고 느끼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와 다른 곳에 여행을 가서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오길 정말 잘했다고 3시간 정도 느끼고, 폭설주의보 안내문자를 받고 잠시 후회했다. 눈이 많이 쌓인 곳에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곳에 가서 뽀드득뽀드득 발자국도 내고, 추위도 느꼈다.


일할 때만 계획형이다. 나머지는 계획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나 즉흥적이고, 중구난방인 사람도 살아가고 있다.

현재를 즐길 줄 알아야 현재를 지나 과거가 되었을 때 뒤돌아보며, 추억거리가 많았음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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