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툰 솜씨이지만 하나씩 그려간다.

by uyen

이제 내 방에 그려진 그림들을 하나씩 소개해보려 한다.


아침잠이 항상 많다. 잠자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아침식사는 몇 년째 먹을 시간이 없어서 패스했다. 학생 때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겠습니다." 하고 집을 나섰다. 어릴적 부모님은 맞벌이하셔서 다들 일찍 출근하신 후였던 터라 아무도 없는 집에 인사는 매일 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학교는 집에서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항상 근처에 있는 학교로 진학을 했었다. 참 나다운 생각이었다. 회사도 집 가까운 곳을 골라서 아침에 빨리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곳들에 입사지원을 했고, 멀어도 차로 20분 거리인 곳으로 다녔다.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을 선택하기도 했고, 대학교도.. 회사도 다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으로 출퇴근할 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더 좋은 직장과 보수를 찾아 떠난 것이지만,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침 잠이 많아 휴대폰 알람 그림과 시계가 정말 많이 그려져 있다. 알람이 시간대별로 울리지만, 항상 마지막 알람만 듣고 일어났다. 내일은 빨리 일어나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어른이 되고서도 잠은 계속해서 많았다. 1년에 한 번쯤 지각을 했다. 어떤 날은 버스에서 자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놓쳐서 알람을 듣지 못했고, 어떤 날은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휴대폰이 꺼져서 알람을 듣지 못했다. 이런 날은 자는데 느낌부터가 이상하다.

'왜 이렇게 개운하지?'

'밖이 왜 이렇게 밝지?'

움찔하면서 깨면 지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 들면 안 되는데... 진짜 안되는데 하는 순간 소름이 돋는 것이다. 이건 본능적으로 망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멍 때리면서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학교 하교시간에 2천 원을 들고 교문 밖을 나섰다. '길 건너 분식집에서 떡볶이 사 먹어야지~'하고 신났는데 바람이 불더니 2천 원을 놓쳐버린 것이다. 하하.. 떡볶이는 못 사 먹었다.


하루는 장거리 운전을 하고 벌레가 앞 유리에 많이 달라붙어 세차를 하러 갔다. 셀프 세차장에서 거품 솔로 차를 구석구석 닦고 있는데 위에서 푸쉭 푸시식 하고 소리가 나더니 호스가 빠졌다. 고압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호스가 천장에서 360도로 돌아가며 나한테도 거품을 뿜었다.

'차 세차하러 왔더니 나도 세차해 주네..'

하고 두 발자국 물러서서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하루는 한동안 미뤄두고 미뤘던 세차가 너무 하고 싶었다. 세차장에 도착했는데 주말저녁 치고는 사람이 없었다. 세차를 하려고 세차 기계에 동전을 넣는데 동전이 계속 반환돼서 보니까 500원 동전이랑 크기가 비슷한 홍콩 동전을 넣고 있었다. '기계가 나를 싫어하나.. 왜 돈을 준다는데 이렇게 싫어하지..?' 하고 있었는데 한국 돈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다시 500원 동전인지 확인하고 넣었더니 잘 작동했다.

한참 세차를 하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세차장으로 들어왔다. 택시 기사님이 내리시더니 속사포로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아니.. 하... 외국인이 술을 왕창 마시고 내 차에 토를 했어요. 내 차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토를 하는 거예요. 술이 취하면 곱게 집에 가야지.. 하 참내.. 냄새 이거 어떻게 빼지.... 근데 선생님은 오늘 왜 세차해요?"- 택시 기사님

" 차가 너무 더러워서요." - 나

" 내일 비 온다는데 대충 하고 들어가요." - 택시 기사님

.. 그러기엔 세차를 끝마치고 광택도 내고 있었다. 어쩐지 사람이 없더라... 조금만 일찍 오시지..


나의 날씨 감각은 도와주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비가 오려나..? 무릎이 왜 이렇게 아프지..?'

나는 '아 차가 너무 더러운데 세차하러 갈까?'

내가 세차하는 그림 위에는 비구름이 있다.


밤에 별 보는 걸 좋아한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기엔 주변에 편의시설이 다 있고, 그렇다고 하기엔 도시는 아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 끼여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차로 동네 깊숙히 들어가면 논,밭만 있다.

주변 시골길에 가로등이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앞을 보고 가야 하는데 위를 보면서 걷다가 옆에 밭에 떨어졌다. 높이가 2미터쯤 됐는데 갈대밭이라 천만 다행히도 다치지 않았다. 캄캄해서 절벽인지 도로인지 잘 몰랐던 거다. 같이 있던 일행들이 갑자기 애가 사라졌다며 놀라서 날 찾으셨고, 나는 갑자기 바뀐 배경에 놀라서 멍하니 있었다. 주변에 같이 있던 일행이 있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땅을 잘 보고 손전등켜고 다녔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은 인공위성이라고 내 감성을 깨는 이야기들도 있는데..

땅에서 바라본 빛나는 하늘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다.

밝게 빛내서 우리에게 닿고 있잖아.

밤하늘의 달 모양이 매일 바뀌는 모습도 너무 인상적이다. 보름달이었다가 초승달로 가는 과정을 그냥 내 눈으로 매일 밤하늘을 쳐다보면 볼 수 있다. 내 눈에 담기는 모습들이 너무 신기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면서 주위풍경들도 눈에 들어온다. 계절마다 바뀌는 색의 조화들이 참 이쁘다.

새하얗게 눈 덮인 설산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새싹들로 생명의 활기가 띄는 연두색 산도

여름의 울창함이 보이는 산과 바다

노란색, 빨간색 낙엽진 나무들이 어우러진 가을 산


날씨가 맑아서 보는 순간 마음이 뻥 뚫리는 풍경도 있고, 구름 모양이 장관인 날도 있지.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는 비용은 무료인데도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아.

한 번도 지루하지 않고, 단 한순간도 똑같은 풍경이 없지.

풍경을 그린 그림이나 사진은 아주 비싸게 팔리고 있다.

무료로 그 자연들을 다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20대 초반에 돈을 모으면 여행을 갔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 언어를 조금씩 배워서 갔다.

구글 번역기 완전 초기 버전이라 번역이 잘 안 됐었는데

베트남에 갔을 때는 현지인들이 가는 맛집을 찾고 싶어서 택시기사님께 물어보고

캄보디아에 갔을 때는 트립어드바이저 어플을 보고 식당을 찾을 때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는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으려고

대만에 갔을 때는 우육면 먹으려고


캄보디아를 떠나는 날, 공항직원분에게 짧게 인사하고 떠났다.

(캄보디아어로) 크뇸 으리은 피어싸 크마에 띶띶 하으이. 크뇸 떠으 바탐봉 하으이. 쏙 써바이

- 저 캄보디아어 조금 배웠어요. 바탕봉 지역을 갔다 왔어요. 잘 지내요.


인도네시아어로 영어 할줄 아는 사람을 찾을 때,

까미 멘차리 오랑 양 비사 비차라 바하사 잉그리스, 뜨리마까시

-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에스떼 따와르

- 아이스티(얼음 들어간)

- 진짜 필수 단어예요. 강추.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는 문맹인이다. 그냥 발음을 외워서 씩 웃으며 하고 다녔다. 읽을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영어는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외의 언어들은 읽을 수 없었다.


이렇게 다른 나라 언어들을 조금이라도 배워가니 현지인들이 웃으면서 다들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새로운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이 2-4개 국어를 해서 그 친구들과 대화하고 그 나라 문화를 접하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도 다른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게 너무 신기하고 거부감이 없어져 있었다. 또 다른 곳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에 도전할 것 같다.

오토바이와 차들이 막 뒤 섞여있는데 신호가 바뀌면 오토바이 수십대가 지나간다. 사고가 많이 날 것 같은데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경적을 울리면 '나 지금 지나가고 있으니까 너 오지 마. 위험해.' 하는 느낌이다.

동남아시아에서 경적을 울리면 '너 지금 지나가네~ 나도 지나간다~' 이런 느낌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 그들만의 규칙대로 운전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운전하려면 운전 법규를 잘 지키는 것보다 사람들의 운전 방식을 보면서 배워야 한다.

2016년 1월 인도네시아에서

손으로 밥을 먹고, 나무에서 야자수를 따는 모습, 코코넛 껍질 제거하는 모습, 해먹에 누워 자는 모습, 사탕수수 즙을 바로 짜주는 설탕주스, 밭에 묶여있는 소의 모습 등..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풍경과 너무 달라서 눈을 뗄 수 없었다.

2017년 4월 캄보디아 여행에서


캄보디아 숙소에서 개를 키웠는데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면 집 대문을 열어달라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사람 가까이는 오지 않고 계속 쳐다봤다. 문을 열어주니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이 개는 하루 종일 동네 탐방하다가 해가 지면 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 다 놀고 돌아와서 집에 들어가야 하니 들어오는 사람 아무나 기다린 것이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개도 여유가 있어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짖거나 사람을 물지도 않았다.


미리 보기인데도 이렇게나 할 말이 많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풀어낼 거리가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까 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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