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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연재> 작은새 성장기 3

정체성과 희망

by 소망

작은새는 까치 가족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요. 함께 날아다니며 먹이를 구하고 따뜻한 집을 지어 겨울을 준비했어요.


추워 떨고 있는 나무 위에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듯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은... 작은새의 회상 속 지난겨울을 떠오르게 했어요. 추운 겨울도 큰새의 사랑이 있어 춥지 않았거든요. 추운 날에는 큰새 품에 꼭 안겨 잠들었어요. 작은새는 여전히 큰새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큰새의 깃털로 살아온 그 긴 시간을 잊는다는 것, 큰새를 잊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래도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마르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휑한 칼바람이 지나가고 나뭇가지 위 눈이 얼어붙은 추운 날에도 아늑하고 따뜻한 둥지가 있어 행복했어요.


하얀 겨울이 두 번 지나고. 다시 봄이 왔어요.

이제 갈참나무 숲 속에서 모르는 새도 없고, 제법 몸도 튼실해졌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낯설고 이상한 깃털을 단 작은새를 보고 다른 새들은 수군거리며 기피했지요.


"쟤는 어디서 온 거야?"

"저 털은 왜 저래? 맞지도 않는 털을 달고 있네."

"쟤는 나는 것 봐서는 새인데 무슨 새 인지를 알 수가 없어."


수군대는 소리를 듣고 지내야 했어요. 가끔 못된 짐승이나 새들은 살금살금 다가와 깃털을 뽑아 달아나기도 했지요. 그때마다 작은새는 아프고 힘들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이 숲이 제2의 고향이 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작은새의 깃털 속에 작은 종기가 돋기 시작했어요. 가려워 부리와 발로 계속 긁어댔어요. 거친 나무줄기에 비비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큰새가 준 깃털이 부서져나갔어요. 작은새는 당황했어요. 어쩌나 하고 고민도 하게 되었지요.


까치 아저씨는 근처에 사시는 만물박사 오소리 할아버지를 찾아가 보라고 알려주셨어요.


오소리 할아버지를 찾아갔어요.


작은새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몸의 증세를 말씀드렸어요.


"할아버지, 몸이 너무 가려워요. 긁으면 깃털이 자꾸 부서져나가요."


"어디 보자."


돋보기를 걸친 할아버지는 작은새의 몸을 살폈어요. 자세히 살피던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이런, 이건 깃털 부작용이야. 네 몸을 보니 원래 네 깃털이 아니구나. 네 깃털보다 억센 것으로 보아 다른 큰새의 것인가 본데..."


.......


작은새는 제 몸에 착 붙어버린 큰새의 깃털로 여태 잘 살았는데, 뭔 일인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사연을 오소리 할아버지께 들려드렸어요.


"할아버지, 왜 이제 이런 부작용이 일어나는 거죠?"

"자세한 건 몰라도 네 연한 살과 안 맞는 거지. 아마도 네가 잘 살아온 것은 너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해서일 거야. 혹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나 보구나."


"왜요?"


"우리 새들 몸도 면역이라는 게 있어. 자신이 행복하면 뭐든 극복할 힘이 생기지. 아마도 넌 깃털의 주인인 큰새와 행복했던 모양이야. 큰새와의 이별이 네게 큰 상처였나?"


"예... 그런데요?"


"마음의 상처로 면역이 떨어진 거야. 네 몸 안에서 큰새를 거부하는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아마도 네 몸은 깃털이 다 뽑히거나 부서져, 흉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한 번은 겪어야 할 것 같구나. 이제 시작인 거지."


"누구든 커다란 위기를 맞으면 새롭게 태어나는 고난을 한 번쯤은 겪는단다. 네 마음의 병이 이렇게 나타나는 거야."


"그 후 저는 어떻게 될까요?"


"모든 깃털이 다 떨어지거든, 새 깃털이 날 때까지 수련이 필요해. 그 모든 시간을 너 혼자 버텨내야 한단다.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건 무척이나 힘들고 고된 일이야. 진정한 나로 산다는 것은 그 후의 일인 것이지."


"원인을 알았으니 제 몸을 다시 살려야겠어요. 노력할게요."


'새가 깃털을 잃는다는 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산 짐승들의 밥이 되기 쉬우니까. 그리고 새로운 털이 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는데...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오소리 할아버지는 작은새가 걱정되고 그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다 생각했어요.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작은새가 남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제 옷을 새롭게 입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죠.


오소리 할아버지의 산집을 나오며 작은새는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날갯짓으로 힘차게 날아올랐어요.


'이도 버려야 해.'

'과거의 큰새도, 큰새의 깃털도 모두 버려야 해. 그래야 새로 태어날 수 있어. 나로서...'


힘찬 날갯짓에 파라락~~ 떨어져 내리는 큰새의 잔재를 보며, 새 희망을 가져보자 더욱 힘을 내어 떨구었어요.


하나, 둘,...... 큰새와의 행복했던 시간들도 뚝뚝 떨어져 희미해져 갔어요.






4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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