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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Dec 12. 2024

운명의 실타래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쬔다.


시간이 더 지나면 태양은 조금 더 날아올라 이 기분 좋은 햇살이 살짝 따가워질 법한 봄날이다.  벽제리 묘지의 풍경도 지금만큼은 스산한 기운 없이 따뜻한 봄날의 축복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봄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고, 민아는 강보에 싸인 채 곤히 잠들어 있는 귀여운 아기를 품에 안은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먼저 경희의 묘지 앞에 도착한 난 비닐봉지에 넣어온 과일과 황태를 꺼내 앞에 놓으며 소주를 한잔 따라 놓았다.    


IMF가 터지고 이듬해 졸업을 하고.. 정신없이 흘러간 몇 년이었다.  가까운 경기도 근방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두 해를 지나고선 매년 오지도 못하고 3년을 건너뛰어 너무나 오랜만에 찾아온 경희의 안식처.  '안식'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안식을 찾았기를 바랄 뿐 더 이상 무엇을 어쩌랴.


그때 준혁이를 그렇게 화장해 버리지 않았었다면, 외롭지 않도록 나란히 합장이라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더욱 안타깝고 마음이 아리다.  영혼은 이승과 저승을 자유로이 오갈 테니, 그래도 두 영(靈)이 만나 이승의 인연과 나 따위 쓰레기는 훌훌 털어 잊어버리고 손잡고 날아올라 웃으며 행복하기만을 기도한다.  어느덧 다가온 민아도 아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경희를 추모하고 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기는 잠에서 깨지도 않고 곤히 자고 있다. 민아는 돗자리를 깔고 과일을 깎고 있다.  과일을 깎으면서도 중간중간 아이를 쳐다보며 자꾸만 체크를 한다. 그러면서 지어지는 미소.. 민아는 자기가 지금 웃고 있는 줄도 모를 것 같다.


아이고 귀여워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이는 꽤나 순해서 차를 타고 오는 내내 크게 칭얼거리지도 않았고, 이내 잠이 들어 지금까지 잠들어 있는 채다.  


참 신기하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로 떠난 경희를 생각하고 추모하며 슬픔의 감정을 갈무리하며 울적해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은 우리는 이내 자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며 미소를 띠고 있다니.

기쁨과 슬픔, 죽은 이에 대한 회한의 상처와 새 생명을 바라보는 환희..  이제는 이런 계절과 봄바람을 느낄 수 없는 경희에 대한 미안함과 민아에 대한 애틋한 마음, 아기를 바라보며 느끼는 평온함..  이렇게 얄팍하고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라니.  이 극단적으로 양가적인 감정이 한 자리에서 이렇게 뒤섞여 혼재해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살려면 먹어야지,

먹으려면 벌어야지..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할 용기가 없는 인간이란 존재는 한없는 슬픔에 무너져 내리다가도 또 그렇게 밥을 꾸역꾸역 욱여넣으며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잠시 애상에 잠겨있다가 난 말을 이었다.   


"민아 너, 아가 키우기는 수월하겠다. 갓난아기가 어쩜 이리 얌전할까."


'쭈글쭈글 진짜 핏덩이 같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네..'  

'내가 이 아이 탯줄도 잘랐었지..'


아이를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이 무심코 뇌리를 흘러간다.




민아는 그날 함께했던 밤 이후로 우리 다시 사귀자거나, 이젠 기은이를 잊고 자기와 함께 하자거나 하는 그런 류의 말을 일절 나에게 하지 않았다.  마치 그날 그렇게 주저하는 나를 리드하여 함께 밤을 보냈다는 이유로, 나의 부채의식을 건드리거나 그걸 빌미로 나서서 나를 붙잡는 것 같은 모양새는 죽어도 싫다는 듯이.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  그날 그렇게 함께 보내지 않았다면 달라진 상황이 있었을까? 모르겠다. 난 언제나 민아의 생각을 다 알지 못했었다. 민아는 언제나 먼저 선을 긋거나, 내가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먼저 얘기를 해주거나 했으니까.  생각해 보니 내가 굳이 민아의 생각을 읽으려 애쓸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읽으려 해 봐도 읽지도 못했겠지만.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아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가게 문을 닫고 영업을 안 하기라도 할라치면 괜스레 민감해져서 어디가 안 좋은지 묻고, 감기몸살 약을 사 갖고 가기도 했더랬다. 약을 먹지 않으면 내 의심은 더 커질 테니, 감기약이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역할이랄까.  원래 자주 아픈 아이는 아니었지만 몇 번을 그렇게 하니 눈치 빠른 민아가 먼저 입을 연다.


"궁금하면 물어라 좀.. 으이구 이 화상아."

"걱정하지 말라구. 나 임신한 거 아니니깐. 너가 원샷 원킬하는 녀석은 아닌가 보네."


그렇게 말하고서는 웃어젖힌다.

본인이 말하고 나서보니 좀 웃겼던지, 내가 민망해할까 봐 일부러 호탕한 웃음을 보인 건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실제로 난 굳이 드러내지 않았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민아야, 그게.. 그걸 묻기가 좀 민망해서.. 그런 거야. 어휴 눈치는 빨라서 그냥."

"진짜 걱정돼서 찾아온 거니 다른 오해는 하지 말라구. 그건... 궁금하기는 했지만, 설혹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내가 그걸 부정하거나 무책임하게 굴지는 않았을 거니까 말야!"


"아이고.. 그랬어요..? 진짜 임신했으면 좋았을걸 그랬네. 아까워라.."

말을 이으며 민아는 계속 웃었다. 하지만 이번의 웃음은 아까와는 달리 약간의 안도감과 아쉬움, 또 흐뭇함 같은 것들이 묘하게 뒤섞여있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다.


민아가 실제 그날 밤으로 인해 아이가 생겼다면 어떻게 했을지 난 짐작하기 어렵다.

민아는 아마도 나에게는 숨기지 않고 말을 했을 것이고, 내 반응에 따라 민아의 생각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아이를 지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지금의 민아는 경제적인 걱정을 할 처지는 아니었으니, 다만 나의 태도와 내 결심에 대한 피드백이 중요했으리라.


그런 대화를 했던 때문이었을까, 이후 민아는 결혼을 할 생각은 없는데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얘기를 간간이 했었고,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진짜 하나 낳아줘?' 라고 농을 치거나, '너 아무 데서나 애 데려오다간 감방 간다' 하면서 웃어넘겼었다.   




99년 2월, 가을학기 졸업을 한 나는 몇 개월을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이내 취업을 했다.


원래는 교수가 되고 싶었고 공부를 계속해서 학교에 남을 생각이었지만, IMF로 인해 경제가 휘청이고 온 국민이 금 모으기를 하며 서서히 구제금융 상환을 진행하고 있던 즈음, 고등학교 시절 같은 알바가 아니라 어엿한 직장을 다니며 한 번은 제대로 내 밥벌이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절은 때마침 인터넷/IT업계 벤처열풍이 불고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메일을 사용하고 html과 css를 독학하며 메모장에 날 코딩을 하고 쉐어웨어인 페인트샵 프로를 써가며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을 해봤던 나로선 예전의 선배들처럼 제조업이나 금융, 공공기관 등에 취업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대학원 학비도 마련할 겸 몇 년만 직장을 다니다 그만둘 생각이었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던 IT 기술을 계속 배우고 써먹을 수 있는 강남의 한 IT벤처기업에 입사지원을 했고, IMF 시절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직장인이 되었다.



기은이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를 생각할수록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나의 무능함, 무력함만 여실히 느껴져 더욱 괴로웠다.


나의 머릿속은 항상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움에 잠겨 있었지만, 만나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로선 고생하고 있을 그녀 앞에 나타나 시간을 뺏을 수가 없었다.  태어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부모의 재력에 대해 불만을 느낀 적이 없었건만, 그때만큼은 내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신 게 아쉽고 원망스러웠다.  부모의 재력으로라도 그녀를, 그녀의 아버지를 도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경희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직도 난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여전히 무력하고

쓸모없는 존재였다.




내가 취업을 한 1999년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눈앞에 두고 벅찬 기대와 설렘과 함께, 한편으로는 Y2K 문제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대응으로 전 세계 IT업계가 시끄럽고 바쁜 해이기도 했다.  Y2K 문제란 기존의 컴퓨터 시스템들의 연도 인식이 98년, 99년.. 과 같이 두 자릿수로 되어 있어, 2000년에는 '00'으로 인식하여 1900년과 2000년의 구분이 안 돼서 시스템 오작동이 일어나 큰 혼란과 사회붕괴가 올 것이라는 예측으로 공포를 안겨주었던 일이다.


컴퓨터 보급 초기에는 천공카드를 쓰던 시절부터 굳어진 전통이기도 했거니와, 용량 처리의 한계가 있어 1980과 같은 4자리 연도를 마지막 2자리 80년만 인식하도록 H/W와 S/W가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산시 19xx 년대와 20xx 년대를 구분하지 못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은행 등 대규모 기관 및 사업장의 시스템들은 그 기능을 떠나 구축된 지 오래 지났기 때문에 구 버전의 낡은 시스템들이었던지라 상황은 더 심각했고, 괜한 걱정이 결코 아니었는데, 이로 인해 코볼 같은 지금은 쓰지 않는 옛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룰 줄 아는 연배가 있거나 이미 은퇴했던 기술자들이 짧게나마 다시 각광을 받아 높은 보수를 받으며 개선 작업에 투입되었다. 말 그대로 개발자들에겐 지옥의 한해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기 2000년, 인류는 새 천년을 맞이했다.  


예년과 같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아쉬움과 설레임의 연말 분위기에  더해 뉴 밀레니엄과 Y2K문제 등이 더해져 그 열기는 한층 더 뜨겁고 미디어의 홍보도 요란했지만, 막상 새해가 되고 나니 그토록 우려했던 시스템 오작동이나 일부 종교광들이 기대하거나 혹은 두려워했던 '휴거'라든가, 종말 같은 것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은 아무 일 없이 곧 평온해졌다.  


그렇게 새천년을 맞이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 민아에게 연락이 왔다.  축하할 일이 있는데 내가 와서 축하해 주었으면 한다고.  

가게가 아니라 집으로 오라는 말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건지 궁금해졌지만 가보면 알겠지 하고 더 묻지는 않았다.


퇴근을 하고 서둘러 신길동으로 향했다. 출퇴근하기 좋도록 민아가 여의도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만한 신축빌라였다.


"딩~동~~!"

벨소리가 울리니 이내 문이 열렸다.


민아가 밝은 표정으로 맞이한다.

"어서 들어와 재용아"


거실엔 조그만 탁상 위에 케익과 간단한 다과, 맥주와 음료가 있었다.


"웬일이야 집으로 다 부르고.  저번에 집들이 왔을 때 보고 집에서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자, 무슨 축하할 일이 있으신가? 어서 얘기해 봐"


자리에 앉아 맥주를 따며 옆에 있던 초를 꺼내 케익 정중앙에 꽂았다.  몇 개를 꽂아야 할지 물어볼 필요도 없게 길다란 초 1개만 있었다.  잔에 맥주를 따르고 민아에게도 잔을 권했지만 민아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이 없다고 쥬스나 좀 마시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평소답지 않게 살짝 홍조를 띠더니 부끄러운 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아기 가졌어 재용아"


"......??"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아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런 말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이어서 설명을 계속해달라는 제스처였다.    


"나 임신했다구.."

"내가 얘기했었잖아, 아기 갖고 싶다고.."  


민아의 목소리는 갈수록 잦아들었다.      


예전에 간간이 했던 민아의 얘기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고, 여기저기서 방법을 계속 찾아보았었다고 한다.  그러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냉동 정자를 이용해 난임 부부가 임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개방형 정자은행이 이미 몇년 전에 부산대병원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단다.  그래서 병원에 찾아갔었다고.  


하지만 알아보니 조건이 너무 까다로와서 혼인을 한 법적인 부부이면서 불임이거나 난임인 부부만이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었고, 자신같이 미혼의 혼자 사는 여성이 기증자의 정자를 받아서 출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몇 년이 지나 올해는 서울대병원에도 설립됐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도 가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여서 정상적인 루트로는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너 그럼 설마..."


여기까지 듣고 걱정이 된 나는 입을 열었지만, 민아가 손으로 제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너가 나 책임질 거도 아니면서 불법이니 어쩌니 그런 얘기는 됐구, 어쨌든 축하해 주면 좋겠어."

"누구에게 자랑스레 말할 얘기는 아니라서.."

"그래도 오늘 같은 날, 혼자 있기는 좀 그렇고 재용이 네가 함께 축하해 주길 바란 거야"


난 더 이상 다른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일은 저지른 뒤였고, 민아 말처럼 민아가 짊어질 운명이고 민아의 결정이었다.


게다가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서 정자 기증을 받아 시술을 했다 하더라도 법을 어겼다는 측면의 리스크만 있을 일이지 민아라면 어련히 알아서 건강한 정자를 기증받아 제대로 착상을 했을 것이었다.


나 때문에 살짝 무거워진 분위기를 어서 바꿔야 했다.


"축하해 민아야! 그래, 축하할게. 진심으로.."

"너의 결정을 존중해.  이제 앞으로 몸관리 건강관리 잘해야 해. 태교도 잘해야 하고 말야. 잘 알지?"

"넌 분명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가 될 거야..!"


민아가 배시시 웃는다.  여자에게 '엄마'가 된다는 생각은 어떤 느낌을 주는 것일까?


엄마는커녕 '아빠'가 되는 상상도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던 나로선 그 설렘과 불안, 환희를 정확히 알 길은 없었지만, 민아의 인생이 이제는 진짜 2막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가게도 잠깐 나가서 관리 정도만 하고, 실제 영업과 손님 접대는 직원에게 맡겨야 할 터다.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니 민아는 이미 에이스에게 잘 인수인계 해주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기억하지? 그날 낮에 인사시켰던 아이"


"그리고 재용아..."


이내 말을 잇다가 민아가 잠시 머뭇거린다. 낌새를 눈치챈 나는 말했다.


"뭔데? 어서 얘기해 편하게, 우리끼리 못할 얘기가 어딨니. 축하 선물 모 해줄까?"

    

그러자 민아가 용기를 낸 듯 말을 이었다.


"아직 태명도 안 지었지만, 난 너가 아이의 '대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줄 수 있겠니?"


"세상에 나오면 이 아이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잖아."

"애기 때야 내가 다 보살펴주고 잘 키우겠지만, 커가면서 외로울 것 같아 걱정 돼."


"내가 아플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물어보거나 의지할 사람 한 명쯤은..."   


난 조용히 민아의 입을 막았다.


왠지 애처로운 생각이 몰아닥치며, 쉬이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한 채로 난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그렇게 예비엄마가 된 민아와 그 아이의 대부가 될 나, 그날의 저녁은 그렇게 미지의 불안함과 따뜻함이 함께 했다.




"응애, 응애~~"


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민아를 보며 한참을 상념에 젖어있던 난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가가 이제 깨어 울고 있다. 민아가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도 계속 우는 것을 보니 배가 고픈가 보다.  민아는 잠시 나를 보고 고개를 돌리라는 손짓을 하더니 이내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난 고개를 돌리고 짐짓 모르는 척했지만, 실은 궁금해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시선을 최대한 옆으로 돌려본다. 궁금하고 보고 싶다.  아이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엄마의 모습..


내가 알던 장난기 많고 영악한 민아가 이제는 한 생명의 엄마가 되었다. 그 작고 여린 생명은 전적으로 민아에게 의지하고 있다. 아가에게 엄마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성에 대한 감정이 아닌 무언가 성스러운 느낌의 그녀의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 아이가 배불리 먹고 젖을 떼면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야 할 테다.


경희를 여기에 남겨두고...

그렇게 또 민아는 민아대로, 나는 나대로,

우리의 일상은 이어지겠지.


그리고 어디선가 기은이의 일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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