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잔뜩 젖어있는 편지를 받으며, 말 그대로 '이등병의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에는 내가 제대를 하고 나서 기은이와 이렇게 될 줄 정말 꿈에도 몰랐었다.
이제야 다시 같은 캠퍼스에 있게 되었지만, 얼굴도 잘 못 보면서 어색해진 상태로 마음에 응어리를 진 채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역시 아직은 같은 캠퍼스에,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는 한 공간에 있기 때문이었다.
'완전 서운해!'
'정말 이해가 안 돼!!
'너 때문에 너무 가슴 아파!!!'
이러면서 나의 삐침을 마구마구 발산하고 싶었던 걸까. 그녀의 변한 모습에 당황스럽지만 이제 내가 거꾸로 매달리기는 싫었던 걸까. 그 알량한 자존심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은 기은이가 이해가 안되고 서운한 마음에 이런 상태로 헤어진 듯 아닌 듯 어정쩡하게 지내고 있지만, 막연하게나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존심을 접고 내가 노력하면 언제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그런 믿음.
복학을 한 2학기는 금세 지나갔다. 어느새 겨울이 다가왔고, 세상은 점점 시끄러워졌다.
1997년 11월. IMF 사태가 발생했다..!
나라가 부도가 났다고 세상이 난리가 났다.
기업은 부도가 나도 어떻게 국가가 부도가 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고 불리는 경제 성장의 달콤한 과실에 젖어 있었고, 학교에서 숱하게 땡땡이치고 놀러만 다니던 선배들은 졸업을 하고선 다들 직장에 취업도 잘들 하기만 했었다. 졸업한 선배들이 가끔씩 학교로 찾아올라치면 가난한 학생들이 평소 즐기지 못했던 맛있는 술과 고기를 사주었고, 여자 후배들은 경양식 집에도 데리고 가곤 했다. 선배들이 주는 명함을 받으며 선망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우리도 졸업만 하면 저렇게 어엿한 직장인이 되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로 알고 있었다.
노태우가 물러나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가투도 점차 줄어들었고, 취임하면서부터 추진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과 함께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여 해체하며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YS의 사이다 발언은 국민들의 속을 뻥 뚫리게 해 주었다.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시행 등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바람직한 방향으로 좋아져만 가고 있는 줄 알았다.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의 부패비리 등 정경유착 사건과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사회의 안전시스템을 의심케 하는 각종 사고는 끊이지 않아 사고 공화국이란 말도 떠돌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미래는 대체로 낙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경제 우등생 한국의 신화를 뒤로 한 채, 사실상의 국가부도를 인정하고 국제기관의 품 안에서 회생을 도모해야 하는 뼈아픈 처지가 된 겁니다"
MBC 이인용 앵커의 목소리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여름부터 태국에서 시작된 동남아 금융위기가 어쩌고 할 때만 해도 먼 남의 나라 얘기였고, 사태가 벌어지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신문은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 라는 제하로 IMF총재의 인터뷰 기사가 쏟아졌었지만, TV에선 앵커가 긴장된 표정으로 IMF 구제금융 요청 뉴스를 긴급하게 전하고 있었고,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기사가 신문마다 대문짝만 하게 인쇄되어 나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재벌들이 막무가내 문어발식 경영으로 짊어진 부채는 천문학적 수준이었고, 기업들의 부채 상환기일 도래와 함께 아시아 경제위기에 불안감을 느낀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기업들의 부채는 연장도 되지 않고 상환을 독촉받게 되었고, 단기적으로 몰아닥친 이 종합적인 충격은 감당할 수조차 없는 정도로 다가와 기업이나 정부나 당황하고 적시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름만 대면 알던 유명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했고 매일매일 뉴스에선 암울한 소식들만 나날이 전파를 타고 있었다. 기업들의 파산이나 부도는 곧바로 대량 실직사태를 발생시켰고, 해당 기업들에 대출을 해주었던 은행까지 무너지면서 대규모 실업과 대량의 부동산 매각, 금융 불안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벌어져 외환위기 상황이 확실시된 후에야 IMF의 계획에 따른 전방위적인 경제구조 변경과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실행되었다.
이미 취업이 결정되었었거나, 취업을 앞두고 있던 졸업 예정 선배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학내도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고 내년이면 가을학기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싱숭생숭해질 수밖에 없었다.
12월 3일, IMF와의 협상이 임창열 경제부총리의 기자회견으로 발표되었다. IMF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사실상 한국의 경제주권은 IMF에 넘어간 셈이었다. 자금지원 규모를 밝히며 협상의 타결 소식을 전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그 조직이 이후 자신들 입맛에 맞는 대로 얼마나 가혹한 대가를 요구했는지는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은이의 다음 학기 휴학 소식을 들었다. 기은이네 집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로선 아직 많이 서운하고 상심이 큰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돌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노력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려 해도 민아와의 하룻밤 때문에 나 스스로 죄스러운 마음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한 채로 맞이한 종강.. 직접 연락을 하진 않았지만 기은이의 소식은 동기들을 통해서 빠짐없이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기은이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회사 역시 외환위기 사태의 충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부도가 난 건지, 부도가 날 위험에 빠져 사력을 다해 방어하고 있는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나라가 부도가 난 판에, 대기업과 은행들도 무너지고 있는 판국에 기은이 아버지의 회사라고 무사하기는 경제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어렵지 싶어 보였다.
너무나 걱정되는 마음에 기은에게 삐삐를 쳤지만 응답은 오지 않았다.
이렇게 뜬금없이 오랜만의 연락이 좀 뻘쭘하긴 하지만, 언젠가는 할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예전처럼 무작정 집 앞으로 달려가기엔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무원이신 아버지는 IMF사태로 인해 당장 실직을 하거나 하실 처지는 아니었고, 우리 집은 가족들이 당장 피부에 와닿는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닌지라, 기은이의 집안 분위기가 지금 어떠할지, 얼마나 심각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회사는 문제가 생겨도 그동안 벌어놓으신 것이 있으니 생계에 지장이 생기고 그런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직원들의 대량 해고가 불가피하다면 급여와 퇴직금도 한 번에 목돈이 나가야 할 텐데.. 게다가 노조들의 시위도 강경할 것이고, 무엇보다 회사의 차입금이 많은 상태라면 대표이사가 갚아야 할 테니 사재까지 털어야 하는 건 아닌지, 혹여 연대보증이라도 서신게 있는 건 아닌지..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기은이는 지금 어찌 지내고 있는 건지.. 가슴이 답답했다.
삐삐에 계속 답이 오지 않자, 내가 제대할 때쯤 서비스를 시작한 한메일쩜넷으로 기은에게 메일을 보냈다.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을 쓰다가 본 월드와이드웹(www)의 그래픽 웹페이지는 새로운 세상이었고, 한메일은 여름부터 써보기 시작해 복학을 하고는 곧잘 쓰고 있던 터였다. 기은이 메일주소는 동기를 통해 금방 확인이 되었다.
"기은아, 소식 들었다.
너무 당황스럽구나. 오빠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겠지만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얼굴 좀 보자.
이런 상황에 사랑 타령하며 징징거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구.
슬프고 힘든 일은 나눠야 하지 않겠니?
그냥.. 너의 옆에서 이야기 나누고 위로라도 해주고 싶어.
내일 저녁, 집 앞 놀이터에서 기다릴게.
시간이나 장소는 기은이 편한 대로 조정해도 돼.
삐삐도 좋고 메일 답장도 좋아.
그럼 연락 주렴."
메일을 보내고 난 후, PC를 켜놓은 채로 몇 분마다 계속 메일함을 클릭했다. 이제나 저제나 답장이 올까 기다리느라 속이 타들어갔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받은편지함에 볼드체의 굵은 글씨로 새로운 메일이 보였다. 기은이였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메일을 열었다.
"내일 밤 10시 반, 중도에서 봐요"
간단한 답신이었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종강을 해서 학교에 갈 일이 없는데 학교 앞 카페도 아니고, 굳이 중도에서 보자는 게 좀 의아했지만 내일 기은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시 우울해졌다. 이런 상황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다음날,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오매불망 시계만 쳐다보던 나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기은이는 중도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두툼한 파카를 입고 있었지만 스산한 날씨에 추워만 보였다. 일찍 와 먼저 기다리지 못하고 기은이가 날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기은아!”
“왔어?”
기은이는 날 쳐다보며 담담하게 얘기했다.
“… 오빠. “
오랜만에 만난 녀석의 입에서 한동안 듣지 못했던 뜨겁던 시절의 호칭이 흘러나왔다. 잠시 잠깐이지만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함께 그 부드러운 음성의 여운을 느끼고 있던 내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 기은이가 말을 이었다.
“저기, 밤하늘 좀 봐봐”
“맑아서 그런지 오늘은 별이 좀 보인다, 그치?”
“응, 그러네. 저기 저 별은 유난히 밝은 게 천랑성(天狼星)인가? 시리우스, 알지? 옛날에 티비에서 봤던 브이(V)의 외계인들이 온 곳이 시리우스계 행성이었잖아"
“역시 오빤 이것저것 아는 게 참 많아”
“…. 난, 우리가 처음 같이 갔던 낙산 동해바다의 그 밤이 떠올라. 모래사장에 앉아 함께 봤던 밤하늘 말야.”
“…….”
“오빤 그날의 밤하늘처럼 내 맘에 다가왔었지.”
“기은아, 상황이 좀 어떤 거야? 아버님은 요즘 어떠시구?
마음속에서는
'사랑해 기은아! 지금도 많이.. 오빠 맘은 변함이 없어'
하고 외치고 있었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많이 힘들겠지만 잘 헤쳐나가 보자. 아버님께서도 결국 이겨내실 거야"
바람이 찬데 장갑도 끼지 않고 두 손을 모은채 있는 기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런데 기은이 손이 차갑다. 단순히 추운 날씨에 손이 차가워진 느낌이 아닌 그 어떤. 나에겐 익숙한 감촉이다. 자세히 보니 손이 아직 살짝 쭈글쭈글한 게 물에 불어있는 모양새다.
"기은아, 손이 왜 이래? 너 학교 앞에서 알바하고 올라온 거니?"
"그래서 시간도 이렇게 잡은 거야?"
말이 없다. 쳐다보니 기은이는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발을 꼼지락 거린다. 그러다 내가 말을 더 이어갈 것 같은지 이내 퉁명스럽게 말한다.
"학생이 방학에 알바하는게 당연한 거지 뭘 새삼스럽게.."
마음이 아려온다. 이 추위에 써빙보고 설거지하다 일 마치고 또 여기까지 혼자 걸어왔을 생각을 하니 안쓰러워 죽겠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를 가고 여행을 가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아버지 회사나 시청 같은 공공기관에서 하던 아이였다. 이렇게 손에 물 묻히고 술 마신 손님들 상대하는 힘든 일은 해본 적이 없을 터였다.
기은이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대할 무렵에 기은이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던 이유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실은 내가 상병을 달고 첫 휴가를 나올 때가 되어가던 즈음, 나에게 줄 선물과 그동안 써놓고 미처 부치지 못했던 편지들, 그리고 나에게 받았던 편지들.. 이런저런 물건들을 어머니에게 들켰고, 어머님께서는 제법 진지한 만남을 하는 것 같은 딸의 모습에 걱정이 되어 아버님께도 말씀을 하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님이 아시게 됨으로 인해, 기은이네 집에서는 나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났던 것이다. 특히 아버님은 평소엔 조용하고 온화하시다가도 한번 화가 나면 불같은 성격이 올라오는 타입이시라고 하는데, 남자친구 얘기를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으시면서 기은이도 서서히 대답이 좀 퉁명스럽게 나갔고, 그런 대화들이 오가다가 사달이 난 게 아닌가 싶었다.
"기은이 너, 예전에 공부하느라 도서관에서 밤새고 온다고 그러고, 학회 일 때문에 과실에서 밤샌다 그러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그러던 말들이 다 그놈하고 같이 있느라 그랬던 거냐 응?"
이 말씀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남자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된 아버지가 추궁하자 결국 진지하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를 했고, 아버님께서는 호구조사에 들어가셨고.. 뭐 대단한 집안이랄 것 없는 남자친구의 이력에 이제 적당히 헤어지고 그만 만나라고 말씀을 하셨단다. 군대에 가서까지 이 정도 기간 만나고 사귀었으면 이제 그만하라고. 결혼은 안되니 꿈도 꾸지 말라고.
기은이는 결혼하고 말고와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 계속 만날 거라고 생전 처음 아버지에게 대들었고, 결혼도 안 할 거면 왜 계속 만나냐, 너 나이도 이제 곧 20대 중반이 넘는데 언제까지 연애를 하겠다는 거냐..
당장은 아버지의 뜻을 꺾을 수 없었던 기은이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차마 나에게 말할 수는 없었고, 하지만 또한 그 일과는 별개로 (그 일이 기폭제가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계속 생각하고 서서히 고민되어 왔던 자기 자신의 내면의 변화를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오빠를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내게 어떤 사람인지.. 그런 것들.
아버지 뜻을 따른다고 맘 변했다고 혹은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매몰차게 대하고 일부러 헤어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런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예전하고 똑같이 대하고 우리 둘만 알콩달콩하는 것이 내 맘대로 잘 안되기도 했고, 그러면서 그렇게 어중간하게 대하게 되었었던 거라고...
'나만 맨날 편지 보내고 오빠의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답장을 기다리느라 지치기도 했지만, 그게 서서히 쌓여가면서 내가 좀 변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는 기은이의 말에서는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해 보니 96년 초에 받았던 편지에서 이미 이상한 기미가 보였더랬다. 그때 진지하게 생각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편지도 자주 보내고, 기은에게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내 생각만 하고 힘들다고, 남들 다가는 군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연민에 빠져서 기은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게 아닌가!
"오빠가 제대하기 직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서 앞으로 모른 척하고 아는 체 안 하고 살 거냐고 이미 묻기도 했었지만, 그런 상태에서 오빠가 제대하는 날에 내가 어떻게 반갑게 맞이할 준비만 하고 있을 수 있었겠어? 본인은 그렇게 해놓고 제대하는 날에 커다란 곰인형 사 갖고 오면 내가 좋아서 헤벌레 할 줄 알았어?"
"......."
난 아무 말없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매섭게 추궁하던 기은이가 감정이 좀 가라앉았는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잡고 있던 내 손 속으로 주먹을 오므리며 더 들어온다. 난 그 차갑고 조그만 주먹을 감싸 쥐며 내 체온을 최대한 전달하려 했다.
"암튼 미안해 오빠..."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은 대충 흘러들어. 다 의미 없다.."
"이젠 우리 집이 나앉게 생겨서 연애고 사랑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 잘 나가던 아빠 때문에 그 뜻을 못 꺾고 오빠한테 그렇게 했다가, 아빠 사업이 망해서 이제 누구를 반대하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시니 다시 오빠랑 예전처럼 지내겠다고 할 수도 없다고.. 내가 그럼 아빠 맘이 어떻겠어? 어찌하든 난 나쁜 년 되는 거야..."
"휴....."
난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한숨이라도 쉬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오늘 답장을 보내서 보자고 한 이유는 오빠가 소식을 들어 알고서 연락을 했는데 계속 걱정만 하게 둘 수는 없었고, 내 상황을 정확히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야. 그리고 내 생각도"
"이제 난 다른데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안될 것 같아. 생전 가족 한번 걱정하게 안 하시는 아빠가 상황이 안 좋다고 엄마와 나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하시는 걸 보면 회사가 잘 정상화되기는 글른 것 같아. 어제오늘 급하게 현금을 좀 융통해서 엄마한테 맡기셨고, 이미 가압류가 들어오고 있어."
"그러니 '사랑' 같은 건 나에겐 너무 사치스런 감정이 된 거야."
"내가 처음에 오빠한테 왜 고백할지 말지 고민했는지 얘기했었지? 아버지의 반.대. 같은 거 따위,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어.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오빠랑 계속 만나면서 우리 너무 좋았고. 내 마음이 예전하고 똑.같.았.다.면, 그러니까 오빠랑 빨리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뭐 그런 거라면 어떻게든 아빠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던가, 정 안되면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내 맘대로 했을 거야. 오빠만 함께 한다면"
"그런데, 오빠를 생각하는 나의 기본적인 마음이 변한 건 아니지만, 그리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오빠의 의심처럼 다른 사람이 생기고 그런 것도 전.혀. 아니지만, 이미 몇 차례 편지에 썼듯이 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졌어. 오빤 아직도 이해 못 하겠지만 말야."
"오빠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인생에서 영원히 '친구'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야."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더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어.."
"우리 인연이 끊어져 앞으로 영원히 못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지만 말야...."
"......"
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알 듯 모를 듯, 갑자기 기은이가 거대하게만 느껴졌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기은이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인이 아니면 이제 그만 돌아설지, 기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자 친구로 계속 옆에 남을지는 내가 선택할 일이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바 아니었으나, 내 뜨거운 가슴은 아직 선뜻 어떤 대답도 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기은이와 나여서였던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그 누군가와 함께였어도 그건 어느 순간 온 우주의 바람이 성공적으로 합이 맞춰져 우연히도 혹은 기적적으로, 길고 긴 인생의 여정을 질주하는 기차의 옆자리에 아주 잠시 동안만 함께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건, 우리의 생물학적 시간은 비록 같은 해에서 출발했지만 기은이는 조금 더 일찍 ‘관계‘에 대한 무언가를 나보다 더 깨닫고, 나보단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갔던 그런 이유였을까. 난 바보같이 지금의 마음만을 간직하고 이 감정과 이 상황, 이 관계가 언제까지나 영원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느릿느릿 답답하게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은이와 난 여전히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우리의 영혼이 통하여 마음과 마음을 잇는 전류가 흐르고 함께 호흡을 나눴던 때는 어느덧 지나가 버린 듯했다. 마치 서로 다른 평행우주 속에서 같은 캠퍼스의 공간을 거닐고 있둣이, 그렇게 우린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같이 있지만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듯, 우린 서로 다른 타임라인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이때만큼은 간절히 원했다.
다시 군에 입대했던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사회와 단절된 채 멀리 떨어져 우리의 공간은 나뉘어졌지만, 같은 꿈을 꾸며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던 그 하루하루를 다시 보낼 수 있기를.
이제는 너무 늦게야 알았다.
눈뜨고 숨 쉬는 시간 내내 나는 너를, 너는 나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갈구했던 그때가 비록 가슴은 아팠지만 얼마나 행복했던 때였는지를.
그런 상황도, 그런 마음도 모르고 난 ‘인도여행‘ 따위의 핑계나 생각하고 있었으니. 휴.. 천하의 바보 같은 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주 오지도 않는 편지를 원망스레 기다리며
혼자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을
기은이의 착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안타까운 마음보다 후회와 미안함으로 점철된 이 마음이
그렇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