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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Nov 24. 2024

부치지 못한 편지 1, 2


1.

옛날에..  꽤 오래전에,

그러니까 졸업하기 전에 군에 가기로 마음먹은 후에 미리 써 두었던 편지입니다.  당신을 보내고 나서 이 편지를 써 두었던 것이 문득 생각납니다.

.

.

기다려 달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상투적인 것은 피하고 싶어요.  의식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기다리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그런 것에 과히 신경 쓰진 않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입이나 시선, 도덕적 의무감 또한 느끼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느 날 문득 많이 잊어버린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도 한심하게 생각지 말고요.   


서글픈 이야기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 것으로 기다리기엔 2년은 아마도 너무 긴 시간일 테니까요.


그냥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 인연이 닿는 대로 만나면서..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군요. 기은이가 잘 이해하리라 믿을게요. 기은이는 어른스러우니까..)  가끔 내 생각이 아면 나는 대로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러다가 언젠가 내가 기은이의 앞에 다시 섰을 때 -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지, 많이 변했을지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 그때도 불현듯 마주친 내가 어색하지 않고 반갑다면, 그때까지도 내가 기은이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때 반갑게 서로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설령 그때 기은이에게 생의 전부가 될 만한 다른 남자가 있다 해도, 그래서 그 남자를 놓칠 수 없다 해도 속이지 말고 내게 편하게 얘기해 주었으면 해요.  축복해 줄게요.


내가 보기보다 보수적이라고 그랬었죠? 그런 내가 이런 소리 한다고 흔히 그렇듯 떠나는 사람이 의례 하는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지 말았으면 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이런 소리 하는 것은 우리가 다음에 만날 때까지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더구나 서로 떨어진 단절의 시간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

2년 전의 내가 기은이를 사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듯이..  아마 내가 떠나지 않고 계속 기은이의 곁에 있었다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언젠가 내게 준 편지에 '얼굴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었던가요?

이제 내가 정답을 말해주려 해요.  적어도 내가 판단하는 한, 그건 맞는 말이에요.  아마 내가 제대하기 전까지 살아가면서 기은이가 여러 번 마주치게 될 느낌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함께 하던 시절에 주고받은 편지는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전달해 주었지만, 지금의 편지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 더욱 소중합니다.  앞으로 한동안 당신과 나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매개체일 테니까요.


..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어느 쪽의 아픔이 더 크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더구나 우린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미 한번 별리의 고통을 겪어보고 이제는 서로 반대의 위치에 서는 것뿐입니다.

나는 이것이 시련이라고, 혹은 서로의 사랑에 대한 테스트라고 생각지 않으려 합니다.  잘 생각해 보니 그런 건 아닌 듯싶어요.


그냥 이런 것 모두가 우리 삶의 한 부분들이 아닐까.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하던가요?

그런데 아무래도 떠나는 쪽이 조금은 더 아픈 것 같기도 해요. 기은이도 날 떠나 태평양을 건너갔을 때 그랬었나요?

언젠가 누가 그러더군요. 일찍 군대 갈거였으면서 애 당신과 사귀었냐고.. 왜 기은이를 힘들게 하냐고..  그리고 가기 전에 미리 정 뗀다고 안 만나고 그러지 말라고..


그리고 또 누구는 그랬지요. 당신과 인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그럴 자신이 있다는 내 말에.. 음, 이건 더 이상 별로 말하고 싶지가 않군요. 많이 아팠더랬어요. 조금은 열도 받아서 하마터면 험한 말이 나올 뻔도 했었지요. 사랑스러운 기은이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보여요. 그들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가 되겠지요. 나와의 관계가 있으니 발톱을 드러내진 못하지만.. 난 잘 느끼고 있어요. 사랑 앞에 무너지는 우정, 의리.. 그런 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많이 봐 왔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싶진 않지만 참 요즘 사람들은 말을 너무 쉽게 쉽게 하는 것 같아요.  사랑만큼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는 없다 하면서도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지 않느냐,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느냐.. 왜 그랬냐.. 하면서 앞뒤 재고 따지고..


말이란 것이 사람을, 사람의 그 조그만 가슴을 얼마나 크게 후벼 팔 수 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 말이죠.

얘기하다 보니 우습네요. 나부터도 누군가에게 많이 그런 적이 있었을 텐데.. 그래도 딴에는 그리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며 살아왔는데도 그렇네요.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 나중에 친해진 후에야 들은 얘기지만 - 아이들이 나를 많이 무서워했다고 해요.

그때는 내가 조금 힘들었던 때이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말을 너무 안 한다고 이상하게 여겼지요. 극도로 내성적이고 우울해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또 놀 때는 잘 놀고 그러니 좀 특이하게 보였나 봐요.  과실에서 어쩌다 웃으면 동기들이 웃으니까 보기 좋다고 하면서 많이 좋아하면서도 근데 오히려 더 어색하다고. 일부러 안 그래도 된다고 하던 때도 있었어요. 기억나죠? 물론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그런 것들이 이유가 되었을 것 같아요.  친하게 지내고 해 봐야 언젠가는 갈등이 생기고 상처 주고 상처받고 떠나고 헤어지고..

돌이켜 보면 나 홀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입으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은 투쟁이기도 하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네요. 최소한 현실 속에서 그렇게 되어 버리는 상황적 요소가 너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그런 생각 혹시 해봤나요? '앞으로 한 10년쯤 지난 후에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부르게 될까...' 하고.


밤하늘을 보며,

당신의 龍이



Dear 오빠야..

오늘은 정말 밝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전화 목소리 중 가장 밝고 명랑하고 씩씩한 그런 목소리였답니다. 괜히 나까지 들뜨게 만드는… 괜히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밝게 만들어 주는 듣기만 해도 미소 짓게 하는 그런 목소리였답니다.  

‘여보세요’라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가 너무 행복하게 들려서 내 기분도 엄청 좋아졌답니다. 잘 지내는 것 같으니 너무 기쁘답니다. 정말 그 밝은 목소리에 할 말을 모두 잊어버렸답니다. 그래도 후회되지 않습니다. 목소리를 들었으니까요.

헤.  얼마나 충격인지 모를 거예요. 오늘 밤엔 잠들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구 그러고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리고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 더 음악소리가 좋게만 느껴집니다. 세상이 예쁘게만 보입니다.



2.

대낮부터 청승맞게 묻어 나오는

너에 대한 그리움은

끝내 너의 모습이 가득 담긴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


이날 이때껏 살아오면서

태어나던 날을 제외하고는 숱하게 많던 방황의 날들 속에서도 아무런 내색 없이 살아가는데 길들여졌던 까닭일까.

이런 나를 느낄 때마다 밀려오는 모멸감에 진저리를 친다.

너도 나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너로 인해,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 너의 억양 하나하나에 이토록 신경이 쓰이고 나의 온몸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너에게로 집중될 줄은 예전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런 날은 이토록 절절한 그리움과 간절한 보고픔이 정말로 너에 대한 사랑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절친한 동기들 몇 명으로 인해 이대로 끝날 인연은 아니라 해도, 고달픔 속에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해도..

군대란 곳은 나에게는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은 모멸의 가정만을 남길 것 같다.

예전엔 그러지 않을 거라, 그러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너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곳을 아무래도.. 아낄 수는 없게 되었다.


첫사랑은 깨어짐으로 해서 그 존재가치가 있다고 하던가?

너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내게는 첫사랑이 아닌 너이기에 오히려 막연한 안도감과 확신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었다.

내가 너에게 첫사랑이라면… - 물론 아니겠지만 - 머리가 복잡해진다.


예전엔 너를 가장 잘 안다고 감히 생각했었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만으로도 모든 역경을 충분히 견뎌내리라 생각했었다.  이제 나에게 너는 하나도 알 수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현실은 정말 차갑다.


중간 결산이 맞지 않는다.  오늘 한마디로 x 됐다. 급여불출 대장 작성 시 너에 대한 생각을 100% 배제시키는데 실패한 때문인가.


너와 나를 갈라놓은 시공의 벽이 너무 높게만 보인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공간 속에서, 정지된 삶을 이어가면서도 생각이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고마움이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제주에서 올라온 촌스럽고 풋풋한 선머슴 같아 보이던 너에게, 너에 대한 나의 마음에 이토록 복잡한 장애가 발생하여 정신적인 궁리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내 삶의 예정된 계획표에는 들어있지 않았었다.


아직 남아있는 날들은 많건만, 낭패와 허탈감의 결과로

이미 나의 의지력을 대부분 소비해 버렸다.  


- 龍.



ps. 너를 놓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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