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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l 06. 2024

아버지의 투병일지

잊고 있던 500여 일간의 기록


매주 일요일마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었는데, 지난주는 그러하지 못한 채 건너뛰게 되었다.


일이 좀 바쁘기도 했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겠으나, 실은 15년 전 장례를 치른 후 정리했던 아버지의 유품 중 투병하시는 내내 곁에 두고 쓰시던 다이어리를 다시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져 글을 올리기 쉽지 않았다.  일기장이랄까, 투병일지라고 해야 할까..  워낙에 독서를 좋아하시고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으셨기에 하등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오래 지났지만 당시의 기억은 또렸하다.  우리 형제들이 한번 보고 나서, 이 다이어리는 내가 간직하겠다고 했었다.  아버지의 필체도 간직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복약 기록이나 치료과정에 대한 글 외에 투병하시는 내내 느끼셨을 상념들도 담겨있을 것이기에 불태우지 않고 간직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갈 때 외에도 한동안 종종 생각날 때마다 혼자 훌쩍 묘소에 다녀오던 것처럼,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이 다이어리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흐르는 세월 앞에 인간의 기억은 덧없는 것일지니..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언젠가 이 다이어리를 박스에 두고 난 이후에는 서서히 뇌리에서 잊혀 갔던 것 같다.


문득 생각이 나서 한참을 뒤져 찾아낸 아버지의 다이어리..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쓰셨던 아버지의 투병일지를 다시금 읽어본다.  급속도로 악화되어 발견 시 이미 말기 판정을 받았던 그 힘겹던 독한 암과의 싸움..  그리고 그렇게 육신이 서서히 지쳐가고 스러져 가는 동안 약해지지 않으려 애쓰시던, 강한 정신력을 유지하려 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새김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극심한 통증에 두렵고 힘든 마음을 혼자 종이에 독백해 놓으신 글들을 보니 다시금 목이 매인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그렇게 외로운 싸움을 하시면서 마음도 차츰 약해지셨다.  우리의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아버지껜 어떻게 받아들여지셨고 어떤 서운함과 실망을 느끼셨었는지도.. 다시금 읽는다.  


이래저래 한다고 했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병구완에 오롯이 힘쓰지 못했던 것이 못내 한이 된다. 뭐 대단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고. 얼마나 벌고 있었다고. 내게 딸린 식솔들 먹여 살려야 한다는 어설픈 책임감과 알량한 봉급에.. 잠시동안이라도 아버지 병구완과 온전히 맞바꾸지 못하고 어설프게 병행하였던 것이 후회스럽다. 뭐라도 좀 달라졌을까..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건강하신 상태로 훨씬 더 오래 살아계셨을까.. 둘째 손녀도 보고 가시진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보양을 위한 맛난 음식을 사드리려, 병원 치료 가시는 날.. 가려고 생각하다가 이런저런 핑계로 한 번이라도 더 못 갔었을 그날들 하루하루가 죄송할 따름이다.  


박스 안에 고이 있던 채여서인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다이어리 상태가 멀쩡하다.


2008년 11월 18일...  

이 날을 마지막으로 텅 비어있는 그 오른편의 빈 종이를, 그 여백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삼켜내기 쉽지 않다.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갔고, 이제 나의 세대도 중반전을 지나 종반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이만 잠을 청해야겠다.


아버지가 작성하신 복약일지
2008년 7월의 일정과 메모들
항암치료 투병 중에 무슨 공부셨을까. 고통과 쇠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시려고 그저 평소처럼 하듯 하시려던 거겠지.
무서울 수준이라고 표현하신 고통.. 가늠이 안된다. 얼마나 긴 하루셨으면 기인 하루라고....
투병 말미에는 화장실을 혼자 가실 수 없었다. 그 성품에 무척 치욕적이셨을게다. 약한 마음을.. 형에게 딱 한번 표현하셨었다. 막내인 나에게까진 용납이 안되셨을게다.
아버지께서 고맙다 표현하며 기특해 하셨던 것을 보니 감사할 따름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히 아이일 뿐이다.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많이 화나고 서운하셨던게다.
이승에서의 모든 인연과 번뇌, 다 털고 홀가분하게 가셨을까.
마지막 메모... 우측의 종이에는 아버지의 글이 쓰여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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