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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n 02. 2024

프롤로그

선배 아버지의 병환 소식


자정을 넘은 시간, 아버님의 병환 소식을 알리는 선배의 글을 보고 문득 상념이 많아진다.


그 선배님만큼 급작스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난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다.  아버지는 워낙에 두주불사 하시는 분이셨지만, 대신 건강 또한 분야별로 다니는 병원이 따로 있으실 정도로 꼼꼼히 관리하시던 분이었다.


어머니가 유난스럽다고 모라고 하셔도 꿋꿋하게. 한편으론 사람을 좋아하시며 꽤나 약주를 많이 하셨던 아버지 셨기에,  술을 못 끊는 대신 스스로나마 그렇게 관리를 열심히 하시나 보다 했었는데..



몇 가지 증상이 이상해서 정기적으로 검진받으며 다니시던 병원에서 검사를 몇 차례 해봐도, 특별한 문제는 없다는 얘기에 몇 개월 시간을 더 허비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증상이 심해지셔서 다른 병원에 갔더니 이미 희귀 암 3기라는 진단이었다.  그나마 급하게 일정을 잡아줘서 대수술까지 했지만, 약 1년이 채 안 되는 투병기간을 거쳐 결국 집에서 임종을 지켜드려야 했다.


이래서 ‘집안에 의사는 하나 있어야 한다’는 말들을 하던 건가 싶더라.  두 군데 병원 모두 다 서울에 있는 큰 종합병원이었는데.. 그땐 참 병원도 밉고 의사도 밉고 싫었다.  수술을 했지만 이미 전이가 많이 되어 수술로 다 제거할 수가 없다고, 일부는 긁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둔 채 닫았다더라. 남은 암은 방사선 등 화학치료로 가야 한다고.  사람의 운명이란 게 참 덧없이 느껴지고 나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부정적인 수술결과도 전해 듣고 (어머니는 심장이 떨린다고 겁이 나서 의사와 직접 대면도 피하셨고, 자식들에게 전해 들으셨다) 길고 힘든 치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에도 살아는 있으니 실낱같은 희망이니마 가지셨었다.  1년 가까이 진행된 치료 뒤.. 결국은 얼마 못 버티시겠다고, 힘들 것 같다고 하는 의사의 선고에 병원 바닥에 주저앉으며 오열하셨다.  


한평생 투닥투닥하며 살아오시다 '너희 아버지 이렇게는 못 보낸다' 며 울음을 터뜨리는, 내겐 언제나 강인하게만 보였던 어머니의 그런 맨바닥의 감정표현을 본 것도 생전 처음이었고, 나 역시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들 같은 비현실감과 당혹감, 그 뒤 밀려오는 슬픔에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고모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작은 아버지까지 보내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까지 그렇게 가버리셨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어느새 꽤 세월이 흘러갔다.



양방의 화학치료를 중단한 후에는 한방이나 양한방 협진, 첨단 로봇수술 등 여러 병원을 돌며 여러 방법을 찾아봤지만.. 마지막엔 통증 관리에 주력하면서 자주 찾아뵙고, 식사하실 수 있으신 동안 이것저것 좋아하시던 거, 몸에 좋은 음식들 원 없이 드시도록 가까운데 위주로 다니거나, 사들고 가서 같이 식사하고 말벗해 드리는 게 아버지와 가족에게 서로 최선인 것을 깨달았다.


가난한 집안,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열심히 노력하여 자수성가해 이루어오신 당신의 인생처럼, 아버지는 목표의식과 의지가 누구보다도 강한 포기를 모르는 분이셨다. 그랬기에 너무나 당혹스러웠던 건, 어느 순간 아버지가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하셨는지 열심히 치료를 받아 완쾌하시려는 마음을 내려놓으신걸 처음으로 느꼈을 때였다.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 수첩에 적어놓으시며 지키려고 노력하셨었는데..  아마 처음 아버지의 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어쩌면 그런 무너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느껴졌을 때 더 당황스럽고 더욱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당신의 생을 어떻게 정리할지, 그동안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하고 고생만 시켰던 어머니에게 '고맙다' 하시며 함께 하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시던 아버지.  찾아올 자식들을 생각해 고향 선산에 묻히시는 걸 포기하고, 당신이 누울 자리를 알아보라는 마지막 미션을 형과 나에게 주시던 그 모습이 새삼 그리운 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임종을 지켰던 그 밤, 아버지의 숨결이 잦아들던 마지막 그 순간은 내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화인처럼 남아 있다.


그 순간은 정말 예기치 못했을 때 갑자기 닥쳐오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더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아오던 그런 모습은 아니더라.  마지막으로 한번 쳐다봐 주시고, ‘애비 없어도 엄마 모시고 잘 살라’.. 는 그런 한마디 해 주지도 않고 가시는 게 원망스럽기도 하더라.  가쁜 숨, 그 힘없는 숨소리조차 점점 짧아지고 간격이 길어지고, 초점은 흐려지고.. 그렇게 조용히 잠드시더라.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덧없더라...



이제 내가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자식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나의 과거가 수시로 소환된다.  어떤 상황 상황들, 어떤 순간순간마다 그땐 그랬지, 이런 비슷한 순간이 있었지 떠오르며, 아버지가 그때 왜 그러셨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때 아버지 마음이 어떠셨을지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에 후회가 사무친다.


이렇게 한 개체가 점점 더 인간이 되어가는가 보다.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반추하며 내 자식들을 조금씩 더 성숙하게 돌보는 부모가 되어가는 것인가 보다.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 모든 분들께 감히 한 말씀드리건대, 짧은 시간이나마 지금이라도 부모님과 많은 시간 함께 하시고, 가슴이 많이 아프지 않을 때 조그만 추억이나마 더 함께 만드시면 좋겠다.  가시고 나면 그 순간부터는 모든 게 돌이킬 수 없고 후회만 될 뿐이니.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더 에이고, 지나간 세월 아버지에게 상처가 되었을 말 한마디 한마디와 내 행동들 하나하나, 회한이 깊어지는  밤이다.



#아버지 #회한 #그리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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