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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n 09. 2024

아버지와 나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워우예, 워워워-워~~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넥스트의 명곡 ‘아버지와 나’를 생각하면 故 신해철 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해철 씨는 88년 MBC 대학가요제에 혜성처럼 나타나 ‘그대에게’ 란 친숙한 곡으로 대상을 거머쥐었던 그룹 무한궤도의 리더로 등장했다.


참여했던 다른 노래들은 모두 당대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는데 마지막 순서로 나온 이들의 파격적인 음악과 퍼포먼스에 관객은 열광했더랬다. 당시 가요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룹사운드는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심사위원들에게도, 뻔한 곡들에 심드렁하던 관객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



‘아버지와 나’는 이렇게 우리의 젊었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故 신해철 씨가 후일 만든 그룹 N.E.X.T의 음악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곡이다.  92년 발매된 N.EX.T의 1집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신해철의 나레이션으로 된 Part 1과, 연주곡의 Part 2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인’ 이란 곡의 중간에 나오는 나레이션이 시간에 쫓겨 쳇바퀴 돌 듯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도시 샐러리맨들의 삶과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현대사회의 풍조를 지적하며,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겠냐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아버지와 나’의 그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랄까,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아들의 심리와 성장기를 담담하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어릴 적 까마득히 거대하게만 보이는 넘볼 수 없던 ‘강한 존재’가 점점 한없이 작아져만 가는 모습에서 느끼는 먹먹함, 안쓰러움, 공감, 이해..


그의 조언이, 그의 침묵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 곧 스스로에게 닥쳐올 아버지로서의 삶을 마주 대하며 겪게 되는 성찰을 담담하게 읇조린다.



가족 안의 갈등과, 또래와는 다른 특이한 경험으로  몹시 버거웠던 방황의 시기를 지나고 조금씩 철이 들어가던 몇년 간의 시절..  이 노래는 나에게 아버지 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고, 항상 무섭거나 답답하고 미워만 했던 아버지를, 아버지의 그 무거웠던 어깨를 다시 돌아보게 했더랬다.


말없이 집에 계실 때에 집안의 공기는 그 침묵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았다가도,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시면 방안에 있던 형이나 누나도 슬슬 나오고 그제서야 집안엔 대화와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말도 별로 없이 점잖고 과묵하게만 계시다가 밖에서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들어오시면 평소에 없으시던 말까지 다 쏟아내려는 보상심리라도 작동하는 건지 그렇게 기분이 좋으실 수가 없었고, 잔소리를 쏟아붓는 어머니에겐 그저 ‘허허’ 하며 애교를, 대면대면한 자식들에겐 용돈을 쥐어주시며 친한 척을 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몹시 마뜩잖아하셨고. 왜 멀쩡할 때 일찍 퇴근해서 이렇게 못하고 술만 먹으면 애들 잘 시간 밤늦게 와서는 이러냐고 말이다.



그때는 아버지의 평소 모습과 한잔 하신 후의 모습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도 영 맘에 안 들고 보기 싫었다. 평소엔 아무 말도 없이 근엄하게만 계시는 아버지.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나에겐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친근감도 없었고, 일상의 생활에 대해 공유하는 것 하나 별로 없는 이유로 마땅히 대화거리를 이어갈 것도 없었다. 단방향성으로 끝나 버리는 의례히 하는 대화. “안녕히 다녀오세요”, “다녀오셨어요”, “식사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술 한잔하고 들어오시는 날이면 양손에 들린 노란 봉투 속 전기구이 통닭을 실컷 뜯을 수 있는 만찬의 날이었고, 약주만 하시면 기분파가 되시는 덕에 두툼한 용돈이 생기는 날이기도 하다는 걸 잘 알기에,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고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더랬다.


그땐.. 알코올이라도 가슴에 좀 적시지 않고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그때의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제 난, 아버지가 되었다.


두 아이는 많이 커서 , 이젠 내가 어렸을 적 이해할 수 없기에 애증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던 그 시절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책임감이랄까 중압감, 그 무게를 차차 알아가게 되었다.  갈수록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와중에도 집안에서는 오히려 조금씩 고립되어 가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 내 아버지가 일찍이 겪었던 일을 지금 내가 겪고 있다.  



요즈음의 시대에는 안 그렇게 살아가는 많은 멋진 아빠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에 대한 자위랄까,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아버지상을 떠올리며 핑계를 대고 싶진 않다. 다만 어찌어찌 살아오다 문득 돌이켜보니, 어느새 내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있는 ‘나’를 느낌에 조금 서글퍼짐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도 집 안에서의 가사 일을 훌륭히 수행하며, 아내에겐 스윗한 남편으로 아이에겐 자상한 아빠로 소통하며 지내는 듯 하다. 그런 그들이 부럽고, 그만큼 못해온 나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그래, 산다는 게 다 비슷비슷하겠지. 저들도 별다를 게 없지만 페북과 인스타에는 저런 좋은 모습만 올리는 걸 거야. 저게 다 일거야.. 하며 위안하기도 했더랬다.


어릴 적 먼 거리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난, 장례식장에 찾아와 고개를 조아려 절을 하며 고인을 기리긴 하지만 이미 어떠한 대화도 할 수 없는 조문객과 비슷한 처지라 할 수도 있겠다. 지금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 하나, 태도 하나하나..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슬프다. 그래서 아버지께 더 죄송하다. 어느새 아이들은 다 컸고, 이젠 시간을 되돌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참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그리움이 제어할 길 없이 순간순간 울컥하며 찾아드는 것은 바로 이제서야 느끼게 된 아버지에 대한 ‘공감’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라이터에 불을 붙이고 깊이 들이마시는 담배 한 모금과 이내 내쉬는 깊은 한숨.. 그 한숨에 담긴 의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리라.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찾아오시거나 당신 마음대로 약속장소를 정하고 몇 시까지 오라고 하시던 그런 아버지와, 못내 마뜩잖은 표정으로 불편한 티를 내며 소주 한잔 나누던 그 짧았던 시절의 장면 하나하나.. 돌이켜 보면 그때 좀 기분을 티 내지 말고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 하나하나가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너무 일찍 가버리신 아버지.. 지금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자식이 땀 흘려 번 돈으로 그리 좋아하시던 수육과 족발, 선지 해장국, 아귀찜 같은 음식들을 안주로 대접하며 맛 좋은 술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왕이면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유명 맛집으로 모셔서 말이다.


이제 그는 가고 후회만 남았다.

어쩌랴.

이런 게 인생인 것을..


*****************************************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이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 https://youtu.be/KcTmbjGXAd8?si=SOR8zxj01Z3ks-tZ



#아버지 #아쉬움 #미안함 #그리움 #회한 #두려움 #침묵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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