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34]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D-334. Sentence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느낌의 시작
오늘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어제부로 한 고비를 넘었고, 다행히 오늘은 수업도 없었다. 머리는 복잡했고, 몸은 무겁고, 마음은 조용히 비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요즘 들어 자꾸 “나이 드니 마음이 처진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좋은 가을날이니 바람이나 쐬자며 함께 나가고 싶었지만, 오늘의 나는 다른 누군가를 위로할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에게조차도.
결국 둘째 방 침대에 누워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 오랜만에 깊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오후 두 시가 훌쩍 넘어 있었고,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이렇게 긴 낮잠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가 지난주 삼척의 독립책방에서 내가 사온 『오늘의 기본』을 읽고 계셨다. 엄마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이상하게 평온해 보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는 그저 “세상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야”라며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정리돼. 괜히 붙잡고 있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만 생각해.” 그 말에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장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외면받았다는 상실감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이 그 한마디에 살짝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마음의 흐름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고, 그냥 집을 나섰다. 가까운 동네 카페가 떠올랐다. 카페 옆에는 조그마한 독립책방이 있다. 늘 가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곳. 오늘은 문이 열려 있었다. 책방 안은 따뜻했다. 은은한 조명, 오래된 나무 선반, 대표님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작은 공간. 책 사이사이에 말린 꽃과 엽서가 꽂혀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말린 꽃 책갈피를 집어 들었다. 요즘 유난히 우울해하시는 엄마께 드리고싶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는 책 한 권을 고르기로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제목.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순간 속초의 ‘라이픈 커피’에서 샀던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따뜻함과 위로가 다시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언젠가 할머니가 될 내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 어떤 아침을 맞이하고, 어떤 하루를 살아가며, 어떤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그 상상은 이상하게 설레고 즐겁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꼭 쇠퇴나 후퇴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책방을 나오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런 독립서점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조용하지만 확실히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 누가 봐도 조금은 이상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자유로움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 타인의 기준보다 자신의 감각으로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그런 어른.
오늘은 일하고 싶지 않다. 그저 배터리가 다 떨어진 노트북의 검은 화면이 왠지 반갑게 느껴진다. 이제 글을 마치면 새로 산 책을 펼쳐 읽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먼 훗날, 진짜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어 있을 나를 조용히 상상해볼 것이다.
내 안의 한 줄
이상함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