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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가는 길은 없더라.

[D-359] 인생엔 생략이 없다.

by Mooon

D-359. Sentence

인생엔 생략이 없다.


IMG_2409.jpg @페이스북_최인아


페이스북을 보다가 스크롤을 멈추게 된 문장이 있었다. 크지도 않은 글자인데, 묘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인생엔 생략이 없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풀리고, 모든 게 순풍처럼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인생이라는 건, 겉으로 보이는 모양은 달라도 본질은 비슷한 선상에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인생엔 정말 생략이 없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은정님은 진짜 쉽게 얻는 게 한 개도 없는 사람 같아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떨어지고, 안 되고, 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겨우 원하는 것 ‘근처’에 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돌아보면 그 말에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 내가 얻는 것들의 가치를 알게 하려고 그 과정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해석까지 했던 기억도 난다.


모든 게 이렇게 어렵기만 한 이유가 내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더 뛰어났다면, 더 쉽게,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답은 맞으면서도 틀렸다. 인생은 그런 단순한 방정식으로 풀리지 않는다. 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보면, 해마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육들이 있다. 다음 학기 강의계획서를 쓰기 전 반드시 들어야 하는 영상 교육들. 20개 가까운 목록을 보면, 이걸 다 본다고 실제로 어떤 효용이 있는 걸까 싶은 회의가 고개를 든다. 다행인 건, 타 학교에서 동일한 교육을 들었으면 중복으로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래서 며칠 전 하루 종일 영상을 보고 수료증을 받아 교무처로 보냈다.


오늘 받은 답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료증은 해당 부서로 전달했습니다. 이제 우리 부서에서 운영하는 필수 영상들을 들으세요.” 순간적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이거 하나도 참 쉽게 가는 게 없구나. 강의 한 개를 맡고 있어도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고, 챙겨야 할 교육도 많고, 계획서와 보고서가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생략’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 사전에 없다.


사춘기 아들을 보며 드는 생각도 그렇다. 어떻게든 반항할 방법을 찾는 중1 끝물의 첫째를 보며, “앞으로 2년을 어떻게 버틸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도 생략은 없다. 엄마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고, 버티는 것. 이것만이 정답이다. 요즘 스트레스를 간식으로 풀다 보니 몸 상태도 엉망이다. 다시 정신 차리고 운동해야 하고, 밤에는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정상 체중에 돌아갈 수 있다. 다이어트에서도 생략은 꿈도 꿀 수 없다. 요행을 바라는 순간, 그게 얼마나 허무한 망상이었는지를 몸으로 배우게 될 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왕도도 없고, 생략도 없다. 그러니 오늘도, 여기서. 그저 살아내는 것뿐이다.



내 안의 한 줄

생략이 없다는 사실이 단단하게 만든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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