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6] BOOK
D-356. Sentence
BOOK
오늘 오전 넥스트로컬 최종발표를 마쳤다. 발표 전, 대기실에 앉아 발표자료의 표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실감이 툭 떨어져 나갔다. 두 달 전 이 자리에서 최종 선정발표를 했던 내가, 그 후 삼척을 11번 다녀오고 도계와 삼척의 30곳이 넘는 지역을 조사하고, 23번의 미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잠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시간들, 백일몽처럼 흐려지는 감각.
발표 순서가 되었고, 다행히 함께해준 팀원들이 발표장 안까지 들어와 나의 긴장에 조용히 손을 얹어주었다. 어젯밤 타이머를 재며 7분 안에 말하려 발버둥쳤지만 끝내 8분대를 못 넘어서며 마음이 조급했는데, 정작 평가위원들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힘을 빼고, 그저 자료 속 사진들과 그 안에 담긴 우리 표정과 발자국이 그대로 전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발표했다.
14분의 발표, 질의응답시간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니, 이 프로젝트는 이제 더 이상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월요일이면 20팀 중 5팀의 우수팀이 발표된다. 나는 지금 전투복을 벗고 다시 동네 엄마 모드로 돌아와, 둘째 축구방과후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이렇게 글을 쓴다.
프로젝트도 마무리되고, 지원사업 최종발표도 끝나고, 강의들도 종강을 향해 정리되는 이 시점. 정신없이 달리던 시간들이 서서히 멈추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뜻밖에도 BOOK이었다. 올 하반기는 학교수업과 삼척, 진흥원 프로젝트까지 겹치며 책을 읽을 틈도, 마음의 자리도 없었다. 퍼내기만 했던 시간. 이제 조금씩 나를 다시 채워 넣고 싶다.
읽다 만 책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한가득이다. 욕심이 앞서는 순간, 책은 즐거움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런 독서를 정말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게 읽고 싶고, 즐기며 머무르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자유와 여유라는 단어는 늘 나와 조금 어색했다.
오늘 발표를 들었던 팀멤버가 “오늘 발표는 힘이 빠져서 좋았다”고 말했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여유가 느껴졌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책도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는 걸, 다시 생각했다. 힘을 빼는 시작이자, 나를 회복시키는 매개체이자, 고마운 선물 같은 아이. 읽다 만 책들부터 다시 펼쳐야겠다. 조금씩, 천천히. 그 속에서 숨어 있던 내 여유와 자유를 만나는 12월을 기대하며.
내 안의 한 줄
요즘 나를 가장 편하게 해주는 건, 다시 책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