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5] 뿌리 깊은 나무
D-355. Sentence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은 나무. 요즘 DDP를 보면 그런 말이 자꾸 떠오른다. 전시도, 프로그램도, 기획의 결도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느낌. 시간이 한 공간을 이렇게까지 깊게 만든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 DDP라는 공간이 만들어질 때, 나는 그 재단의 초창기 직원이었다. 서울시 산하 기관 디자인전략사업에서 일하다가, 디자인전문재단이 새로 생기면서 그대로 이관되어 DDP의 ‘탄생’을 함께 지켜본 사람. 그런데 정작 그 당시의 나는, 이 동대문 한복판에 운동장 대신 들어서는 생소한 모양의 건물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확신이 없었다. 시장과 패션몰이 전부인 지역에서 ‘디자인의 중심’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로 그 공간을 준비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재단을 떠났고, 어느새 나는 한 명의 서울시민이자, DDP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다만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 가끔 찾아가기도 하고, 개인사업을 시작한 뒤에는 종종 용역을 하기도 했으니, 시민인 듯 시민 아닌, 묘하게 결이 닿아 있는 관계로 남아 있다.그 DDP가 벌써 12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시간을 훌쩍 넘어섰다니… DDP의 시작을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묘한 뿌듯함과 약간의 대견함, 그런 얇고 부드러운 감정이 마음결에 묻어난다.
조금 전, DDP 공식 인스타에 올라온 전시 피드를 보다가 ‘뿌리 깊은 나무’라는 문장을 보았다. 그 순간 드는 생각.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그리고 DDP도 어느덧 그렇게 되고 있다는 생각이 뒤이어 흘러왔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쉽게 흔들리고 금세 꺾인다. 뿌리가 없는 것들은 멀쩡해 보일지라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몸으로 익혔다.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가정과 공동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나는 소속감이 중요한 사람이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치열하게 취업하려 애썼던 것도 돈 때문이 아니라, ‘소속이 없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도 그랬다. 소속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소속을 찾는 마음. 그 마음은 늘 나를 움직여왔다.
뿌리가 되기 위해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을 견딘 자만이 단단히 선다.
지금 내가 치열하게 달리는 것도 결국 더 깊게,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싶어서일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나는 내 삶을 ‘인생 뭐 있지’라고 가볍게 대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은 절대 가볍지 않고, 값싸지도 않으니까.
내 안의 한 줄
오늘의 나도, 더 깊어지는 뿌리가 된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