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7] 재능없는 99%에게
D-357. Sentence
재능없는 99%에게
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수능을 본 지 20년이 넘었고, 내 아들은 이제 중학교에 입학한지라 그 세계와 직접적 연결고리는 거의 없는데도, 이 시기만 되면 유난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미대 입시장. 내 10대 후반의 가장 날것이고 가장 치열했던 계절.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미술을 배웠고, 당연히 미대를 준비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미술학원으로 향했고, 밤늦게까지 실기 준비를 한 뒤 독서실에서 공부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던 길. 수능을 보자마자 해방감을 외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날 이후부터 또 하나의 입시를 시작해야 했다. 아침 시험, 오후 시험, 저녁 시험. 하루 세 번의 실기를 한 달 내내 치르며, 그만큼의 쓴소리를 듣고, 그만큼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시절.
그리고 실기시험 당일. 특차까지 포함해 다섯 번의 실기시험을 엄마는 모두 함께 와주셨다. 추운 새벽,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학교 앞까지 함께 오셔서 기다려주는 것뿐이었지만, 그 기다림이야말로 내가 버티게 해준 가장 큰 마음이었다. 엄마는 4시간 내내 얼어붙는 공기 속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 오늘, 인스타에서 미대 입시장 피드가 뜨는 것을 보니 그때의 장면 하나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어떤 학교의 실기 주제가 ‘빨간 전화기와 별이 빛나는 밤’이었는데, 시험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학생이 화구통을 들고 시험장을 내려오더라는 것이다. 당황한 엄마들이 서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 학생의 어머니가 급히 달려가 안아주었다. “주제를 받고 어떻게 그려야 할지 생각이 안 났어… 엄마 미안해.엄마 미안해.” 울먹이는 딸을 끌어안고 “괜찮아, 괜찮아”라며 함께 울던 장면. 그 주변의 엄마들까지 모두 같은 마음으로 눈시울을 붉히던 장면. 스무 해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 순간이 입시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 박정민의 말처럼 나는 재능이 없는 99%의 사람이다. 미대를 갔지만 미술적 재능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젊은 나이에 알아버렸고, 결국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1%에 대한 부러움 대신, 부족함을 알아서 계속 걸어가는 99%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20년 전,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학교 앞에서 울며 엄마를 끌어안던 그 여학생 역시, 지금은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상상이 든다. 지금 인스타에 올라온 미대 실기장을 보면, 추위 속에서 시험을 보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참 귀하게 보인다.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나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내 안의 한 줄
멈추지 않는 99%의 걸음은 한 사람의 길이 된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