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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Aug 25. 2024

첫 방송 출연이라고 너무 오버했나?

생애 첫 방송 출연 1편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직도 있는 것 같나요?”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룸메언니가 한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인터뷰를 할 생각이 있냐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집으로 오셔서 전반적인 생활, 식단, 식비는 얼마나 드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피디님께서 자립준비청년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방송 촬영 의사를 물으셨습니다. ‘티비에 나올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설렜습니다.



하지만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 방송에 출연하려니 ‘카메라 앞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언제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해보나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이때부터 프로그램 방영까지 6개월가량 이어졌던 제작진분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설 명절에 작가님 두 분과 밥을 먹으며 진로 관련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작가님들도 함께 축하해 주셨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씻어도 기름냄새가 잘 없어지지 않았고 살이 쭉쭉 빠졌습니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루는 일하는 곳에 작가님들이 놀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돌아왔는데 직원분들 표정을 보아하니 엄청 바빴던 모양이었습니다. 단체 손님이 오셨는데 저를 찾으셨다고 했습니다. 홀에 나가보니 열 분도 넘는 제작진분들이 햄버거 세트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퇴근하고 다 함께 집에 가니 셰어하우스가 꽤 넓은데도 거실이 꽉꽉 찬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듣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자립준비청년에게 정기적으로 식재료를 지원하는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쩐지. 집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방송출연을 결심하고 방송국에서는 브이로그 촬영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5번의 공식촬영이 있었습니다. 브이로그 촬영을 위한 셀카봉 겸 삼각대가 집에 배송되었습니다. 처음엔 카메라 렌즈 보는 것도 어색한 데다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하는 표정은 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렇게 열심히 찍었나, 첫 방송 출연이라고 너무 오버했나? 싶지만 브이로그 촬영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기도 했고 마침 아르바이트 같이 하던 분이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신 학생분이셔서 촬영 팁들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예쁘게 나오려는 욕심 버리고 자연스럽게

목소리 톤 등 촬영 후 보면서 피드백하기

계획대로 안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사전 계획해야

표정이나 소리 등 원하는 이미지, 말하려는 내용을 담았는가?


브이로그 찍는다고 신나게 기획했던 것들의 일부


기상, 이불 개는 모습부터 불 끄고 잠에 드는 순간까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고 브이로그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전보다는 어색함이 덜한 듯했습니다.



어느 날은 아침 출근길에 급하게 걸어가는데


“저 사람 유튜버인가 봐!”


외치는 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았습니다. 순간 민망했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도망치듯 걸었습니다. 기존에 일기를 쓰며 제 일상을 기록했던 것처럼 영상이라는 형태로 일상기록을 남기는 일들이 참 즐거웠습니다.






첫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 대충 주먹밥 해 먹으며 출근 준비하는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평소에는 혼잣말을 잘하는데 막상 앞에 카메라가 있으니 은근히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오디오가 허전해서 어떻게 방송에 나갈 수 있을지 굳이 안 해도 될 걱정까지 했습니다.



퇴근하고 나서는 마트에서 장도 보고,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를 보면서 밥도 먹고, 책 보는 일상까지 촬영했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타임이 시작되었습니다.



“OO 씨는 뭘 하고 싶어요? “

”뭘 준비했었어요? “



질문에 답하며 이것저것 시도도 하고 실패도 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으면 지금쯤 취업이 되었을까요? “

“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



팩트폭력에 으스러졌습니다. 인터뷰 한 대로라면 저는 뭔가 이루지 못한,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의지가 없어 취업을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던 중이었는데,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했습니다.



이후 이어진 가정사, 부모님의 이혼 관련한 질문들에 답하며 점점 기분이 울적해졌습니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물론 항상 밝고 즐거운 모습만 방송에 나가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지만 이런 안타까운 모습만 방송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새벽부터 힘들게 촬영하러 오셨는데 촬영을 망친 것 같아 죄송하고 속상했습니다.



센스 있는 감독님께서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분위기 전환 겸 고민 많은 청춘의 모습을 담아보자고 하셨습니다. 옥상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진로를 고민하는 장면을 찍어주셨습니다. 날이 참 추웠지만 카메라에 비친 야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첫 촬영이 끝나고 다음날 작가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작가님들이 뭘 먹고 싶냐고 했는데 당이 떨어졌는지 허니브레드가 엄청 땡겼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첫 촬영 중 생겼던 약간의 오해를 풀었습니다.



제가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이 길었고 방황도 하고 있으니 촬영하면서 시도도 해 보고 꿈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의도로 인터뷰를 진행하신 것이었습니다.


“미국 가기 전의 그 열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누구나 진로를 고민하고 방황할 수 있지만 아르바이트만 계속하지 말고 취업이든 뭐든 계속해서 시도하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동시에 저를 어떤 모습으로 담아낼 수 있을지 많은 고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허니브레드 다 어디 갔어?”


시켜주셨던 허니브레드를 싹싹 비우고 배부른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인터뷰였습니다.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도 해주신다는 이야기에 엄청 들떴습니다. 진짜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구나 느꼈습니다. 또렷한 인상이라 연한 메이크업이 잘 어울린다는 조언을 해주시고, 어울리는 제품도 추천해 주셨습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고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무대 밖에서 긴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습니다. 카메라 앞에 앉아 2시간 정도 카메라 밖에 있는 작가님, 피디님과 대화하며 지난 삶의 궤적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닉네임은 왜 아귀에요?”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날이 생일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아귀를 시장에서 사서 찜을 해주셨었거든요. 너무 맛있어서 항상 생일 때마다 해주시니까 생일이 항상 기다려지는 날이었어요.“



아버지, 동생 이야기, 가출하고 나서의 상황들에 대한 질문에 답했습니다. 전학 가자마자 팝송경연대회에 나갔던 이야기를 하다



“노래 한 소절 해줄 수 있나요?”
”네? (목을 가다듬으며) 흐흠. “



노래도 한 곡 했습니다.



이어 금전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 노력했던 순간들, 미국 인턴 마치고 졸업 이후 방황했던 이야기까지 카메라가 앞에 있었지만 전보다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인터뷰에 집중했습니다.



“방송에 나와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OO 씨에게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직도 있는 것 같나요?”

“아뇨, 아버지의 그림자는 옅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컴컴한 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수많은 퍼즐 조각들 사이에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딱 끼워 넣는 듯한 개운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동생을 돌보며 책임감 있는 성향이 생겼고, 완벽을 강요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것저것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구나. 실패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하는데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크게 상심했었구나.’



인터뷰하면서 살아왔던 삶의 조각들을 맞춰보니 자연스러운 ‘나’라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촬영 때에는 일상 촬영이 이어졌습니다. 청소도 하고, 밥도 먹고, 학교 주변 산책도 하는 모습, 그리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제 일상을 카메라에 담으셨습니다.



봄이었지만 엄청 추운 날씨에도 한 장면이라도 더 예쁜 모습을 담고자 했던 카메라 감독님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네 번째 촬영일을 앞두고는 많이 떨렸습니다. 당시에 잠깐 관광 가이드에 관심이 생겨 작가님께 이야기를 했는데 프랑스인 친구를 섭외해 주셨습니다. 친구를 만나 일일 여행가이드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는 일상촬영이 이어지고 지역에서 어머님들과 함께 김장봉사하는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이후 프랑스인 친구를 만나 준비한 수원화성 가이드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고민들을 공유하며 주거, 진로 등에 대한 생각을 얘기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사례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PD님께서 컷! 하시고 MC인 줄 알았다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프랑스인 친구는 계속된 촬영에 힘들 법도 한데 참 친절했고 처음 만났는데도 말이 참 잘 통했습니다. 프랑스인 친구와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즐겁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섯 번째 촬영일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많은 스태프 분들이 오셨습니다. 평소처럼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카톡 메시지로 한 동영상을 받았습니다.


‘어? 홍석천 님?’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벌컥 열었더니 눈앞에 방송인 홍석천 님이 있었습니다. 제가 문을 벌컥 연 나머지 문에 머리를 부딪혀 머리를 문지르고 계셨습니다.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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