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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Sep 01. 2024

20대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 하고 싶으세요?

생애 첫 방송 출연 2편

* 방송인 홍석천 님이 '집사'로 자립준비청년의 집에 방문하는 설정이 포함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편의상 '집사님'으로 칭하겠습니다.



“요리만 그런 게 아니야.
인생도 마찬가지야,
실패해도 계속 도전해야 하는 거야.”



“괜찮으세요?”

“제 소중한 머리가 깨질 뻔했어요.”



TV에서만 보던 분이 눈앞에 있다니! 얼떨떨했습니다. 48,500원의 주어진 예산으로 장을 본 후 식재료를 한가득 들고 자립준비청년 셰어하우스에 찾아오셨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 보니 집사님과 생일이 하루 차이 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침 둘 다 양말에 구멍도 나 있었습니다. 특유의 친화력을 보여주신 덕에 분위기가 금방 편해졌습니다. 거실에서 간단하게 인터뷰를 한 후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집사님은 식중독 증상으로 인해 컨디션이 좋지 않으신 듯했습니다. 그런데도 녹화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고 유쾌한 모습으로 촬영에 임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분위기를 금방 화기애애하게 만드셨습니다.



냉장고에 양지, 무, 나물 등 식재료들을 채워 넣고 나서 장바구니 안에 있던 아귀 보았습니다. 제 닉네임이 아귀였던 만큼 제가 아귀를 좋아할 것 같아 아귀찜 재료를 사 오셨다고 했습니다.



촬영을 위한 세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아귀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다년간의 요식업 경력을 보유하신 집사님께서 집에서 평소 쓰는 양념들도 함께 챙겨 오셨습니다. 함께 재료도 손질하고, 양념도 만들었습니다.



된장을 풀어 칼집 낸 아귀를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아귀 삶은 물을 활용해 양념을 넣고, 콩나물은 나눠서 넣었습니다.



“집에서 아귀찜 만드는 거 처음이지?”

“네!”

“신기하지?“

“네!”



참기름, 참깨 뿌리는 법, 소스 활용법 등 다음에 혼자 아귀찜을 해 먹을 때도 적용할 수 있도록 디테일한 요리 팁들까지 꼼꼼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잠깐 콩나물이 익기를 기다리며 집사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왜 요리를 좋아하는지 얘기했습니다.



“요리하면서 실수도 많이 하는데, 요리는 실패를 해도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다음에 또다시 하면 되니까. ”

“인생도 마찬가지야, 실패해도 계속 도전해야 하는 거야. 요리도 그렇지만 인생도 실패해도 괜찮아 계속해봐. “



집사님은 한 번에 되는 건 없다며 배우 오디션에 70~80번은 떨어지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떨어진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큰 도움이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인생도 요리처럼 실패해도 계속해서 도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을 때, ‘내가 왜 요리라고만 생각했을까’ 싶었습니다.



집사님은 실패하면서 배우고, 또 도전하고, 도전하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며, 완성형은 될 수 없으니 그냥 불완전한 상태에서 도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귀찜이 완성되었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아귀찜을 나눠먹었습니다. 정말 식당에서 파는 것 같은 맛이었습니다. 게다가 아귀가 엄청 많아 먹는 내내 입이 즐거웠습니다.



“그냥 너를 믿어.”



집사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적어도 그 물에(분야에) 들어가 놀면서 배우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집사님은 20대 때 돈 없어도, 직업이 없어도 된다며 제 나이와 바꿀 수 있다면 돈주고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그럼 그때로(20대 때)로 돌아간다면,  뭐 하고 싶으세요?” 물었는데 "사랑"이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빵 터졌습니다. 유쾌함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제작진 분들도 진로를 고민하셨던 이야기를 함께 나눠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한 PD님은 대학원까지 졸업 후 한참 돌아온 길임에도 본인이 하고 싶은 꿈을 찾아 PD가 되셨습니다. 한 작가님은 일을 하면서 버티다 보니 점점 자신감을 얻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꼭 성공해야 해, 실패하면 절대 안 돼 생각하기보다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촬영 후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실패해도 가장 부담이 없는 시기는 바로 젊은 날의 지금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촬영을 통해 집사님께서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주신 덕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혼자 헤벌레 하며 특별했던 하루를 일기장에 기록했습니다. 문득 '먼 훗날의 내가 젊은 날의 나를 떠올린다면 어떤 걸 후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허송세월 보내는 모습을 가장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도 어려운 조건 가운데에서도 도전하고 성취하는 모습을 제 스스로한테 바랄 것 같았습니다.


지원받은 식재료들로 만든 요리들

 

다음 날, 남은 아귀찜에 밥도 볶아먹고 깔끔히 비웠습니다. 이후에도 사주신 식재료를 활용해서 다양한 요리를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방영일이 다가왔습니다. 예고편이 방영된 것을 보고 작가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제 출연 분량은 1회 차 정도라고 하셔서 약간은 아쉬웠습니다. 처음에는 3회 차에 걸쳐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계획을 대폭 수정하신 듯했습니다.



그래도 방송에 제가 출연한 모습을 보면서 엄청 신이 났습니다. 두고두고 아껴볼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집을 나와 홀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제 모습을 예쁘게 카메라에 담아주시고 정성껏 편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6개월가량의 제작과정에 함께 했지만 방송 기획부터 방영까지 1년 정도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옆에서 구경할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프로그램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노력과 인력과 기획과 회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제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촬영 이후, 함께 촬영했던 프랑스인 친구와의 소중한 인연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에게 한국어도 알려주고 집 재계약할 때 가서 통역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계약 관련 각종 생소한 용어들을 들으면서 이걸 외국인이 혼자 어떻게 하나 싶었습니다. 마침 제가 옆에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 덕에 프랑스-한국 교류 파티도 가보고 함께 등산도 갔습니다. 친구는 만나면 만날수록 전문 산악인 같은 등산 실력에 말하는 걸 곰곰이 들어보면 저보다 더 한국인 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가평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남이섬으로 향하는 도중 친구가 히치하이킹을 하자고 했습니다. ‘응? 히치하이킹?’ 생각하는 사이에 이미 친구가 지나가는 차들에게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인이 맞긴 맞구나’ 했습니다. 맛집도 저보다 더 잘 알고 저보다 더 많이 국내 이곳저곳을 다녀본 친구 덕에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아가고 있습니다.






방송은 끝났지만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는 계속되었습니다. 가끔 외국인 손님들이 오면 미국에서 생활했던 기억들도 떠오르곤 했습니다. 많은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긴 했습니다. 매니저님들을 보니 다들 크고 작은 화상자국들이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처음에 일을 접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옆에서 꼼꼼하게 알려주셔서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워낙 잘해주셔서 함께 나눠먹으려고 유부초밥도 과일도 싸가서 나눠먹었던 때가 참 좋았습니다.



하루는 대표님이 오셔서 이야기를 하다가 제게 ‘지금이 너무 좋은 때’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좋은 때에 뭘 하면 좋을까요?" 물으니 “살아보니 시간이 너무 금방 가. 뭘 하든 열심히 살아야 돼.” 하셨습니다. 뭘 열심히 해야 할지는 잘 몰랐지만 알차게 시간을 보내보고자 퇴근 후에 영상편집도 배우고 베이킹도 배웠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느낀 것은 다 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길고도 길게 느껴졌던 코로나도 종식이 선언되었습니다. 쉴 새 없이 주문이 끊이지 않아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피크타임이 끝나면 숨 돌릴 틈이 생겼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날갯죽지가 나가떨어질 것 같은 순간도 어느샌가 끝을 보였습니다. 힘겨운 순간들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터를 떠나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일을 쉬었습니다. 체력을 회복하면서 채용 공고를 보다 당시 유난히 뜨는 공고들이 많았던 영어학원 여러 군데 면접을 보고 한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집사님께도 작가님들께도, 목사님 사모님께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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