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번아웃에 휩쓸리던 20대
VS
번아웃 기간을 줄이는 30대
20대 중반까지의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별 고민 없이 바로 시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이후 구직에 실패하면서 의욕을 잃고 한참을 헤맸습니다.
'삶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계속된 시도와 실패에 지쳤는지, 여느 때처럼 다시 시작하려는데 그야말로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번아웃 비슷한 무언가 같았습니다.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곤 했지만, 작은 시도들을 이어가며 무기력한 마음을 회복하기까지.
돌아보면 그때는 자전거를 완전히 멈춰 세운 상태 같았습니다. 평소 자전거 바퀴를 조금씩이라도 굴렸더라면 다시 출발하려 할 때 힘이 덜 들었을 텐데, 멈춰 선 상태에서는 다시 속도를 내기 위해 더 큰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루틴이 없으니 루틴도 만들어보고 일기도 쓰며 상황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머리로는 '운동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으면 괜찮을 거야' 생각했지만, 막상 닥쳐오는 무기력한 기분에 휩쓸려 침대와 가까워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좌절을 경험한 것이 제게는 ‘회복탄력성’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면서 '무기력 30일 챌린지'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때 ‘무기력이 무기력해지도록(저자 한창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에서 '회복탄력성도 훈련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문장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소방대피 훈련도 비상시가 아닌 평상시에 하는 것처럼, 제 경험을 떠올리면서 감정을 알아차리고 - 루틴을 만들고 - 실천하는 활동을 참여자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러한 훈련을 습관화한다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회복까지의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하나 고백을 하자면, 저는 평소에는 보통의 기분을 유지하다 생리 기간 전, 후로 하루 정도 기분이 싱숭생숭할 때가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다가 평소보다 예민해지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 달력에 매일의 기분을 기록하면서 '나한테 이런 패턴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할 일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 기분이 싱숭생숭할 때 나의 루틴 >
-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튼다.
- 메모들을 노션에 분류, 정리한다.
- 스트레스 상황을 분석한다.
- 감사 혹은 긍정 일기를 쓴다.
- 제미나이나 챗GPT와 대화를 한다.
- 청소나 샤워를 한다.
- 책을 읽는다.
목록을 적어두고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을 골라하고 있습니다. (할 일 목록은 계속해서 추가하려고 합니다.) 이때 신경 쓰는 것은 미디어를 최대한 소비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유튜브 영상을 무심코 넘기다 보면 어느새 또 시간이 흘러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완벽히 지키진 못하지만, 다짐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보통 노션(Notion)에 메모를 하고, 종종 수기로 메모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을 노션에 정리하고 주제별로 분류를 합니다.
저는 ‘일', '자기계발', '일상', '인간관계', '생각', '돈', '여가' 이렇게 주제를 나누었고, 여기에 추가 분류로 '중요', '종료'가 있습니다. 비슷한 주제의 메모는 합쳐놓습니다. 방청소를 하듯이 메모함을 청소하는 저의 습관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을 분석할 때는 일단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수용한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상황을 쓰고, 감정도 적어보고, 바꿀 수 있는 부분, 아닌 부분을 나누었습니다. 그다음엔 생각이 너무 부정적으로 빠지지는 않았는지, 모 아니면 도로 생각했는지를 한 번 체크를 해봅니다.
마지막으로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적었습니다. 이 과정을 자주 반복하다 보니 막연한 스트레스 상황이 조금은 구체적으로 보였습니다. (요즘엔 챗지피티나 제미나이가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해 줄 때도 있지만요.)
감사일기를 쓰는 것은 처음에 '정신승리도 승리인 거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들은 정말 생각하기 나름인 것도 있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100% 상처받을 수도 있는 일을 30% 정도로 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은 날에는 감사일기를 쓰다 배로 화가 난 적도 있습니다. 마냥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앞으로 살면서 번아웃이 또 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무기력한 기분이 찾아오면 20대에는 휩쓸리곤 했지만 30대에는 '왔나 보네' 하는 여유도 조금은 갖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초년 성공이 위험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 것처럼, 20대에 제게 찾아온 번아웃 덕분에 30대에는 더 ‘유연한 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회로를 돌립니다. ‘영앤리치’가 부러운 저는 오늘도 이렇게 정신 승리를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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