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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이버 머리 해주세요

정말 미용실에서 졸은 걸까?

by 김진오 Mar 14. 2025

어릴 적, 한 친구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 들려오던 웃음소리와 수군거림. 


"야, 너 머리 왜 그래?"


라는 친구들의 물음에 그 친구가 하던 대답은 이럴 때가 많았다. 


"미용실에서 잠깐 졸았더니, 미용사가 이렇게 만들어놨어." 



정말 졸았을까? 아니면 변명이었을까?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정말 다들 졸았을까? 어쩌면 졸았다는 말이야말로, 망한 머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그런 변명을 해본 것 같기도 하고. 

그 당시 아이들은 엄마 손에 이끌려 미용실에 갔고, 미용사의 손길이 닿는 순간부터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다. 거울을 보고 당황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던 기억이 있는가? ‘이거 아닌데…’ 싶지만,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머리를 감으며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맥가이버(리처드 딘 앤더슨)와 A특공대의 BA(미스터T), 전격제트작전의 마이클 라이트(데이비드 핫셀호프)


유명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미용실에 가서 미용사에게 맥가이버 머리를 해달라고 했는데, 미용사가 "맥가이버가 누구더라... 아, 그 외화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그 당시는 미드가 아니라 외화였다)"이라고 해서 이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자르는 동안 졸았는데, "다 끝났어. 일어나"해서 눈떠보니 BA(‘A 특공대’의 가운데만 남긴 스타일)가 되어 있었다는 얘기. 


비슷한 얘기인데, 멋진 스타일을 원했는데 '장정구' 파마가 돼서 미용실 아줌마한테 물어보니 미용사가 '전격제트작전'의 마이클 라이트(데이비드 핫셀호프)와 착각했었다는. 


그 당시 미용실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주는 곳이라기보다, 미용사가 판단한 ‘괜찮아 보이는’ 스타일을 강요하는 곳에 가까웠다. 게다가 아이들은 그 결과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미용사는 대충 "잘 어울려"라며 웃었고, 우리는 거울을 보며 ‘진짜 이게 맞나?’ 고민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도 한 마디 거들었다. “시간 지나면 길어.”


학창 시절, 우리는 동경하는 연예인의 머리를 따라 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비트' 정우성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원했고, 누군가는 '마지막 승부' 장동건의 댄디한 스타일을, 누군가는 '느낌'의 손지창 가르마 머리를.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같은 머리를 해도 얼굴이 다르면 결과도 달랐다. "그 머리가 어울리려면 얼굴도 따라가야 하는데..."라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결국, 기대했던 멋진 스타일은 "미용실에서 졸아서"라는 변명과 함께 예상치 못한 헤어스타일로 마무리되곤 했다(나도 ''슬램덩크' 윤대협 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얼굴이 다른지 아이들이 황태산 머리냐고 물어봤다.)


윤대협과 황태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모발을 다루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머리카락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환자들 중에도 머리에 대한 실망과 후회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내 머리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풍성충이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원했던 모습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담겨 있다.


한 번은 한 환자가 이렇게 말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전에는, 내 머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점점 머리숱이 줄어들면서, 머리가 나를 선택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학창 시절 미용실에서 좌절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머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정체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생각해 보면, 모두 맥가이버 머리를 꿈꾸지만, 때때로 BA 머리를 받게 된다.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실패도 아니다. 어쩌면 미용실에서 졸아버린 덕분에, 예상치 못한 모습 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찾게 될 수도 한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 이야기와 경험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요즘도 가끔 학창 시절 친구들과 만나면, 그때의 머리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너 진짜 미용실에서 잤냐?” 

“몰라, 기억 안 나. ㅋㅋㅋ"


당신도 혹시, 미용실에서 졸아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맥가이버 머리를 꿈꾸었으나 예상치 못한 스타일로 변해버린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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