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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녜라는 별명

남의 속도 모르고

by 명랑 숙영

아빠는 자기 코를 핥아주는 걸 좋아한다. 기분이 괜찮을 때는 양쪽 콧구멍을 번갈아 가며 청소하듯 싹싹 핥아준다.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행복한 세상에 머문다.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는 대충 코 주위를 몇 번 핥고 만다. 그러면 성의가 없다며 투덜댄다.


아빠가 싫고 귀찮을 때가 있다. 말을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개춘기'라서 그런 걸까? 여하튼 싫다. 최소한 나를 언제 불러야 할지, 쉬게 놔둘지 알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리 오라고 해서 가면 사정없이 꼭 껴안아 버린다. 갑갑해서 발버둥 쳐 간신히 빠져나오지만 아빠가 작정하면 난 옴짝달싹도 못 한다. “자두, 이제 가”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안 되면 긴 허리에 연결된 엉덩이 근육, 앞발, 뒷발 가릴 거 없이 힘을 써 아빠 품에서 벗어난다. 이제 어른 개가 되었으니 이쯤이야 마음먹기에 달렸다.


더 심한 건 자꾸 “자두, 뽀뽀”라며 뽀뽀를 강요할 때다. 초록색 병에 담긴 물을 많이 마셨을 때 더 자주 그런다. 그래서 안주를 얻어먹을 만큼 얻어먹고는 자리 뜰 궁리를 한다. 아빠가 초록색 병을 가지러 냉장고로 가거나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네모상자를 뚫어져라 볼 때 얼른 자리를 피한다.


아빠가 부를 때마다 꼬리 치며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견생이지만 사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좀 쉬고 싶어 겨우 자리 잡고 선잠이라도 잘라치면 “자두야, 이리 와”라고 부른다. 못 들은 척 고개를 슬쩍 돌리면 “어, 저 자식 봐라”하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아빠에게 가야만 한다. 안 가면 더 피곤해지니까.

이런 모습을 보고 큰언니는 ‘궁녜’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임금이 부르면 “녜~에”하고 달려가는 궁녀 모습과 같다며. 그 소리를 듣고 엄마는 물개박수를 치며 웃었다. 이럴 땐 '내 엄마 맞나' 싶다.


엄마의 박수를 칭찬에 대한 보상인 줄 알고 앞발을 들고 간식을 내놓으라고 했다. 혀는 이빨 사이를 비집고 나와 콧구멍을 거쳐 인중까지 스치며 두어 번 날름거렸다. 보상이 없자 '판단 미스'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내 헛발질이 미안하지 않게 간식을 주었다. 고작 한 알이라 입만 버렸지만. 이럴 땐 '내 엄마다' 싶다.


어쨌든 엄마와 있을 때는 귀찮지 않다. 옆에 있을 때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둔다. 부드럽게 등이나 몸의 일부를 쓰다듬을 때는 있다. 그 정도야 성가시지 않고 기분이 좋으니 괜찮다. 엄마는 주로 먹을 걸 줄 때 부르기 때문에 언제나 목을 빼고 기다린다. 특히 주방에 있을 때는 엄마의 동태를 면밀히 살핀다. 그러다 엄마가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간다. 간식창고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0716_120533401.jpg 재미로 쓴 붓펜 캘리 글씨

내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영원한 내 편 설채현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고.

눈치 살피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고 밤새 경계 서느라 잠도 푹 잘 수없다.

이유를 대자면 입 아파서 말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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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