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꼬는 허락하지 않아
산책 나가면 집 근처에서 자주 만나는 녀석이 있다. 그날도 집 앞 공터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모른 체하고 풀더미 속에서 노즈 워크를 하고 있는데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갈색 털에 윤기가 흐르고 주둥이가 까만 게 시선을 끌었다. 보호자도 없이 혼자 싸돌아다니는 게 이상했지만 자유로워 보였다. 난 낯을 가리는 편이라 인사가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 녀석은 처음부터 다짜고짜였다. 오늘도 내 똥꼬를 기웃거려 으르렁거리며 1차 경고를 했다. 그런데도 내 주위에서 알짱거렸다. 몸을 낮추어 갑자기 달려들어 겁을 주었다. 녀석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심한 틈을 타 재빨리 똥꼬 냄새를 맡아보았다. 나보다 어린 수컷이었다. 난 결코 엉덩이를 내주지 않았다. 엄마도 녀석이 못마땅한지 발길질로 쫓아버렸다. 엄마가 동족에게 그러는 건 처음 보았다.
'성가신 녀석, 멀리멀리 가버려라.'
평소 다니던 익숙한 길에 코를 흠흠 거리고 마킹하며 시원하게 볼일을 보았다.
엄마는 날이 좋으면 구릉으로 산책을 간다.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입구에 들어서자 구릉지가 시야 끝까지 펼쳐져 가슴이 확 트였다. 구릉은 높낮이가 있고 약간 비탈져 평지에서 달리는 것보다 묘미가 있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면 미끄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달리기 맛 집'이다. 철부지 시절 마음껏 뛰고 달리며 놀던 장소라 들떴다.
“자두야, 기다려. 이제 풀어줄게.” 엄마는 여느 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목줄을 풀어주었다. 기다리던 자유의 시간이었다. 목줄 없이 달릴 때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낀다.
엄마가 나를 놓자마자 무섭게 구릉을 향해 내달렸다. 구릉 끝자락 잔디밭에 비둘기 떼가 모이를 줍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비둘기 떼 쫓는 걸 좋아한다. 기다리던 엄마의 신호가 떨어지자 비둘기 떼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놀란 비둘기가 하나 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먼지를 일으키며 마지막 한 마리까지 놓치지 않고 한바탕 쫓으니 온몸에 기운이 솟았다.
엄마를 수시로 확인하며 수풀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런데 전방 10m 앞에 나와 비슷하게 생긴 동족이 보였다. 마음이 끌리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살며시 코를 맞대고 엉덩이 쪽으로 돌아갔다. 똥꼬 냄새를 맡는데 순순히 받아주었다. 경계심이 없고 유순한 것 같았다. 온몸이 하얀 털로 뒤덮였고 등줄기에 황색 줄이 선명한 게 나와 닮았다. 덩치는 나보다 약간 작았고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은 것 같았다. 마음에 들어 친해 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걸어보았다. 내가 싫은지 관심이 없는지 응해 주지 않았다. 엄마는 그쪽 보호자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웃으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구릉 끝까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서 집 근처에서 만났던 그 녀석이 보였다. 눈앞에 안 보여서 좋았는데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 잘도 싸돌아다닌다. 녀석은 어떤 동족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보호자는 성가신지 발길질을 하며 뭐라고 한다. 녀석은 돌아서는 듯하다가도 다시 따라가자 보호자가 주먹을 올렸다. 싫다는데 왜 따라다니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이다.
'다음에 또 만나기만 해 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