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아빠를 삼켜버렸어
코끝을 스치는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어두워지고 산책을 다녀왔는데 엄마가 또 나가자고 했다. '나가자'라는 말에 신이 나 점프하며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산책이라면 '먹던 고기'도 내려놓을 수 있다.
엄마는 평소 다니던 산책길이 아닌 생소한 길로 나를 이끌었다. 도로엔 차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소리를 내며 달렸고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며 사라졌다. 난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 달려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엄마와 산책 나갈 때 오토바이가 다가오면 인정사정없이 달려든다. 엄마는 깜짝 놀라 목줄을 당기고 오토바이는 소리를 내며 멀리 달아나 버린다. 엄마를 지켰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 날이후로 엄마는 멀리서 오토바이만 보이면 목줄을 바투 쥐고 길가로 몸을 바짝 붙였다. 지금은 오토바이가 지나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꼬리를 내리고 엄마를 조심히 따라갔다. 평소 산책과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근데 엄마 컨디션을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큰길을 따라 횡단보도를 여러 개 건넜을 때 멀리서 검은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엄마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고개를 숙이고 기운 없이 약간 비틀거렸다. 엄마는 그 형체를 유심히 살폈다. 좀 더 가까워지자 희미하게 아빠 냄새가 났다. 엄마가 그 사람을 향해 뭐라고 하는 걸 보니 분명했다.
"자두야, 자두!" 중저음의 아빠목소리다. 목줄을 의식하지 못하고 달려 나갔다. 항상 현관문 앞에서 아빠를 반겼는데 오늘은 여기서 아빠를 만나게 될 줄이야. 너무 놀라고 좋아서 평소보다 오줌을 많이 지렸다. 꼬리는 요동을 치고 앞발은 허공을 휘저었다. 아빠는 내 귀를 잡고 흔들고 쓰다듬었다. 몸에서 초록색 병 물을 많이 마셨을 때 나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빠는 내 목줄을 잡고 환한 불빛으로 가득한 큰 건물로 향했다. 나는 엄마를 의식하지 못하고 아빠와 나란히 걸었다. 그 건물 속으로 많은 사람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그 앞에 다다르자 아빠는 목줄을 엄마에게 건네고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건물이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나도 따라가고 싶어 급히 아빠 뒤를 쫓았다. 엄마는 내가 당기는 목줄에 일방적으로 딸려왔다.
“자두야, 안돼 기다려! 너는 거기 못 들어가.”
엄마의 외침에도 멈출 수 없었다. 아빠는 사람들과 뒤섞여 함께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목줄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앞에서 아빠를 놓쳐버리다니...
나에게 끌려오던 엄마는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빠가 없어져 버린 이상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주변을 산책시켜 주었지만 노즈 워크 할 마음도 마킹할 생각도 없었다. 엄마가 내 맘을 알았는지 그 건물 입구로 데려다주었다. 주변을 맴돌며 나오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폈지만, 번번이 아빠는 아니었다. 붙박이가 되어 한참을 그 앞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아빠가 나타났다. 난 두 앞발로 아빠에게 달려들며 항의했다.
‘아빠, 갑자기 가 버리면 어떡해. 내가 얼마나 놀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