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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Jul 20. 2024

2장

김욱래 중편소설 연재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하고 진짜 해야 할 것을 같이 해 갈 수 있을 밥벌이 종류는 괜찮다고 그는 생각했다. 급식 트럭으로 학교들을 돌면서 그는 생각해보았다. 단순한 일일 것! 그리고 언제든 때려치울 수 있는 직장, 직업일 것! 회사 생활이든 자영업이든 말이다.

  못하고 산다면 인생, 무슨 소용인가……. 

  그 때문으로도 자유를 넘어 더 중차대한 것은 없다는 게 이젠 꽤 굳어진 자신 결론이었다.

  큰 마트 두 군데의 진열대를 재빠르게 채우면 시간 반. 작년 처음 얼마간은 품목 파악에 제품별 날짜 계산, 선입선출 같은 항목들을 전부 따져가면서 시간에도 대느라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잇몸이 들뜨고 욱신거려 음식물도 잘 씹을 수가 없었지만 이젠 상당히 숙련되었다. 갖가지 제품들을 깔고 나오면서는 빈 가게 두어 군데에 그날 치 물건을 넣는다. 대리점으로 돌아오면 이제 전표대로 다시 챙겨 싣고 외곽으로 빠져야 한다. 정오까지 돌아오기에는 계속 빡빡하다. 작년에도 여자는 그랬다. 

  “기사님은 어째 일 하는 게 노인네처럼 꿈지럭꿈지럭 그러네요?”

  여자의 말본새가 그랬다. 체력의 안배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이번에도 그런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었다. 확, 하고 힘들다 싶은 느낌이 끼쳐오면 후, 하고 한두 번 숨을 뱉어야 하지만―아주 기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그럴라치면 또 여자가 노인네 어쩌고 해댈 것 같아 사각지대로 들어설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엉덩이와 배, 다른 군데도 다 똥똥한, 어쩌면 사는 피로로 부은 듯한 몸통에다 양 꼬리가 내려처진 그믐달 모양의 눈을 한 여자는 당연한 것처럼 꼭 시내 두세 군데를 더 얹어준다. 그는 누가 그런 말을 한 것을 생각했다. 인물을 순간에 판단할 수 있는 잣대로 육체만큼 정밀한 것은 없다고. 그것은 육체가 정신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자가 잘 집어주는 한 프랜차이즈는 이름이 ‘기름 솥에 빠진 닭’이다. 

  시간을 가늠해본다. 정상적으로 돌아치면 12시 40분은 넘어야 할 것 같다. 속으로 욕이 나온다. 40분 치를 더 줄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건 없다. 무료다. 정시에 끝내고 그날 치를 벗어나려면 대차게 밟아야 한다.




  어느 근처를 힘들여 그는 급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말이지……! 그는 생각했다. 차가 가는 것 아닌가. 나는 밟고 있으면 되는 거다. 힘들 거 없는 거다. 그래! 사유……! 나는 사유를 해야지. 그리 안 한다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닭 가게 주인과 그 여편네, 차라리 상머슴인 그 부장이라 하는 친구를 포함, 이 촌 도시의 군상들이야 그렇다 쳐도 저런 곳들은? 

  추억이 새겨져 있는 장소들. 그런 곳들을 그는 되는 데까지 그려보려 하고 있었다. 이런 동네에 무슨 특별한 볼거리가 있느냐? 관광도시? 입꼬리 한쪽을 올리면서 그는 비죽이 웃었다. 그런 거 몇 개 없는 동네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부러 외지에서 찾아와서 뭘 보고 느낀단 말인가.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다. 자신에게는 야심이 있다. 그는 자기 집을 나중 언젠가는 자신의 그 기념관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랬다. 그는 자신 삶의 길을 새삼 알게끔 되었다. 그리 못 할 거 또 뭐가 있는가. 그는 생각했다. 투실투실 부었다가 소진될 수는 없다. 

  나더러 그렇게 살지 말라던 것들아. 그는 그들을 비웃었다. 무슨 평론가, 그것도 아마추어같이 둘레로 빙 둘러서서 떠들기만 하던 것들아, 그는 그들이 우스웠다. 개중에 몇은 새파랄 때부터 한자리 차지했었다 한들 다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자! 이 나이가 되어보니 남은 게 뭐가 있느냐. 삶은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인 게 아니고 예술처럼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것이다. 삶, 달리 말해 질풍과 방황의 그것이어야 하였을 때, 그 의미 있어야 했었을 푸른 시절, 너희들은 그 귀한 시간을 마치 자신들과는 크게 연관을 갖지 못하는 타국 관람객들인 양 스리슬쩍 지나쳐 보내고 말았잖느냐. 

  돈은 남았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그게 너희 자신의 돈이냐? 너희 자신을 위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냔 말이다. 

  돈 문제에 있어서는 너희나 나나 하등 차이가 없다. 상대적일 뿐인 거다. 그래, 맞다. 나는 지금 닭 궤짝 배달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말이다. 하등 가치도 없는 소멸이 허무해 뭔가 남기려고 힘들여 사는 것이다. 못해도 나는 너희들보다는 삶에 더 당당한 것이다. 나는 적어도 소멸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두고 보아라. 너희들처럼 하릴없이 소진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나는 한계에 도전하지만 언젠가 닥칠 한계를 시인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나서 나는 그대로를 인정하겠다. 지금 내가 해가야 하고 할 수 있는 바는 거기까지니까. 

  남들도 그런지는 몰랐어도 그는 이렇게 언어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피곤했다. 하루 두 차례의 일. 먼저는 돈을 받는 일이고 다음 건 돈을 내야 하는 일. 토요일 오후였다. 도대체가 나른해서 그가 이도 저도 못하고 방에 엎드려있는데 창밖으로부터 무슨 머신건 소리, 이를테면 M60 기관총 같은 것으로 갈겨대는 소리와 그로 인한 듯한 진동도 함께 오랫동안 이어졌다. 마치 시가전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는 일어나 확인해보기가 귀찮았다. 피곤했다. 아마도 아스팔트를 새로 깔려고 전 것을 기계로 깨 내는 소리일 거라고 그는 짐작했다. 

  그런데 혹시 진짜로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라면……? 설사 그렇대도 어떻단 말인가. 반 동가리도 안 되는 꽁초를 두세 개씩 담뱃갑에 넣고 다니는 신세 아니란 말인가. 그 2년여 만에 이렇게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어느 한국소설 중의 얘기가 생각났다. 베트남에는 한국군이 ‘죽음의 계곡’이라 이름 붙인 곳이 여럿 있었는데, 그 장소들 중 한 산의 죽음의 계곡으로 베트콩 복장으로 베트콩 집결지를 찾아 극비 수색 정찰을 떠난 소대원들의 대목이었다. 한 병사가 함정에 빠져 제일 먼저 죽었다. 입구를 위장했던 대나무와 흙이 그 병사의 가슴에 수북이 쌓였고 땅바닥에 꽂힌 수십 개 날카로운 죽창이 병사의 몸을 꿰뚫고 삐죽삐죽 솟아 나왔다. 눈을 뜬 채로, 입도 멍청히 벌리고 즉사한 그 병사의 귀에는 피우다 만 담배꽁초가 몽당연필처럼 그대로 꽂혀있었다. 그는 꽁초를 버리지 못하고 귀에 항상 꽂고 다니다가 필터만 남을 때까지 다 피운 다음에야 버리던 병사였다. 집안이 무척 가난해서 전투 수당은 거의 다 집으로 보냈고 남 보기에 너절한 물건들도 꼭꼭 모아두었었다고 했다. 

  어차피 전쟁 같은 삶 아닌가. 그는 머신건 같은 소리가 타 넘어오는 방구석에 숨어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실사 나가려고 했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아니 ……왜요? 무슨 문제가 남았었나요?”

  지난 1월 하순 어둑한 저녁이었다.

  “선생님 댁 토지가 압류돼 있는데 그걸 저희가 미처 확인을 못 하고서……. 죄송합니다.”

  멍해지는 정신으로도 그는 대체 어느 쪽이 죄송하다는 건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기네들이 도움이 못 돼서 그렇다는 건지, 집의 대지 압류 사실을 이제야 확인을 해서 그렇다는 건지를. 그는 가슴이 이지러졌다. 

  그가 건강보험 말이냐고 물으니 휴대전화 저 너머에선 그렇다고 했다. 갑갑한 노릇이었다. 

  “……건강보험에서 내 집 토지 압류한 거와 사업자 운전자금 신용보증하고 무슨 관곈가요? 집 담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님, 물론 주택 담보는 아니지만 그런 게 있으면 불가능합니다, 규정상. 그 부분만 처리하시면 삼 개월 있다가 다시 신청 가능하십니다.” 

청년의 어조는 이제 막 울먹거리려는 아이를 살살 달래려는 듯했다. 모임 와중에 두어 순배 소주잔을 받고 나왔던 그의 머릿속이 빡빡하게 옥죄어들었다. 원래 돈이 없으면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걸 예전부터 자신이 경험했었는데 그만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게 비참했다. 

  국가……! 그는 쓴 물이 올랐다. 사업자등록증과 임대차 계약서, 국세 및 지방세 완납 증명서―그는 한꺼번에 돈을 만드느라 죽을힘을 썼다―, 거기다 사업장 시설만 웬만큼 되어 있으면 당연히 해줄 듯이 국가는 왜 그렇게 늘어놓았단 말인가. 

  돈이 없어 간판도 올리지 못하는 채로, 월 임대료만 생짜로 바치면서 이제부터 대체 얼마 동안을 버틸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놈의 것!’으로 내 결국 이 꼬락서니가 되었단 말인가. 이틀 뒤 딱딱하게 오른 눈 내안각(內眼角)이 툭 부어올랐다. 눌러보면 띵띵하니 아팠다. 그냥 두면 되겠지, 했지만 가라앉지를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병원에 가서 칼로 쨌다. 고름을 거의 짜내는 데는 두 번을 더 가야 했다. 수술비를 포함 치료비는 비쌌다. 


  바람 오는 날에는

  나는

  저 높은 재로 간다.

  바람맞으러.


  바람에 두드려 맞는 차가 덜덜 떨렸다. 두어 달이 가고 어느 날 오전이었다. 시트를 젖히고 그 진동 속에서 그는 작은 중국산 노트에다 그걸 썼다. 내려오면서 그는 생각했다. 살아야지……! 

  며칠 뒤 그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사업장 공사비 남은 것을 부치고, 금방이라도 떼어가겠다는 집의 전기계량기들을 지키고, 새 사무실에 책상과 의자 등속을 중고로 들여놓았다. 




  그러고 나온 뒤 어리석은 사내는 손목을 긋고 어쩌고 했지만 죽지를 못하고 이 촌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디 깨에서 잡혔다고 했다.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미래가 캄캄했겠지. 하지만 인간아. 원래 미래란 캄캄한 거 아니냐. 야성으로 사는 거지. 그는 생각했다.

  이 나라에서 거의 첫째로 치는 서울의 명문 사립 Y 대학교를 나온 그 사내의 인생 이력은 자신은 견줄 수 없을 만큼 월등한 종류였다. 지나온 자신의 삶은 차라리 비루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실직 상태가 된 그 사내는 아파트를 담보해서 빌린 돈으로 결국 나중엔 죽인 자기 처에게 생활비로 매달 400만 원씩을 주어왔다는 데에는 그는 눈살이 찌푸려졌었다. 남편은 전연 미래가 없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닌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여편네는 뭐하고 그저 들어앉아 있었단 말인가. 부부관계까지도 역시 채무자와 채권자의 그것이란 말인가.

  그 문제는 그렇다 치고, 나도 아직 야성이 남아 있던가 하고 그는 그것에 대해서부터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자신은 어깨, 그것도 힘을 써야 하는 오른 어깨는 어디를 어떻게 나갔는지 지난한 동통에 시달리고 있다. 허리도 1년에 한두 번 갑자기 도지면 열 며칠씩은 쓰지 못했다. 군대 시절에 다친 오른 손목 역시, 이젠 진짜 늙었는지 뜨끔대는 게 힘을 줄 수가 없다. 몸뚱어리 전체의 기운도 그랬다. 그 귀찮게 얄팍한 스마트폰 배터리―스마트폰 뒤 껍질에 손톱을 끼워 넣어 열고, 그걸 깨작깨작해서 빼내고, 바꿔 끼울 때마다 그는 너무 귀찮고 짜증이 났다―같다고 그는 느꼈다. 몇 년 되었다고 그건 아침에 일어나서 갈아 끼워놓으면 오후 중간쯤 벌써 떨어진다. 자신의 몸뚱이 원기 역시 그 배터리를 다시 한참을 충전시키듯 낮잠으로 충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남 일 할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뭔가 때때로 조급함 비슷한 것도 자기 몸뚱어리에 배겨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가령 이것저것들을 사서 차에 싣고 온 뒤 그것들을 들고 집으로 올라가야 할 때, 손과 팔이 몇 개쯤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그는 했다. 팔 두 짝으론 너무 적은 것이다. 

  몇 년쯤부터였을 것이다. 씻으면서 그는 면도기라든지 칫솔 같은 것들을 자주 놓쳤다. 씻고 나서는 수건이나 팬티 따위를 자꾸 놓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끙, 하고 불편한 허리를 구부려 귀찮게 다시 집어 들어야 하게끔 된 것은 뭔가 급하다는 기분 때문인 것까지는 알았다. 이리되었는데 여태껏 칼만 쓰면서 살았으면 어찌할 뻔했나, 그러지 않은 것은 그중 다행이었다. 

  돌아보니 아주 예전엔 자신이 돈을 제법 벌었을 때도 있었다. 돈 벌기 바빴던 그 시절, 흰 봉투에 돈을 빡빡하게 채워 아내에게 갖다 주었을 때 그의 아내는 여러 번 그랬었다. 말다툼이야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그 봉투를 건네주는 밤에 그랬다는 뜻인지 다음날 그가 일어나보면 두툼한 그 돈뭉치는 아무 데나 던져져 있었다. 자신의 땀이 젖은 돈다발을 보며 그는 지그시 이를 물었었다. 그런 연유에서였는지 그 시절 이후로는 돈이 쓸 만큼 들어오지를 않았다. 아니 돈 문제로 인한 곤란이 크고 작은 쓰나미로 지금껏 연속해서 밀려왔고 자신은 이젠 지칠 대로 지쳐있는 것이다. 마치 지나친 훈련 끝에 ‘피로 골절’에 걸려버린 특수부대 요원처럼. 

  기분이 그럴 때는 인적 끊어진 시내 밤거리를 그는 몇 번 차를 몰고 돈 적이 있었다. 또 다른 옛 여인의 집 앞 골목. 그 골목길에서 몸을 숨기고 자신은 얼마를 기다리고 서 있었던가. 안절부절못했던 숨 막힌 사랑이었었다. 그 여자는 물론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듣기에 그 여자는 세 번째 사내와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최선이었을까, 진짜 지금이. 그 집 앞을 지나가면서 그는 다시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과연 그 여자였다면 이제 와서라도 내가 할 수 있었을까? 몸집은 작았지만, 기계체조 선수 같은 몸매에 얼굴이 꽤 반반했던 그 여자의 떠남은 추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장르는 ‘제 팔자를 남에게 다 내주는 일’이라고 어느 유명인의 모친이 생전에 자기에게 남겼다고 했다. 제 팔자를 내주는 것이 뭐가 대단한 것이냐.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러면 또 어떻단 얘기냐, 무슨 대단한 팔자라는 거냐. 

  얼마 전에 그는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자신이 여섯 살쯤일 때와 연관 많은 사람을 우연히 만났었다. 살집은 불어있지만 그래도 그 영감은 아직은 정정한 편이었다. 그때 다섯 살이었던―아마 맞을 것이었다―조그맣던 여자아이의 아버지였다. 영감은 하지만,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나?”

  하고 묻지는 않았다. 왜 우리 딸애를 그냥 버려두었냐고…….

  여섯 살쯤이었던 그때의 자신은 세발자전거 뒷자리에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태우고 몇 번 시내를 드라이브했다. 

  “내가 대통령 되면……”

  그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너는 영부인 해, 알았지?”

  그녀가 대답했다.

  “응.”

  미래의 대통령과 영부인. 알 만한 사람에게는 다 소문이 났었다. 

  대통령은커녕……. 

  까무잡잡했던 옛날의 그 소녀는 한 번 결혼하지도 않고 서울 아래 어느 신도시 병원 물리치료사로 있다고 그녀의 부친이 말해주었다. 40년이 넘게 지났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그녀를 한 번 찾아가서 물리치료를 받아보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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