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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는 기쁘다.

_ 남오

by small girl


솔은 작고 예쁘다.

너무 소중해서 꽉 안으면 부서져 사라질 것만 같다.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마치 세상은 내게 힘듦을 주다가 이제야 쉴 수 있는 바람을 불어줬는데, 그 바람이 멈춘다면 나는 괜찮을까?

왜 사람들이 너무 행복하면 불행을 걱정한다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불행 속에서 허덕이며 살던 내가 솔을 안을 수 있게 되니 다시금 그 불행으로 돌아갔을 때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취업을 했고 내 전공을 살려 자동차 회사에서 밤낮 할 것 없이 일단은 돈을 벌었다.

누구보다 돈이 삶의 안정이라는 걸 잘 알기에 솔이 나로부터 불안함을 느끼게 하기 싫었다.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다툴 시간도 없었다.


그녀가 물었다.


”후회하지 않아? “

“솔은 내게 삶의 이유야.”


이전까지의 삶은 후회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솔을 위해 산다.

너와 함께라면 늘 먹던 라면도 맛있게 느껴졌고, 별 것도 아닌 내 회사 생활 이야기를 꺄르륵 거리며 들어주는 너는 내게 삶의 이유가 되어갔다.

”그럼 날 사랑해? “


그렇다고 말하기 위해 이유를 찾자면 너무나 많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널 본 순간부터 나는 이상하게도 그냥 얼어붙었고, 너의 모든 건 내 결핍을 생각나지 않게 했다. 그래서 말했다.


”날 살게 해. “


그렇다. 그동안 난 무얼 위해 살아왔을까.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 다른 이들로부터의 인정?

그런 줄 알았다. 그걸 원했고, 얻으면 내 삶의 이유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솔을 만난 후로 삶의 이유를 찾았고 나는 너로, 너는 나로 서로를 채워갔다.


어느 날은 솔이 물었다.


”남오야, 넌 꿈이 뭐야? “

”꿈?... “

”나는 잘 나가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 “

”나는 네 노래가 좋아 솔아. “

”그러니까 남오는? 좋아하는 거. “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하자면 ‘솔’이 되는 건가.

아마도 솔이가 기대한 답은 아닐 것 같아서 입가에 맴돌던 솔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리곤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 같다. 나의 꿈이란 것에 대해서.


나는 책과 영화를 좋아했다. 가난 때문에 어딜 가서 돈을 주고 보거나, 집에서 지금처럼 원하는 영화를 바로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오히려 책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책은 쌌고,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내 마음대로 그 글자들을 상상할 수 있었고, 원하면 그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했다.

책 속에 빠져들 땐 그 모든 것들에서 해방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오랫동안 허우적거리고 싶었다.

그때부터 공상과 허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우연히 놀러 간 부잣집 친구 집에서 본 영화는

내가 여태껏 허우적거린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파도였다.

내 생각과 상상을 저렇게 멋대로 표현할 수 있다니.


돌이켜보면 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자꾸만 표출하고 싶었나 보다.

날 무력하게 하는 글자와 영화를 보며 그걸 표현하는 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 속에 빠져있어도 살아있음을 느낄 테니까.


고민 끝에 솔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작가였다. 그리고 영화감독.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는지, 대답이 의외여서 흥미로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또 씩- 웃었고, 난 그 웃음에 그저 행복했다.


그녀의 웃음을 보니 이게 진짜라는 생각에 아무렴 어떤가라는 마음이 다시 한번 굳어졌다.

애초에 내게 꿈은 사치였고, 희망고문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내겐 솔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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