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솔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자꾸만 붉어지는 당신이 더 궁금해졌다. 분명 날 쳐다보는 그 눈은 나의 무엇 하나 놓치려 하지 않았고, 그가 가진 순수함은 그를 꿰뚫어 보기에 충분했다.
그가 내게 이끌린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나는 그를 더 재촉했다. 지금 이 자유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더 먼 미래를 위해 사는 건 바보 같은 일처럼 느껴졌다. 날 자유롭게 하는 그 모든 순간에 살아있고 싶은 거다.
그래서 물었다.
“같이 갈래요?”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 짧은 고민의 순간동안 내가 느낀 이끌림을 잠시 의심하려던 찰나, 의심이 무색하게도 그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서부터 혼자 지내는 게 익숙했던 그는 좁은 단칸방 한편에서 라면을 쌓아두며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소박함과 단칸방에 묻어있는 그의 흔적들이 좋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소박함보다는 절박함에 가까웠달까.
그렇게 우리는 단숨에 가까워졌고 이제는 어느 집 막내딸이 아닌, 남오의 여자로 자리 잡고 싶었다.
그와 같이 눈을 감고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얼굴이 남오라는 게 행복했고, 내 삶에 의미가 되어주는 남오가 있기에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남오 역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이제 갓 성인 된 나를 책임지겠다며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를 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단 닥치는 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했다.
“후회하지 않아?”
내가 물었다. 혼자서도 묵묵히 지금껏 잘 살아온 남오에게 행여 나라는 짐이 생겨서 그의 삶이 더 벅차올랐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고서 특유의 덤덤하고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솔은 내게 삶의 이유야. “
“그럼 날 사랑해?”
“나를 살게 해.”
그리곤 이어서 들려주는 그가 그동안 살아온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책임감이 있었고, 부모에 대한 결핍이 있는 만큼 그 결핍으로 방황이 아닌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잘 웃지도, 평범한 일상에서 편안함을 누리지도 못하는 그를 보며 단지 성격의 일부라 여겨왔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풀어지는 방법과 일상에서의 쉼을 아직은 서툴지만 나를 통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충분했다. 앞으로 나의 삶을 그와 함께 하고 싶다는 확신을 하기에 그가 걸어온 그 길은 곧 증명이었다.
깊은 뿌리가 박혀있는 큰 나무처럼 그는 단단하고 큰 사람이었다.
그를 더 안아주고 싶었다. 그를 채워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