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솔
여느 집 막내딸처럼 나도 모든 게 내 세상이던 때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언니도 나 하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양보하고 혹여나 내가 부서지기라도 할 듯 애지중지 다루었다.
그들은 내게 넘치는 사랑만 주고 싶었는지 우리 집의 힘듦은 나의 몫이 아니었다.
시간은 흐르고 그들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 또한 점점 커져가는데,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여야만 했다.
아빠의 반복되는 도박에 우리 집이 기울어갈 때도 나는 해맑아야 했고,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언니가 나를 돌볼 때도 나는 어리광을 부려야 했다.
다만 그 귀여운 어리광은 오롯이 집에서의 나일뿐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 말 못 할 큰일이 생겨도 나는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나의 몫까지 짊어지고 있으니. 집에서 배고프다는 어리광으로 나의 몫은 다 한 거다.
그 이상의 어떤 짐도 더 주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막내가 다 막내다울 수 있다면 나 또한 지금보다 더 철부지 어린아이였겠지.
그래서 밖에서는 자유를 찾았다.
아무도 나를 어떤 역할로 바라보지 않는, 나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자유.
그럼 우리 가족은 말할 거다.
”그 누구도 너에게 어떠한 걸 바라지 않아. “
우리는 말로 해야만 다 아는 게 아니다.
충분히 나이가 들어서 세상물정을 알 수 있던 나는 우리 집이 아빠의 도박으로 기울어간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언니가 꿈을 포기하고 날 돌보기 시작했다는 것도, 집안일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시장에 자주 가게 된 이유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크고 있다는 걸 그들만 몰랐다.
내가 자유를 찾고 싶어 하는 건 우리 가족에게 갑작스러운 일일테다.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던 내가 뜬금없이 바에서 남자를 만나다니.
나의 자유로움 역시 그들만 몰랐다.
가족이라는 건 참 어렵고 애틋하다.
부모가 처음이고, 언니가 처음이며 나 역시 막내가 처음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서툴렀던 것일까, 모든 걸 받은 것 같았던 막내는 정서적인 사랑이 고팠다.
기울어가는 집안을 바로잡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가족들은 멀어져 갔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나는 우리 가족을 의지할 수 없었다.
내가 우리 가족을 의지할 수 없게 되었어도 그들을 사랑한다.
누군가를 의지하는 마음과 사랑이 전부 비례할 수는 없는 거다.
내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나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텅- 비어져 갔다.
그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건 자유라 생각했던 걸까.
무얼 위한 자유인지도 모른 채 나는 어른이 되면 그것들이 채워질까 싶어서
그 ‘바’로 행했던걸지 모른다. 어른인 양 흉내라도 내면 채워질까 싶어서.
그때 내게 나타난 남오.
내가 바란 오롯이 나로서 날 사랑해 줄 사람.
어디서 왔고 무얼 하며 자랐는지, 누구 집 막내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나라는 사람을 어여쁘게 여겨주는 사람.
이제야 조금씩 그 텅- 은 채워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