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남오
“술 좋아해요?”
아직도 선명한 목소리.
네가 들어오는 순간 난 알았다. 너라면 내가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얼굴에서부터 사랑이 흐르는 너와 달리, 부모의 넘치는 사랑이 무엇인지 느껴본 적 없는 나는 너에게 한없이 부족했다.
방황하던 어린 시절에 했던 주먹다짐 때문에 깨져버린 내 앞니는 네 앞에서 환하게 웃을 수 없게 했고, 인생이 불만이던 나의 얼굴은 빛나는 너의 미소에 그늘이 지게 할 것만 했다.
그래서 널 사랑하고 싶었다. 너에게 맞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너의 웃음을 내 곁에 두고 싶었다. 못마땅한 내 입은 그녀의 질문에 어떤 목소리도 못 내고서 그저 술잔을 건네게만 했다. 아마 내 얼굴은 한참이나 붉어져 있었을 게 분명하다.
네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널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하나만 알면 될 것 같았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내 앞에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간은 멈췄다.
“같이 갈래요? “
놀랍게도 너는 내게 너무 빠르게 다가왔다. 그 성급함이 난 싫지 않았고, 내일을 더 생각하기보다 지금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좋았다. 그다음은 없었다.
이 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는 경험은 다들 있지 않은가? 그게 사랑이던 우정이던 날 살아있게 하는 그 순간이라면.
놀라움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녀는 그 바에서 내가 바 테이블을 넘어가지 못할 걸 알았는지도 모른다. 이미 날 다 까발려진 것 같지만 그래서 더 빠르게 다가오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오롯이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며 살아온 나는 신중과 인내로 그 시간을 버텨왔는데, 널 마주한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섣부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순간을 산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아름다운 너의 외모도 날 떨리게 하기 충분했지만, 꺄르륵 웃는 네 웃음소리와 주변 공기를 바꿔놓는 너의 분위기, 무엇보다 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릴 때의 네 목소리.
그 무엇 하나 놓칠 것 없이 오히려 날 더 재촉하기 바빴다.
내게 술을 좋아하냐고 묻던 넌 귀엽게도 술을 잘 못 마셨다. 보드카 한 잔에 금세 취해버린 넌 지금 내 옆에 누워 곤히 잠에 들었다.
내 공허를, 결핍을, 외로움을
네가 채워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