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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Sep 12. 2024

과잉보호 황제펭귄의 에필로그

프롤로그는 없었지만



   회사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가 ‘K부모 테스트’라는 것을 알려줬다. 극성지수 –999점부터 +999점까지 8개 정도로 유형화시킨 ‘부모 MBTI’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안 해볼 수 없지.      


테스트 결과 나는 ‘과잉보호 황제펭귄’이라고 한다. 극성지수가 무려 최고점인 999점이다. ‘캥거루맘’도 남편의 결과인 ‘시베리아 호랑이’도 나보다는 극성레벨이 낮다.


내가? 나는 아이에 대해 학구열이 높지도 않고, 부족한 점도 때 되면 좋아지겠지 하고 느슨한 편인데... 내가 왜?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있지만 분명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정서적으로 ‘극성맘’이라는 것을.


               




   나는 어려서 엄마, 아빠에게도 속마음을 잘 보여주는 아이가 아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속상한 일이 있어도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든든하게 나를 지지하는 느낌이라든지, 온전한 나의 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걱정을 끼치기 싫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뭘 알겠냐 싶은 아이는 울다가도 나만 보면 웃고, 내가 곁에 가면 내 품으로 파고들어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살면서 이토록 내게 무해하면서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었던가 싶다. 그런 아이는 크면 클수록 든든한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거울 속에 웨이브 사이에 직모가 간간이 섞인 이상한 펌을 한 여자가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거울을 보는 나를 애옹이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평소 나답지 않게 용기를 내어 미용실을 다시 찾아갔다. 머뭇거리는 내 옆에서 애옹이가 따졌다.


“우리 엄마 머리 왜 이렇게 해주셨어요?”  


나도 놀라고 미용실 아저씨도 놀랐다. 여섯 살짜리 보호자의 컴플레인에 귀까지 빨개진 아저씨는 2주 후에 다시 리터치를 해주겠노라 답을 지만 귀찮아서 말았다.


여름이 되니 발 끝에도 색을 좀 입혀주고 싶어 네일숍에 간 날에는 날카로워 보이는 도구들이 엄마 발로 향하자 애옹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부탁했다.


“우리 엄마 발 안 아프게 해 주세요~” 


기가 세서 고객들이 발길을 끊게 만든다는 어린 여사장은 당돌한 꼬맹이의 엄마걱정“그래~ 알았어~~” 하고 입을 쭉 내밀었다.

      

요즘은 회사에서 민원인들에게 시달렸다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해준다.

  

 “엄마, 그 XX 어디 사는지 알아? 내가 가서 때려줄게.”     


 “집도 모르지만 너 그러면 감옥 가. 그런 말은 하지도 마.”


그렇지만 속상했던 마음은 아들 덕분에 이미 풀려있다. 


     




   이렇게 남 눈치 안 보고 할 말을 시원하게 하거나, 회복탄력성이 좋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몰입도가 높거나, 운동신경이 둔하거나, 교우관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외모에 신경 쓰지 않거나, 남을 쉽게 용서하거나 하는 그동안의 소소한 에피소드의 조각들을 모두 합치면 애옹이는 ‘아스퍼거’라는 그림으로 퍼즐이 맞춰진다.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상당수는 출생 전후로 대뇌 손상을 일으키는 산소결핍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나는 애옹이를 낳을 때 진통이 길어지면서 산소호흡기를 꽂고 선생님과 남편이 호흡하라고 다그쳤던 기억을 떠올리게 .  

   

사회적 신호에 둔한 애옹이는 자라면서 또래들의 배척을 당하기도 하고, 여러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고 자기 것을 기꺼이 나누는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남편과 나는 잘 안다.   

   

그리고 이 아이는 17년 넘도록 내 곁에서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저도 모르게 나의 결핍을 치유해 주고 있다. 서정주 시인을 키운 팔 할이 바람이라면, 정서적으로 나를 키운 팔 할은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쩌면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쪽은 아이가 아니라 나일지도? 


           




   무작정 첫 브런치북을 만들면서도 떠오르는 소재는 아이에 대한 것밖에 없었다. 그동안 글을 써왔던 것도 아니고, 어떻게 구성해서 연재할지 계획도 없이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간 건 사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인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다양한 추억과 느꼈던 감정에 대해 남기고 싶은 주절거림에 가까웠다.      


의식해 쓰게 될까 봐 지인들에게도 공유하지 않았는데,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생기니 덜컥 겁이 났다. 남의 글에 비해 나의 글이 너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의 의도가 왜곡되어 보일까 봐 걱정도 됐다. 브런치북을 없애고 싶은 유혹도 몇 번 느꼈지만 처음 내 의도를 떠올리면서 스스로 다독였다.     


 ‘뭐 어때? 애옹이처럼 나도 내 '쪼'대로 는 거지.’   




   


   아이가 벌써 고2니 내 품 안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대학 가고, 군대도 가고,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혼이 꼭 하고 싶은 애옹이가 들으면 펄쩍 뛸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정서적 독립을 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그때를 위해 생각과 마음이 온통 아이로 가득 차 있는 ‘과잉보호 황제펭귄’은 조금씩 다른 것들도 함께 채워 넣어서 극성지수를 서서히 낮추고 이제 인생 멘토가 되어줄 준비를 해볼까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아스퍼거'이거나 혹은 그런 기질을 가진 애옹이는 앞으로도 군대에서, 직장에서 또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 모든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가 가진 성향의 강점들을 믿고, 또 점차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도 기대를 걸어 본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애옹이를 낳고 기르면서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귀하게 생각됐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생각만으로도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게 됐고, 나의 인간관계도 점점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결핍 많은 어린아이 마음에 머물러 있던 나를 이만큼 성장하게 해 준 우리 아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바람은 언제나 너의 등 뒤에서 불고
너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기를
이따금 너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잉글랜드 켈트족의 기도문 中






# 읽어주신 분들께


사실 저는 작가, 독자 이렇게 부르는 게 많이 어색하고 부끄럽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저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 따뜻한 격려에 큰 힘도 얻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라다' 연재는 끝나지만 저는 아이와 함께 계속 성장하겠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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