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침, 저녁으로 냉풍기 없이도 잘 수 있을 만큼 선선한 바람이 이어진다.
집 안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다가올 가을을 위해 벽에 걸 그림이나 소품들을 하나둘 준비했다. 아이의 교구와 책도 가을과 관련된 것들로 찾아,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사지도 않을 품목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풍요의 장바구니란.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하다.
가을이 왔구나 싶다.
최근 아이가 엄껌(엄마 껌딱지) 기술을 한껏 발휘 중이다. 화장실이든 베란다든 어디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부엌. 아이 밥을 차리러 들어가면 금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놈에 수도꼭지만 틀어도 소리를 지르니, 설거지 하나를 하는 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가끔씩 아이의 이유 모를 행동에 화가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를 때도 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안아주나 싶어 최대한 끌어안아본다.
이럴 때 내게 힘이 되는 요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먹밥이다. 빠른 시간 내에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도 있지만, 재료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어 입 안 가득 어울릴 때 느껴지는 풍요로움이 좋기 때문이다.
전날 준비해 둔 버섯을 꺼내 프라이팬에 올린다.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잘게 썬 버섯은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금세 숨이 죽어 눌린 버섯에 간장과 다진 마늘, 올리고당을 섞은 양념을 부어 잘 베이게 한다. 단내가 부엌을 가득 채울 무렵, 따끈한 밥 위에 볶은 버섯과 생 미나리를 올려 꾹꾹 뭉치면 주먹밥이 완성된다. 손바닥 위에 따끈한 밥을 올려 꼭 쥐니, 손끝에서 향긋한 풀내가 번진다.
버섯은 땅의 어둠과 습기에서 자라고, 미나리는 물과 햇볕을 머금는다.
단출한 주먹밥 하나에도 흙과 물의 시간이 쌓여 있다. 땅에서 나는 것들을 손안에 고스란히 쥘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든든하다.
밥솥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지글거리는 버섯 소리, 부엌에 퍼지는 달큰한 양념냄새.
아침이 차려지는 순간마다 마음속에 문장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이번 가을, 우리의 식탁은 어떤 모양새일까.
나는 아침상을 앞에 두고 숨을 고르며, ‘풍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야만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마음을 다 한다면, 주먹밥 하나에도 충만함이 깃드는 법이다.
돌아온 나의 가을도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손바닥 안에서 완성되는 작은 기쁨을 오래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것이다.
이 충만함이 오래도록 식탁 위에 머물기를, 우리의 가을이 천천히 익어가기를 바란다.
《아침식사 됩니다》 시즌3를 시작합니다.
그간 함께 읽고 마음을 나누어주신 시간들이 저에게는 큰 위로이자 힘이었습니다.
따뜻한 아침 식사가 하루를 데우듯, 제 글도 독자분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덥혀드릴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다시 맛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