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움 Sep 24. 2024

#14. 섬집아기와 바지락미역솥밥




아, 등센서가 작동하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섬집아기'를 불렀던가.

노래에 등장하는 아이는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든다'는데, 우리 집 아이는 언제쯤 잠을 잘 수 있을지.






#1.

얼마 전 아이가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맞은 후로 매운맛 육아를 하는 중이다.

예방접종 과정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이는 양쪽 허벅지에 주사를 두 방이나 맞았지만 빽-하고 소리를 지르고 잠시 울 뿐 언제 그랬냐는 듯 의연하게 진료실 문을 나섰기 때문이다. 병원이 떠내려갈 정도로 오열을 하던 첫 예방접종을 생각한다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스머프 반바지만 했던 녀석이 한 달 사이에 이렇게 컸나 싶어서 그저 대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집에서 발생하였다.

다음날 아침부터 접종열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는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앓기 시작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프지 않았을까 싶다. 생애 첫 접종열과 열을 동반한 증상들에 아이는 잽을 맞은 권투 선수처럼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주사를 맞고 병원문을 나선 그녀였지만 누가 봐도 완벽한 KO패였다.


생각해 보건대, 아마 그날이 시발점이지 않았을까.

차라리 칭얼거렸다면 말이라도 걸면서 달래줬을 텐데, 힘 없이 늘어져서 끙끙 앓는 모습을 보니 아플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행히 열은 떨어졌고 평상시 모습으로 되돌아왔지만, 그 일이 있은 후부터 80일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아이는 내 품 안에 안겨있는 중이다.


아이는 누워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맘카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고민 키워드 탑티어에 들어가는 '등센서 작동'은 찾아볼 수 없었고, 안고 있으면 오히려 내려달라고 발버둥을 쳤었다. 산후조리 선생님께서도 애가 눕는 것을 좋아하고 순하여 도와줄 것이 거의 없다고 오히려 미안하다는 이야기까지 하셨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려놓기가 무섭게 울어대는 통에 집안일은커녕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잠은 누워서 자야 제맛인데 눕지를 못하고, 입면 시간도 늦어져서 그야말로 매운맛 육아의 시작이었다.







#2.

산후풍 때문인지 무릎 통증이 심해져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버거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눕기 싫다고 끊임없이 읍소하였고, 어르고 달래 소파에 앉으면 흔들림 때문인지 더 짜증을 부렸다.

아이의 울음이 늘어날수록 내 밥의 크기는 점점 줄어만 갔다. 어떤 날은 컵라면, 어떤 날은 빵 쪼가리, 그러다가 어떤 날에는 김에다가 밥만 싸서 먹었고 그것이 그날의 첫 끼이자 마지막 끼니가 된 날도 있었다.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 먹을 수 있는 날은 남편이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뿐이었다.


주말을 코앞에 둔 금요일,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지락살을 주문했다.

바지락칼국수, 바지락 전, 봉골레 파스타 등 무엇을 해 먹을까 하다가 건강한 밥상을 차려 먹고 싶어 '바지락 솥밥'을 만들기로 하였다.

물컹 쫄깃한 바지락에 오돌토돌한 미역줄기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 아닐까.


이날의 아침 밥상은 그야말로 ‘바다’다.



<바지락미역솥밥>
*밥
 - 팬에 미역줄기볶음과 진간장, 다진 마늘을 살짝 넣고 볶다가 불린 쌀을 함께 넣어 볶고 밥을 안친다.
   (이때 볶는 과정에서 추가 양념은 하지 않고 추후 양념장만 만들면 된다.)
 - 밥이 완성되면 미림과 후추를 넣고 헹구었던 바지락살을 투하, 5-10분 정도 뜸을 들인다.

*양념장
 - 진간장(맛간장도 조금 섞음), 고춧가루, 매실액, 깨, 청양고추, 양파를 넣어 섞는다.

**여기에 모처럼 바지락살과 간 새우 등을 넣은 된장찌개도 추가하였다.
   청양고추를 넣어서 얼큰함을 살렸다.





아이와 함께 봤던 새벽녘 풍경. 창가로 들어오는 주황빛이 참 예쁘다.




#3.

바다를 가득 담은 솥밥을 먹으며 매운맛 육아를 하는 와중에 발견한 보석 같은 순간을 떠올려 본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등 센서가 작동된 아이를 재우기 위해 섬집아기를 불렀다. 새벽 수유를 끝내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노래를 불러주는데 아이가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기 시작했다. 시선이 한참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창가였다. 아직 2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뭐가 있는지 잘 안 보일 텐데, 느낌으로 아는 건가.

나는 아이를 안고 창가 쪽으로 향했다.

어스름한 새벽녘에 주황색 빛줄기들이 들어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 아침 해가 뜨려고 하는 거야, 색이 이쁘지? 해님이 기지개를 켤 때는 늘 이렇게 따뜻한 색을 내뿜어, 네가 웃을 때랑 똑같은 색이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아이와 함께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했다. 새벽부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에 아무말대잔치였지만, 오랜만에 무언가를 느즈러지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잠깐이나마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아마 같이 보고 있는 사람이 너라서 더 그랬겠지.

그리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으로 이상한 양가적 감정이다. 몇백개의 굴을 따며 아이를 재울 때는 혼자서도 척척 잠을 자는 시기가 곱절로 빠르게 왔으면 싶다가도,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이 시간이 더디게 흘렀으면 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일텐데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 귀하디 귀하다.



아이와 함께 본 동이 틀 무렵의 창가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잠이 들기 전까지 아이에게 불러주었던 섬집아기도,

눈물 젖은 ‘김에 싸 먹은 밥’ 이후 바다를 가득 담은 ‘바지락미역솥밥’도 마찬가지이다.


매운맛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들이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또 무언가를 배우고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처음이라 여전히 실수도 많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설렘보다는 긴장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래도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는 늘 곁에서 바다를 가득 담은 섬집아기를 불러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