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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거야무새의 아침 파업(2)

: 죄송한데 서브웨이 찬스 좀 쓸게요

by 채움



남편이 수련회로 떠나 있던 2박 3일 동안 나는 처음으로 독박 육아라는 것을 해봤다.

남편이 수련회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예정에도 없던 독박 육아를 또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12화 참고)






#1.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일기예보는 흐림이라던데, 집에만 있으니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맑은지 흐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출산 후부터는 병원에 가는 날 외에 밖에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폭염을 체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의 표정이 그날의 날씨였다.

이제 막 2개월에 돌입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먹고-놀고-자고

아니면 먹고-자고-놀고

둘 중 하나일 텐데,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에 알아차리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에게 붙어서 '이거야무새'가 됐다. 지금의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아이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


- 이거야?

- 아~ 이거구나!

- 엄마가 미안해, 이거 맞아?

- 이것도 아니야? 말을 해봐 뭘 원하는데?!

- 아, 너는 말을 못 하지 미안해 미안해. 이거야?


작년 반 아이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박장대소할 일이었다.

수업 시간에 활동을 하며 "나의 니즈를 충족시켜 봐라 요 녀석들아,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를 호기롭게 외치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고 네 넵, 무엇을 원하세요 공주님~밥을 원하신다고요? 쇤네가 맛있게 분유를 말아드리겠습니다요"를 읊조리고 있었다.




#2.

밥을 먹고 모빌을 보던 아이는 얼마 안가 또 칭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부엌으로 향하던 발길을 멈췄다.

파업이다.

정말, 진짜로, 도저히 오늘 아침은 안 되겠다.


나는 곧장 배달 앱을 켰다.

이것저것 구경할 시간이 없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는, 한 입에 넣고 끝낼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모유 수유를 위해 건강에 0.5라도 도움이 되는 건강식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순간 떠오른 것은 샌드위치.

채소가 가득 들어가 빵이 터질 것 같은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주문을 넣었다.


- 이탈리안비엠티/허니오트/아메리칸치즈
- 피클 제외, 야채 다 넣고
- 레드와인식초와 후추
- 빵 속은 파주고, 할라피뇨 많이 넣어주세요


한 손으로는 물 흐르듯 주문을 넣고, 다른 손으로는 공갈젖꼭지를 찾아 아이에게 물렸다.

육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익힌 스킬들은 이럴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인가 보다.

젖꼭지를 입에 문 아이는 섬집아기와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행히 샌드위치는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나는 언제 깰지 모르는 아이의 동태를 살피며, 15cm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3.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브런치스토리에 올릴 수 있을까?


<오늘 먹은 음식과 아침 식사와의 연관성>

- 가볍게 차려먹는 아침 식사였나? - 아니오

- 따뜻함이 오고 가는 식탁이었나? - 아니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둘 다 아닌 것 같다.

가볍게 먹을 수는 있었지만, 아침 식사를 '차려서' 먹지 않았고, 따뜻함이 오고 가는 식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갑작스러운 독박 육아에 치여 살아남기 위해 고른 음식일 뿐이었다.

말하자면 노비 1이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먹은 고봉밥 같은 느낌이랄까나.


하지만 이게 뭐 어때서. 지금 이 상황에 이게 어디야.

'나만의 리듬'으로 아침을 차려먹기로 했으니, 이것도 리듬이라면 리듬이지.

나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온갖 이유를 갖다 대었다.


남은 샌드위치 조각을 씹으며 나는 착각에 빠졌다.

'지금 나는 바쁜 출근길에 잠시 브런치 타임을 가진 커리어 우먼이다.'

아기가 잠든 틈을 타 몰래 밥을 먹는 수유맘 신세가 되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피스룩을 입은 워킹맘이었다.


출근길 도로 위에서 노비2(남편)와 먹던 주먹밥은 적어도 눈칫밥은 안 먹었는데..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가 깰까 봐 쉴 새 없이 눈을 데록데록 굴리는 나를 발견하고 웃음이 터졌다.




#4.

떨어져 있는 동안 남편과 틈틈이 연락을 하며 각자 처한 상황에 대해 짤막한 브리핑을 주고 받았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밤 인사를 할때면 상대의 부재가 켜켜이 쌓여 애틋함과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연애 초에나 느꼈을법한 감정을 지금 느끼다니 신기할 노릇이었다.


이 집이 이렇게 넓었던가.

에어컨까지 키고 혼자 앉아있으려니 더 썰렁하게 느껴졌다.


좋았다면 추억, 나빴다면 경험이라는데 이 경우는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사람 하나 늘었을 뿐인데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뀐 것 같다.

하지만 바뀐 삶의 모양새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추억이면 어떻고 경험이면 어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와 함께 하는 삶인데.

버겁고,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좋다.


다만, 지금은 좀 쉬어야지. 아득바득 애쓰지 않을 권리가 나에게도 있으니.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할 한타를 위해 지금은 에너지를 응축해야 될 때이다.

곧 있으면 돌아올 노비 2와 야식이나 시켜 먹으며 떨어져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다나 떨어야겠다.


그때까지 이거야무새는 파업을 단행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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