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움 Sep 10. 2024

#12. 슈퍼 파워 무생채 비빔밥(1)

: 근데 이제 불고기를 곁들인-



남편이 2박 3일 수련회에 다녀왔다.

우리는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1.

"여보, 큰일 났어. 비상사태야! 우리 반에 수족구 환자가 생겼어"


아..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아니, 사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 2박 3일 수련회를 하는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며 코로나든 독감이든 반에 한 명씩은 생길 것임을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족구라니..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던 건데..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예상치 못한 복병의 등장이다.


현장체험학습에서 돌아와 마무리를 하고 퇴근을 하기 위해 짐을 싸던 남편은 반 학생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곧바로 나에게 연락을 주었다. 남편이 집으로 오는 동안 우리는 머리를 싸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을 했다. 다행히 남편은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잠복기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결국 남편은 시댁에 가 있기로 하고, 그동안 나는 또 한 번의 독박 육아를 하기로 하였다.


남편이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시댁에서 입을 옷가지와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수족구라니. 맘카페에서 여름 내내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그 병 아니던가! 수족구는 걸리면 입 안이나 손, 발 등에 물집이 잡히고 심한 경우 고열까지 동반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염이 되는 병이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수족구가 한번 돌면 대부분 등원을 하지 않는다는 글을 봤고, 특히나 신생아는 걸리면 수포를 잡기가 쉽지 않아 입원까지도 각오해야 된다는 글들을 읽었던 터라 무서움이 앞섰다.


다 싼 짐을 현관 앞 복도에 내놓으며 그 친구는 어쩌다가 수족구에 걸린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어떤 루트로 걸린 거지? 같이 방 썼던 애들은 괜찮은 건가? 만약에 오빠가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60일도 채 안 된 아이를 육아하고 있던지라 신경이 바늘귀처럼 날카로워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닐 테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걸린 것을 누구를 탓하랴.




#2.

오만가지 생각들이 휘발되는 가운데 남편이 도착했고,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였다. 남편은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련회로 떠나기 전, 우리는 주말 동안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웠었다. 남편이 브런치스토리에 올렸던 나의 글을 읽다가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릴을 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9화 참고), 우리는 주말 아침에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하였다. 수련회에 다녀오면 몸이 천근만근일 것 같아 반신욕 입욕제도 준비해 놓고, 주말 동안 아이를 돌보며 함께 볼 드라마도 고르고 있었다.

수련회의 마지막 날 밤, 우리는 수련회에 가기 전날의 아이들처럼 신나 있었다. 남편은 아이를 볼 생각에 들떠있었고, 나 역시 부녀의 투샷과 더불어 돌아오는 주말에 함께할 일상을 그리며 독박 육아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일까.

양철 로봇같이 삐거덕 거리는 몸으로 2~3일 더 독박 육아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3. 

정신 차리자. 이럴수록 잘 먹어야 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 밥을 먹이고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대충 무생채에 밥이나 비벼 먹을까 싶었지만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속이 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기, 그래 고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도착한 축산물 꾸러미에 있던 불고기가 생각이 났고, 무생채 비빔밥에 불고기도 함께 곁들여 먹기로 했다.

서둘러 불고기에 양념을 재웠다. 옛날 같았으면 갖은 재료를 넣고 재웠을 양념이었지만 아이가 언제 깰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는 사치에 불가했다. 대충 소불고기용 시판 소스를 때려 넣고 여기에 생강즙, 매실액, 간 마늘 등만 추가로 넣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고기가 익는 동안 나는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제주도의 바닷가를 떠올렸다.



휘몰아치는 파도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한다.

파도에 몸을 맡기기 위해선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균형 잡힌 몸과 마음은 반복되는 파도의 압력을 견디고 내 자리를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무생채 비빔밥을 목구멍에 쑤셔 넣으며 나는 비장한 아침을 맞이했다.










이전 11화 #11. 근사한 다래순 주먹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