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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움 Sep 17. 2024

#13. 이거야무새의 아침 파업(2)

: 죄송한데 서브웨이 찬스 좀 쓸게요



남편이 수련회로 떠나 있던 2박 3일 동안 나는 처음으로 독박 육아라는 것을 해봤다.

남편이 수련회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예정에도 없던 독박 육아를 또다시 시작해야만 했다.(#12화 참고)






#1.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일기예보는 구름이 잔뜩 껴 날씨가 흐릴 것이라던데, 집 안에만 있으니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맑은지 흐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출산을 한 후부터 는 병원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 밖에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폭염을 체감하지 못했다.


아이의 표정은 그날의 날씨보다 더 시시각각 변했다. 이제 막 2개월에 돌입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먹고-놀고-자고 or 먹고-자고-놀고 둘 중 하나일 텐데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에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 이거야?

 - 아~ 이거구나!

 - 엄마가 미안해, 이거 맞아?

 - 이것도 아니야? 말을 해봐 뭘 원하는데?!

 - 아, 너는 말을 못 하지 미안해 미안해 이거야?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붙어 있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이거야무새'가 되어 아이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작년 반 아이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박장대소할 일이었다. 수업 시간에 활동 수업을 하며 "나의 니즈를 충족시켜 봐라 요 녀석들아,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를 호기롭게 외치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고 네 넵, 무엇을 원하세요 공주님~밥을 원하신다고요? 쇤네가 맛있게 분유를 말아드리겠습니다요"를 연발하고 있었다.




#2.

밥을 먹고 모빌을 보며 놀던 아이는 곧 칭얼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곧장 배달 앱을 켰다.

오늘 아침은 정말, 진짜로, 도저히 부엌으로 발길이 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야무새의 아침 파업이었다.

이것저것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는, 한 입에 넣고 끝낼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모유 수유를 생각해서 건강에 0.5라도 도움이 되는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채소가 가득 들어간 샌드위치를 떠올렸다.

나는 재빨리 서브웨이에 주문을 넣었다.


- 이탈리안비엠티/허니오트/아메리칸치즈/피클 제외 야채 다 넣고/소스는 레드와인식초와 후추

- 빵 속은 파주시고 할라피뇨 많이 넣어주세요


한 손으로는 물 흐르듯 주문을 넣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공갈젖꼭지를 찾아 아이에게 물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60일이 넘었으니 타이밍 좋게 치고 빠지는 스킬은 그동안의 시행착오로 얼추 몸에 익었으리라. 공갈젖꼭지를 문 아이에게 섬집아기와 생일 축하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주었고, 이내 아이는 잠들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샌드위치는 예상시간보다 빠르게 도착하였다.

나는 언제 깰지 모르는 아이의 동태를 살피며 15cm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3.

샌드위치를 먹는 와중에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어떻게 올려야 되나 고민을 했다.


오늘 먹은 음식은 당초 목표로 했던 아침 식사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 것일까?

 -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 차리기였나? - 아니오

  - 따뜻함이 오고 가는 식탁이었나? - 아니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둘 다 아닌 것 같다. 가볍게 먹을 수는 있었지만 딱히 아침 식사를 '차려서' 먹지는 않았고, 따뜻함이 오고 가는 식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갑작스럽게 추가된 독박 육아에 치인 노비 1이 살기 위해 선택한 음식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가끔은 일탈도 한 번씩 해줘야지. 나만의 리듬으로 아침을 차려먹기로 했으니 이것도 리듬이라면 리듬이지. 나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온갖 이유를 갖다 대었다.

노비 2(라 쓰고 남편이라 읽는다)가 없어서 홀로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였지만, 바쁜 와중에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고 있자니 오피스룩을 입고 열심히 일하다가 늦은 점심을 챙겨 먹는 커리어 우먼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출근길 도로 위에서 남편과 함께 먹던 주먹밥은 적어도 눈칫밥은 안 먹었는데..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가 깰까 봐 쉴 새 없이 눈을 데록데록 굴리는 나를 발견하고 현타가 와서 웃음이 났다.




#4.

우리는 떨어져 있는 동안 틈틈이 연락을 하며 각자 처한 상황에 대해 짤막하게 브리핑을 주고 받았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마지막 밤 인사를 할때면 상대의 부재가 켜켜이 쌓여 애틋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 집이 이렇게 컸던가. 에어컨까지 키고 혼자 앉아있으려니 더 썰렁하게 느껴졌다. 연애 초에나 느꼈을법한 감정을 지금 느끼다니 신기할 노릇이었다.


좋았다면 추억, 나빴다면 경험이라던데 이 경우는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사람 한명 추가된 것 뿐인데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뀐 것 같다. 하지만 바뀐 삶의 모양새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추억이면 어떻고 경험이면 어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와 함께 하는 일상인데.


다만, 지금은 좀 쉬어야지. 아득바득 애쓰지 않을 권리가 나에게도 있으니.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할 한타를 위해 지금은 에너지를 응축해야 될 때이다. 곧 있으면 돌아올 노비 2랑 야식이나 시켜 먹으면서 떨어져있는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수다나 떨어야겠다.

그때까지 이거야무새는 파업을 단행하는걸로!





*이 이야기는 12화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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