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섬집아기.
등센서가 작동하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섬집아기'를 불렀던가.
노래 속 아이는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든다'는데, 우리 집 아이는 언제쯤 잠을 잘 수 있을지.
얼마 전, 아이가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맞은 후부터 육아의 강도가 확 바뀌었다. 매운맛 육아였다.
예방접종 과정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이는 양쪽 허벅지에 주사를 두 방이나 맞았지만, 빽-하고 잠시 울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의연하게 진료실 문을 나섰기 때문이다.
병원이 떠내려갈 정도로 오열을 하던 첫 접종날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스머프 반바지만 했던 녀석이 한 달 사이에 이만큼 컸나 싶어서 그저 대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집에서 벌어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접종열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축 늘어진 아이는 하루 종일 끙끙 앓기 시작했다. 생애 첫 접종열에 아이는 잽을 맞은 권투 선수처럼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주사를 맞고 병원문을 나선 아이였지만, 완벽한 KO패였다.
돌이켜 보건대, 아마 그날이 시발점이지 않았을까.
힘 없이 늘어져 안겨있는 아이를 보니, 아플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열은 떨어졌고 평상시 모습으로 되돌아왔지만, 그 일이 있은 후 80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이는 내 품 안에서만 자는 중이다.
아이는 본래 누워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맘카페에서 고민 키워드 탑티어에 들어간다는 '등센서 작동'은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려놓으면 조용했고, 오히려 안으면 몸을 뒤척이며 발버둥을 쳤다.
산후조리 선생님께서도 “도와줄 것이 거의 없다”라고, 오히려 미안해하셨었다.
그랬던 아이가 바뀌었다.
이제는 내려놓기가 무섭게 울어대는 통에 집안일은커녕 밥 한 숟갈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은 누워 자야 제맛인데 왜 눕지를 못하니.”
입면 시간이 늦어지고, 그만큼 안는 시간도 늘어나서 그야말로 매운맛 육아의 시작이었다.
산후풍 때문인지 무릎 통증이 심해져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버거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눕기 싫다고 끊임없이 울고, 어르고 달래 소파에 앉으면 흔들림 때문인지 더 짜증을 부렸다.
아이의 울음이 늘어날수록, 내 밥의 크기는 점점 줄어만 갔다.
어떤 날은 컵라면,
어떤 날은 김 한 장에 밥 한 숟갈.
그마저도 그것이 그날의 첫 끼이자 마지막이 되기 일쑤였다.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 먹을 수 있는 날은, 남편이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뿐이었다.
주말을 코앞에 둔 금요일,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지락살을 주문했다.
바지락칼국수? 전? 봉골레? 여러 메뉴가 스쳤지만, 나에게 힘을 실어줄 건강한 밥상이 필요했다.
“바지락 솥밥”. 이거 하나면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쫄깃한 바지락에 오돌토돌한 미역줄기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 아닐까.
이날의 아침 밥상은 그야말로 ‘바다’다.
<바지락미역솥밥>
*밥
- 팬에 미역줄기볶음과 진간장, 다진 마늘을 살짝 넣고 볶다가 불린 쌀을 함께 넣어 볶고 밥을 안친다.
(이때 볶는 과정에서 추가 양념은 하지 않고 추후 양념장만 만들면 된다.)
- 밥이 완성되면 미림과 후추를 넣고 헹구었던 바지락살을 투하, 5-10분 정도 뜸을 들인다.
*양념장
- 진간장(맛간장도 조금 섞음), 고춧가루, 매실액, 깨, 청양고추, 양파를 넣어 섞는다.
**여기에 모처럼 바지락살과 간 새우 등을 넣은 된장찌개도 추가하였다.
청양고추를 넣어서 얼큰함을 살렸다.
바다를 가득 담은 솥밥을 먹고, 매운맛 육아를 하는 와중에도 보석 같은 순간을 떠올려 본다.
그날도 어김없이 등 센서가 작동된 아이를 재우기 위해 섬집아기를 불렀다.
새벽 수유를 끝내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노래를 불러주는데, 아이의 시선이 유독 오래 한 곳에 머물렀다. 바로, 창가였다.
아직 2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잘 안 보일 텐데.. 느낌으로 아는 건가.
나는 아이를 안고 창가로 향했다.
어스름한 새벽녘, 창문 틈 사이로 주황빛 햇살이 조용히 들어왔다.
- 아침 해가 뜨려고 하는 거야, 색 예쁘지? 해님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엔 항상 이렇게 따뜻한 색을 내뿜어, 네가 웃을 때랑 비슷한 색이야.
뭐가 들릴 리도, 무슨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아이와 함께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했다.
새벽부터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에 아무말대잔치였만, 새벽의 정적과 내 품 안에 있는 아이, 그리고 빛의 탄생을 느즈러지게 볼 수 있다는 것에 잠깐이나마 행복감을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속에 윤슬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몇백 개의 굴을 따며 아이를 재울 때는 힘겹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와 함께 본 창가의 새벽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눈물 젖은 ‘김에 싸 먹은 밥’도,
따뜻한 ‘바지락미역솥밥’도,
잠들기 전 불러준 수십 번의 ‘섬집 아기’도
마찬가지이다.
엄마는 처음이라 여전히 실수도 많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은 설렘보다 긴장과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도 아이가 혼자서 잠들기 전까지는 언제나 곁에서 바다를 가득 담은 섬집아기를 불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