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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움 Aug 27. 2024

#10. 마음 근육과 토마토 주스



#1.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수박, 가을에는 사과와 배, 겨울에는 귤 등 제철 과일이 넘쳐나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일쑤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니 돈을 주고 과일을 사 먹는 것이 여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존본능보다 귀차니즘이 삶을 잠식해 냉장고에 손이 가질 않았고, 2인 가구라 바구니 채로 파는 그 많은 과일들을 다 먹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붙어있을 때 과일 좀 많이 먹는 건데..)

어쩌다 큰 마음먹고 과일을 사다 놓아도 일주일이 지나면 한쪽 귀퉁이가 물러져 있거나 시간이 지나 화석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트에 가도 과일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으며, 손이 큰 부모님께서 과일이라도 한 박스씩 사서 보내주시는 날에는 온 집안 식구가(그래봤자 둘이지만) 머리를 맞대고 과일 처리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모든 과일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토마토'이다.

여름 제철 음식으로 등장하는 토마토는 우리 집 아침 단골손님으로, 무더운 여름을 깨울 수 있는 비밀병기이기도 하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대개 꿀과 얼음을 넣고 물을 조금 넣어서 갈아 마시는데, 요즘은 여기에 복숭아나 자두 등을 추가하여 마신다.




#2.

토마토와 블루베리를 섞어서 만든 아침 주스



토마토에는 라이코펜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항산화 효과가 있다. 또한 고혈압을 예방하고 항균 작용을 한다고 한다. 피부 노화 방지에도,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토마토는 채소계의 어벤저스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 내가 토마토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붉은색' 때문이다.

토마토의 붉은색은 '자연' 하며 떠오르는 푸릇함과 더불어 뜨거운 여름의 생기를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박스째 들어온 토마토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 집 토마토주스는 대개 이런 날 만들어 먹게 된다.


 - 전날의 사투로 몸이 무거운 아침

 - 파이팅이 넘치는 아침(+1의 생기를 더하고 싶을 때)

 - 위안과 사랑이 특별히 '더' 필요한 아침





#3.

조리원에 있을 때 남편이 만들어다 준 토마토주스 덕분에 힘이 났다.



특히나 세 번째 아침(위안과 사랑이 특별히 '더' 필요한 경우)은 일상 속에 자잘하게 펼쳐져 있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맡은 업무가 제대로 안 풀리거나 내가 생각했던 대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 아이들과의 티키타카가 잘 안됐거나 그도 아니면 나와 남편과의 냉전 상태로 관계 개선이 시급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마지막은 비상사태로 봐도 무방하다)

아무리 괜찮은 척해 봐도 전날 저녁부터 죽상을 하고 얼굴에 '나 건드리지 마시오'가 붙어있기 때문에 말투 하나, 행동 하나에 신중함을 기려야 한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토마토를 찾게 된다.


건강함, 생기로움, 자연 그 자체, 사랑 등 '붉은 끼'가 주는 토마토의 이미지 덕분일까.

힘이 빠지고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운 아침에 토마토를 차갑게 갈아서 한 잔씩 마시고 나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토닥이게 된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토마토 주스를 단숨에 들이키며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과, 묵혔던 걱정과 짜증이 한꺼번에 내려갔으면 하는 마음이 합쳐져 마음 근육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시원한 토마토주스가 아침 메뉴로 나오는 날이면 늘 그랬듯 서로의 건강과 안위를 묻고, 일상을 살피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무더운 여름, 어느새 토마토는 우리 집 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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