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음악처럼 틀어놓는 영화들이 있다.
밥을 먹으며, 빨래를 개며, 청소를 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숨 쉬듯 자연스럽게 틀어놓았던 이 영화들은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질리게 봤지만 언제 봐도 새롭다.
"아메리칸 셰프"도 그중 하나이다.
<아메리칸셰프>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열정 넘치는 요리사지만 가정에는 소홀한 아빠이다. 그는 유명 음식평론가의 혹평을 받고 썰전을 펼치다가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허름한 푸드트럭을 끌며 아들과 함께 '쿠바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전형적인 로드 뮤비의 형식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는 주인공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유일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다. 주방의 불 앞에 선 그는 어떤 문제가 닥쳐도 ‘요리’로 답을 찾는다.
요리를 하기 위해 불 앞에 서는 과정에서 관계는 조금씩 회복되고, 주인공은 성장한다.
덧붙여 중간중간 등장하는 라틴 음악은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리드미컬하게 합쳐져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데 한몫을 하였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여러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의기투합하여 '쿠바 샌드위치'를 만드는 장면이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고기를 손질하고 양념에 재워 구운 후, 노릇한 빵 위에 올린다. 그 위에 치즈와 피클, 머스터드소스를 올리고, 겉면에 버터를 바른 뒤 불판에 눌러 굽는다. 치즈가 녹고 빵이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납작해진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와그작-' 소리가 나면 게임 끝이다.
뜨거운 샌드위치를 3등분 하여 세 사람이 나눠 먹으며 "걸작"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언제 봐도 도파민 자극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샌드위치는 불을 쓰지 않고, 차가운 재료를 끼워 넣는 '콜드 샌드위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핫 샌드위치'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와 빵으로 만든 음식의 열기 탓도 있겠지만, 앞만 보고 달리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아빠가 다시 가족을 바라보며 요리로 마음을 전하는 그 ‘뜨거움’이 느껴진 탓도 있으리라.
비록 쿠바 샌드위치의 뜨거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의 아침 밥상에도 '핫 샌드위치'가 존재한다.
햄, 치즈, 달걀을 넣은 햄에그샌드위치는 정신없이 바쁜 아침 밥상에 주먹밥만큼이나 자주 올라오는 음식 중 하나이다.
간편식이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만들지는 않는다.
내용물이나 소스에 따라 풍미나 식감이 달라지는 탓에, 어울리는 햄이나 소스 레시피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러 돌아다닌다.
요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나 부자지간의 깊은 정을 담을 순 없지만, 아침마다 전쟁터로 향하는 남편에게만큼은 이 샌드위치가 뜨거운 애정 표현이다.
아직은 장비가 부족해도 괜찮다. 그 안에 뜨거운 마음만 있으면, 이 샌드위치는 충분히 ‘핫’하다.
기회가 되면 나도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어보고 싶다.
영화 속에서 전해지던 그 뜨거움처럼, 조금은 어설프고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남편한테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전에 파니니 그릴을 꼭 장만해야겠다! 요리는 결국 장비빨이니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