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뜸 들인 밥도 맛있어요.
"백미 쾌속.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바쁘고 정신없는 아침, 오늘도 나는 '백미 쾌속'의 버프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 인생도 백미 쾌속이었다면 어땠을까. 취사 버튼을 누르며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혹은 20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친구 관계의 서툶, 시험의 압박감, 진로 선택의 어려움 등이 때때로 아이들의 발목을 잡았고, 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 그네들의 속마음이었다. 지금이야 열거한 내용들이 밤잠을 설칠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나 역시 아이들과 비슷한 상황들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밤을 뜬눈으로 보냈기에 상담 과정에서 영혼 리스된 리액션을 선보일 수는 없었다.
나의 20대는 불안의 연속, 삽질로 인한 환장대잔치, 성실과 상실 어딘가 등의 표현으로 함축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는 패기와 열정이 있으니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순수함과, 그 못지않게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현실이 공존했다. 나는 백미 쾌속을 누르면 20분 만에 따끈한 밥이 지어지는 쿠쿠 같은 인생을 원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들과 나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백미 쾌속을 부르던 쿠쿠 밥솥의 밥이 늘 찰지고 맛있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20대는 보이지 않는 결과물을 위해 '최종_최최종_최최종(진짜)_최최종(진짜)(이게 진짜). txt'로 향하는 지옥의 기획안 같았다.
앞뒤 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달리던 20대의 삶이 마냥 가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기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초라함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나날이 부족했고 종국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과물을 얻기 위해 빠른 속도만을 고집하느라 정작 무엇이 좋고 중요한지 생각할 틈이 없었고,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 30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만 간절했다.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흔들리는 20대의 눈에는 30대의 삶이 안정적이었고 전문적이었으며,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쿠쿠의 도움을 받아 인생도 쾌속으로 바뀌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30대 중반이 된 나를 돌아보니 20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어른인 척하는 어른이가 되어 아파트 시세와 자동차, 육아 정보 등 좋은 정보들을 찾기 위해 유령처럼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은 똑같았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복도 뛰어다니지 마라, 급식 먹을 만큼만 받아라, 칠판에 낙서하지 마라' 등 고요 속의 외침을 하는 것과 가끔은 교무실에서 아이들과 초코파이 하나를 두고 네가 먹을래 내가 먹을까라며 옥신각신하는 철딱서니 없는 모습까지 추가되었다.
다만 30대의 삶이 20대보다 0.5라도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느 정도 눈에 보이고, 휘청거리는 인생일지라도 나의 바운더리 내에서 삶을 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맛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백미 쾌속보다는 뜸 들이기에 집중하고 싶다. 아니면 옥수수든 감자든 버섯이든 밥 안에 같이 넣어 먹을 수 있는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이라면 더욱 좋겠지. 나만의 속도로 흘러가는 지금의 30대가 참 좋다. 좋아지기 시작한 것들이 눈에 보이고,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오래 눈에 담아두려고 한다.
삶을 사는 데 있어 백미 쾌속의 버프는 가끔씩만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