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운 Aug 06. 2024

#7.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는다고?

: 어느 30대 파워J의 인생 난이도 극상 체험기

아침부터 '자의'로 냉삼을 뿌셨다.



"와.. 오빠 그거 알아? 오빠 만나면서 참 별거 다해본다. 아침부터 삼겹살이라니"

"아침에 삼겹살 안 먹어봤어? 이거 한번 맛 들이면 장난 아닌데~"


그렇다. 나는 아침부터 장난 아닌 일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프라이팬에 굽고 있는 것은 계란 프라이도, 비엔나소시지도 아니다.



무려 삼겹살이다.







#1.

진짜 배가 고팠다.

이제 막 한달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육아의 고충으로 마음이 허해진 것도 아니고, 따뜻한 위로와 사랑이 고팠던 것도 아니다. 그냥 허기가 졌다.


전날 몇 시에 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수유를 했고, 이런 날들이 일주일 넘게 반복되다 보니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대화 과정에 지장이 온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단어가 생각 나지 않고 문장 조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말하는 중간중간 휴지가 생겼고, 나이 먹고 육아하려니까 인생 빡세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날도 어김없이 남편과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삼겹살 랩소디'를 곁들인.

불판 위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이 클로즈업되는 화면을 보다가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고기를 구워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오랜만에 냉삼을 먹기로 의견이 좁혀졌다. 구매 당시만 해도 '내일 맛있게 구워 먹자!'는 말과 함께 육아 전선에 참여한 전우를 다독였고, 이 문장 안에는 점심(늦으면 저녁)이라는 암묵적인 시간이 붙어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일과 수유를 끝내고 나니 1차 체력은 그새 동이 났음을 직감했다. 방전 상태인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불현듯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냉삼. 그래, 냉삼을 뿌시자.

그렇게 나는 전날 육아로 뻗어버린 나의 전우를 깨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2.

얼마 전 파워 J의 아침 식단 구성과 관련한 글을 올리기가 무색할 정도로 즉흥적인 아침이었다.

특히나 아침 메뉴 선정에 있어 삼겹살이라니..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아침상을 차리며 지나간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중학교 때 아침으로 삼겹살을 먹고 왔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내게는 별나라 이야기구나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눈 떠보니 지금 내가 그 별나라에 와 있었다. 

더 나아가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가 놀라 자빠지시겠지, 하지만 난 사회에 찌든 멋진 어른이니까 괜찮아라는 마인드를 장착한 채 일탈에서 오는 묘한 희열까지 느끼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아침에 구워 먹었던 냉삼은 정말 짜릿했다.

아침부터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인정사정없이 구워지던 삼겹살은, 육아를 하며 인생 난이도가 극상으로 치솟던 우리의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한 음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불판에 올려서 바로 집어먹는 삼겹살집 특유의 낭만은 없었지만 자고 있는 아기가 깰까 봐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는 뜨거운 삼겹살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 육아라는 전쟁을 치르며 즐길 있는 진정한 어른의 맛이랄까나. 


아침 삼겹살이 가져다준 위안 덕분에 나의 육아 라이프는 어제보다 조금 더 풍요롭고 뜨거워졌다. 뜨거운 여름, 육아라는 전쟁을 치르며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의 맛이랄까나. 

아침 삼겹살은 당분간 자주 만나는 손님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전 06화 #6. 계란말이의 속사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