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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계란말이의 속사정

by 채움



올해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임신과 출산'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약 10개월 동안 한 집에서 함께 지냈던 그 손님은 얼마 전 방을 뺐다.

손님이 떠나면 앞자리가 바뀐 몸무게, 얼마 걷지 않아 숨이 찼던 저질 체력, 뒤죽박죽이던 몸상태도 함께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시시각각 널 뛰는 '호르몬'과, '엄마'라는 두 글자의 무게가 소리 없이 나를 덮쳤다.






#1.

입덧이 심했던 임신 기간 내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그 탓에 나와 아이의 몸무게는 크게 늘지 않았다.

아기는 또래보다 작게 태어났고, 나는 미안한 마음에 그간 해주지 못한 만큼 더 건강하게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제일 먼저 사수해야 될 것은 '모유수유'.

그러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적은 양의 모유 때문에 조리원에 있는 내내 생각지도 못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다. 젖병 가득 100ml가 넘는 모유를 담아 으쓱거리며 들어오는 산모들 틈에서, 나는 고작 20ml도 채 되지 않는 젖병을 들고 쭈구리마냥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다.


수유콜은 또 어찌나 자주 오던지.. 눈 한번 깜빡할 새도 없이 울리던 수유콜에 버선발로 뛰쳐나가곤 했지만, 돌아오면 늘 아기가 울거나, 내가 울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날 새벽도 그랬다. 유축을 마치고 모유량을 확인했는데, 채 30ml도 되지 않았다. 허탈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하루를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기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무력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2.

"괜찮아~ 처음부터 많이 나오는 사람 거의 없어. 아기한테 물리면서 양을 늘려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 그리고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요새 분유 잘 나와.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그래도 너무 미안해. 임신 때도 제대로 못 챙겼고, 작게 태어났잖아..내가 제대로 해주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런 걸로 미안해하지 마. 앞으로 키우면서 미안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스트레스 받으면 아기도 다 느껴!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신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받은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조리원이 떠내려 갈 정도로 울며불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엄마와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생경하면서도, 결국 이 모든 걸 털어놓을 사람이 엄마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도 감사했다.




#3.

오빠가 만든 계란말이로 위로 받던 날.



조리원에서 퇴소 후, 본격적인 육아전선에 뛰어들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아졌다.


혼자 깨어 있는 새벽이면, 당시에는 유야무야 지나쳤던 기억들이 또렷해진다.

별 생각 없이 먹었던 음식, 스쳐간 말, 어릴 적 장면들까지 하나 둘 떠오른다.


어제가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새벽수유를 끝내고 아기를 재우는데, 어찌나 엄마표 계란말이가 먹고 싶던지..

어린 시절, 우리 집의 계란말이는 늘 '김계란말이'였다. 노란 계란 사이사이 까맣게 줄이 들어간 단출한 김계란말이. 맛도 모양도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그 투박함과 담백함이 좋아 간식으로도 자주 만들어먹었다.

어쩌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김계란말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김계란말이는 엄마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기름 두른 팬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계란 위에 김 한 장을 '턱-!' 올려서 말기만 하면 되는 단출한 요리.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는 늘 엄마의 손길이 담겨 있었다.

담담하게 넘어가던 순간들 속에서, 엄마는 스스로를 얼마나 어르고 달래며 견뎌 왔을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어쩌면 엄마도 한때는, 파프리카나 당근이 곱게 들어간 알록달록한 계란말이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세상의 모든 일이 '별일'처럼 느껴지는 초보 엄마다.

엄마가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일들은 너무 많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여전히 서툴고 불안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앞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없이 많은 김계란말이를 만들겠지.

저 작은 쿠션 위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위해.

그리고 그 계란말이들을 거듭하면서 나도 조금씩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눈감고도 김계란말이를 만들 때쯤이면, 나도 나만의 '엄마'가 되어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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