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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운 Jul 23. 2024

#5. 달리는 차 안에서 호기를 부려보겠습니다.

: 아침 식사 준비하기(part2)_ 치열하게, 뜨겁게



지금은 임신을 하고 학교를 쉬고 있어 아침을 차리는 것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아침상, 그것은 정말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었다.

(*7/23일 기준, 현재는 출산을 하고 집에서 육아전에 뛰어들었습니다.)






#1.

결혼을 하고 살림을 합치며 본격적인 2학기가 시작되었다.

결혼 전까지 나는 버스로, 남편은 자차를 이용해 각자 출근을 했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신혼집에서 내가 다니는 학교까지 꽤 먼 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신혼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버스가 많이 없기도 했고, 차를 몰자니 장롱면허라 운전대만 잡으면 사시나무 떨 듯했기에 2학기 첫날부터 남편은 매일 아침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자기 학교로 떠났다. 약 6개월 넘게.

(지역까지 달라서 5분이라도 늦게 출발하는 날에는 공포의 출근 시간을 맛보아야 했다)

남편이 생판 모르는 학교에 출퇴근 도장을 찍는 동안 나는 우리가 먹을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상이라기보다는 '전투식량'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 듯한데, 그 기간 동안 부엌 식탁에서 여유를 부릴 때 보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밥을 먹었던 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6개월 간 우리의 아침 일상>

아침 기상(먼저 일어나서 씻고 학교 갈 준비 시작) > 학교 가기 싫다(칭얼거리기 서른마흔다섯번) > 하지만 가야 돼, 우린 어른이잖아(재차 반복) > 급식 메뉴 최종 확인 및 도시락 준비(남편 학교 갈 준비 시작) > 남편 준비가 끝나면 바톤 터치해서 마무리 > 차 타고 이동하면서 각 학교 일정 및 행사 보고+도시락 까먹기 > 아내 학교 도착 > 남편은 다시 자기 학교로 출발.


우리의 아침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신선한 샐러드, 갓 구운 토스트와 함께 따끈따끈하고 여유로운 신혼 라이프 즐기기(x)

→ 토스트 입에 물고 한 손에는 얼음 가득 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들고 차에 올라타기(O)

가 더 정확한 묘사일 것 같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아침이었다.





#2.

한동안은 아침을 포기하고 잠을 더 잘까 싶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는 한번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드는 편이었고, 잠투정까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아침밥 먹인답시고 깨우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들을 하기에는 두 사람 모두 아침식사에 대한 내성이 생긴 데다가, 학교 업무상 오전이 더 정신없이 지나감을 알기에 아침을 먹고 가지 않는 날에는 곱절로 허기가 졌다. 무엇보다 약 6개월간 달리는 차 안에서의 아침식사는 매일 아침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남편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주차된 차 안에서 볶음밥을 입에 넣거나 달리는 차 안에서 주먹밥을 털어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앵꼬가 난 차에 주유를 하는 것처럼 차가 신호에 걸릴 때마다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었고, 운전을 하는 남편에게 주먹밥을 먹여주거나(욱여넣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샌드위치 포장을 까서 건네주곤 했다.



남은 김밥으로 만든 김밥전은 우리의 최애 메뉴 중 하나, 스누피 도시락은 지금도 종종 잘 쓰고 있다.







#3.



지난 6개월, 전쟁 같은 아침을 보냈지만 지금도 가끔 우리는 그때를 떠올리며 웃는다.

혹시 그때로 돌아가면, 아니 비슷한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그때도 해볼래?라는 물음에 남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답변을 내놓을 것 같다.

일어나기도 힘든 아침, 게다가 중간에 임신으로 입덧이 심해져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아침에 어떻게 이런 일정을 소화했나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돌이켜보면 즐겁고 애틋한 기억이 조금 더 많기 때문이다.


자칫 스트레스로 가득 찬 아침이 될 뻔한 기간 동안 우리는 아침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주먹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좋아하는 노래들을 흥얼거렸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거나 고민거리들을 털어놓으며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이것들은 모두 슈퍼마리오의 동전처럼 쌓이고 쌓여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제 막 신혼생활을 즐기는 부부에게 끈끈한 부부애가 무엇인지를 짧고 굵게 알려주었다.


지금은 시간적,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국(찌개)과 반찬이 있는 아침 식탁을 차릴 수 있지만, 아마 달리는 차 안에서 먹던 짜릿한 아침식사의 맛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도로 위에서 치열하고 뜨거운 아침을 보내며 우리는 이렇게 부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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