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 아침 밥상과 재즈, 그리고 "뭐 어때용"

: 나만의 리듬으로 아침을 차린다는 것.

by 채움



am 6:40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어김없이 눈이 떠지는 시간.

아침 준비를 위해 어기적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듣고 싶은 재즈 플리를 찾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배경음일지 몰라도, 나에게 재즈는 아침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작은 시동 버튼이다.






#1.

처음부터 재즈를 즐겨 들었던 것은 아니다.

집중이 필요할 땐 '연꽃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은 자연음이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주제별 플리를 골라서 틀곤 했다.

그랬던 내가 재즈에 빠져든 건, 그 예측 불가능한 재즈 멜로디의 전개와 자연스러운 흐름 때문이었다.


매번 달라지는 흐름, 단정하지 않은 리듬, 자유롭게 흘러가는 멜로디 등 아침마다 자동반사적으로 틀게 된 재즈 선율에서 나도 모르게 위안을 얻고 있었던 걸까.

지난 6개월간의 아침은 늘 숨 가쁘고, 빡빡했으니까. 임신한 몸으로 학교를 다니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고, 그 시작점인 아침은 늘 전쟁 같았다.


재즈는 참 희한한 음악이다.

각자 하고 싶은 소리를 내는데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룬다.

연주 과정에서 설령 튕겨져 나가는 악기가 있더라도 "뭐 어때용~ 재즌데~" 하며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계획을 나노 단위로 세우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해봐야 마음이 놓이는 파워 J에게 재즈의 "뭐 어때용~" 정신은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

파워 J, 게다가 임신 중이던 그 시기의 나에게 아침 식단 구성은 늘 산 넘어 산이다.


- 이번 달 제철 재료를 사용하였는가

- 이번 주 아침은 급식 메뉴와 겹치는 것이 없는가

- 해당 음식에 재료가 냉장고에 충분히 있는가

- 혹시 없다면 대체 재료로 컨트롤 가능한가

- 재료와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 지금의 내 상태에 도움이 될 만한 재료가 있는가


주 단위 식단을 짜기 위해서는 항상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다.

그런데도 일요일 저녁만 되면,

'쓰읍.. 이보다 더 베스트 조합이 있지 않을까'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성격상 잘하고 싶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계획대로 된 식단+맛있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한 날의 아침은 늘 찝찝했다.

왜 나는 사서 고생인가. 고생이 취미인가. 자아성찰을 하다가도, 이 모든 건 결혼과 동시에 다짐했던 "아침상은 내가 꼭 책임질 거야"라는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쉽게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생각이 바뀌었다.

아침 밥상이 조금 부족하다고 나의 하루를 찝찝한 기분으로 보내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아침식탁은 '맛있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가볍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아침 밥상, 거기에 따뜻함이 오고 가는 식탁이면 충분하였다.

(물론 그 와중에 맛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리하여 나는 선언했다.

메인 음식이랑 반찬이랑 조화가 안되면 어때용~
제철 재료 사용 안 하면 어때용~
냉장고에 재료가 없으면 어때용~


아침 식탁에도 재즈의 느낌이 필요했다.




#3.

미슐랭 셰프처럼 완벽한 식재료로 최고의 음식 합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나만의 방식과 리듬으로 아침 밥상을 차리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기가 막힌 황금 레시피를 발견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요리왕 비룡이 울고 갈 마스터피스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이 번개 그림의 뒷배경과 함께 "미미(美味)!"를 외치는 순간도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그날까지 나의 아침 밥상에는 늘 재즈가 흐를 것이다.



뭐 좀 얼렁뚱땅하면 어때용,

아침 밥상에 정답은 없는 거잖아용~





keyword
이전 03화#3. 이번 달 급식 식단표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