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운 Jul 30. 2024

#6. 계란말이의 속사정



올해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단언컨대 임신과 출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 10개월 동안 한 집에서 같이 살았던 그 손님은 얼마 전 방을 뺐다. 손님이 방을 빼면 앞자리가 바뀌어버린 몸무게, 얼마 걷지 않아 헉헉 거리는 증상, 저질 체력 등도 한번에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시시각각 널을 뛰는 '호르몬'과 '엄마'라는 단어의 중압감이 소리소문 없이 찾아왔다.






#1.

임신 과정에서 입덧으로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그 때문에 내 몸무게도, 뱃속의 아이 몸무게도 크게 늘지를 않았다. 아기는 또래보다 작게 태어난 편이었고, 나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간 못해준 만큼 더 건강하게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다짐이 무색할 만큼 조리원에 들어가 있던 기간 동안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모유수유에 대한 꿈을 키웠는데 생각보다 모유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3시간에 한 번씩 울리는 수유콜에 버선발로 뛰쳐나갔지만 방으로 들어오면 늘 아기가 울거나 내가 울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수유콜을 받고 유축을 끝낸 후였다. 채 30ml도 나오지 않는 모유를 보며 현타가 왔고, 이대로는 도저히 하루를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기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2.

"괜찮아~ 처음부터 모유가 많이 나오기도 힘들고, 아기한테 물리면서 양을 늘려야 되는데 그게 쉽지는 않아. 그리고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요새 분유 진짜 잘 나오니까 그런 걸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그래도 못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가뜩이나 임식 과정에서 몸무게도 안 늘었고, 태어날 때도 작게 태어났는데.."

"이런 걸로 미안해하지 마. 앞으로 애 커가면서 미안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애기도 영향받게 돼,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신호음이 끝나기도 전에 받은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고, 조리원이 떠내려 갈 정도로 울며불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엄마와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이런 상황이 생경하게 다가왔고, 전화를 걸어 자문과 위로를 받을 사람이 엄마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도 감사했다.




#3.

오빠가 만든 계란말이로 위로 받던 날.



조리원에서 퇴소 후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육아전선에 뛰어드니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육아를 하다 보니 낮이고 밤이고 혼자 눈 떠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당시에는 유야무야 지나쳤던 일들이나 별 생각 없이 먹었던 음식들도 새벽의 고요 속에서는 명징하게 떠오른다.


어제가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새벽수유를 끝내고 아기를 재우는데 어찌나 엄마표 계란말이가 먹고 싶던지.. 어린 시절 엄마의 계란말이는 늘 '김계란말이'였다. 노란 계란 사이사이에 까맣게 줄이 들어간 김계란말이는 맛도 모양도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 투박함과 담백함이 좋아 간식으로도 자주 만들어주셨다. 어쩌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김계란말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계란 위에 김 한 장을 '턱-!' 올려서 말기만 하면 되는 김계란말이는, 막상 일이 터졌을 때 별일 아니라는 듯 툭툭 해결해 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스스로 어르고 달랬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어쩌면 속에 당근이나 파프리카 등이 들어간 알록달록 예쁜 계란말이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계란말이를 눈감고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나도 엄마의 세월에 다다를 수 있을까. 아직은 세상사 모든 일들이 별일처럼 느껴지는 나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엄마가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일들은 너무 많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여전히 서툴고 불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나 역시 저 작은 쿠션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무해한 생명체를 위해 수많은 김계란말이를 만들고 있겠지. 나의 엄마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는 동안 조금 더 단단하고 강해진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전 05화 #5. 달리는 차 안에서 호기를 부려보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