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샌드위치의 뜨거움에 대하여

아메리칸 셰프 - Google Play 영화

별생각 없이 음악처럼 틀어놓는 영화가 몇 개 있다. 밥을 먹으며, 빨래를 개며, 청소를 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숨 쉬듯 자연스럽게 틀어놓았던 이 영화들은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질리게 봤지만 언제 봐도 새롭다. "아메리칸 셰프"도 그중 하나이다.

<아메리칸셰프>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열정 넘치는 요리사지만 가정에는 소홀한 아빠이다. 그는 유명 음식평론가의 혹평을 받고 썰전을 펼치다가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허름한 푸드트럭을 끌며 아들과 함께 '쿠바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되는 전형적인 로드 뮤비의 형식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무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는 주인공이 제일 사랑하는 영역이자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그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와 걱정들을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덧붙여 중간중간 등장하는 라틴 음악은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리드미컬하게 합쳐져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데 한몫을 하였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여러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의기투합하여 '쿠바 샌드위치'를 만드는 장면은 머릿속에 자동 재생이 될 정도로 인상적이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고기를 고르고 정성을 쏟아 양념에 재워 구운 후, 빵에 올린다. 그 위에 치즈와 피클을 올리고, 머스터드 소스를 듬뿍 펴 바른 후 빵 겉면에 버터를 발라 불판 위에 다시 굽는다. 빵이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치즈가 녹아내릴 때까지. 납작해진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와그작-' 소리가 나면 게임 끝이다. 뜨거운 샌드위치를 3등분 하여 세 사람(칼 캐스퍼, 마틴, 퍼시)이 나눠 먹으며 "걸작"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언제 봐도 도파민 자극이다.

샌드위치는 불을 쓰지 않고 재료를 넣어서 만들어 먹는 '콜드 샌드위치'가 익숙하지만, 영화를 본 후 '핫 샌드위치'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와 빵의 뜨거움도 있었겠지만, 앞만 보고 달리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못난 아빠가 그만의 방식으로 요리와 가정에 뜨거운 애정공세를 펼친 탓도 있었으리라.

나름 핫 샌드위치의 구성을 갖춘 햄에그샌드위치

영화 속 쿠바 샌드위치의 뜨거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름 '핫 샌드위치'의 구성을 갖춘 햄에그샌드위치는 정신없이 바쁜 아침 밥상에 주먹밥만큼이나 자주 올라오는 음식 중 하나이다. 간편 대용식으로 자주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내용물이나 소스에 따라 풍미나 식감이 달라지는 탓에 즐겨 찾는 메뉴 중 하나가 되었다. 요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나 부자지간의 뜨거운 정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아침마다 전쟁터로 향하는 남편을 위한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맛있는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도 뜨거운 샌드위치를 만드는 데 도전해 봐야겠다. (오빠한테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전에 파니니 그릴을 꼭 장만해야겠다! 요리는 장비빨인걸^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