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있는 간계밥 인생을 위하여-
간장계란밥(이하 간계밥)은 불을 쓰는 요리 중 가장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재료 손질 등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우리 집 아침 밥상 단골 메뉴 중 하나이다.
뜨끈한 밥에 노릇노릇한 반숙을 올리고 그 위에 참기름과 간장을 한 바퀴씩 돌려서 비벼 먹는 요리. 그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임에도 '맛있음'을 보여주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1. 밥의 적당한 찰기
2. 완숙과 반숙 그 어딘가의 경계에 위치한 노른자
3. 기가 막히게 맛있는 참기름
이 세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고소하고 담백한, '맛있는' 간계밥이 완성된다.
3번이야 산 넘고 물 건너 찾은 참기름으로 해결할 수 있다지만, 1,2번은 숱한 실패를 벗 삼아야 가능하다.
먼저 밥을 찰지게 짓는 것부터 난관이다. 영혼의 동반자 쿠쿠 찬스가 있다고 하지만 물 양 때문인지 어떤 날은 고두밥이 되고 또 어떤 날은 죽밥이 된다. 고추장에 고추만 찍어먹을지라도 밥만 맛있으면 망고땡이라는 것을, 밥이 잘 지어진 날에는 엄마가 왜 그리 좋아하셨는지를 신혼 생활 2개월 차에 알아버렸다.
계란도 마찬가지. 이븐 하게 익은 노른자를 밥 위에 올리고 싶지만 시간 계산 실패로 퍽퍽한 완숙이 될 때가 허다하다. 마음이 급해져 프라이팬에서 빨리 꺼내기라도 하는 날이면 콧물처럼 늘어지는 흰자 때문에 밥을 비비기도 전에 수저를 내려놓고 싶은 때가 발생한다.
휘뚜루마뚜루 만들 수 있어 쉬워 보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해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계밥.
기본에 충실하지 않다면 퍽퍽하거나 혹은 떡이 된 간계밥으로 대충 허기를 때우기 십상이다.
요즘 우리도 간계밥 같다.
굳이 모양새를 따지자면 떡이 된 간계밥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기말고사에 생기부 기록 등으로 정신이 없는 남편과 여전히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혼이 빠진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가 되면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아이 밥을 먹이고 낮잠을 재운다. 그리고 저녁 8시, 아이를 재우고 육퇴를 하면 두 사람 다 넋이 빠져서 침대로 기어들어가곤 한다. 그 모습은 마치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나오는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의 한 구절을 보는 듯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시에 나오는 것처럼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는 것.
우리는 자주 깜빡거리고, 자꾸 허둥댄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는데, 그 생각마저도 안 하고 사는 요즘이다. 그저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전우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잘 살아있구나 할 뿐이다.
휘뚜루마뚜루 만들어 먹는 간계밥,
휘뚜루마뚜루한 인생.
덜컹이는 기차에 몸을 싣고 짜인 일정표대로 움직이며 쉽게 쉽게, 대충대충 그렇게 지리한 나날을 보내길 몇 날 며칠.
이렇게 떡이 된 간계밥으로 대충 허기나 때우며 살고 싶지는 않다. 기본에 충실한 맛있는 간계밥이 될 수 없다면, 버터든 조리김이든 김치든 치트키가 될 만한 것들을 함께 곁들이고 싶다. 이는 바삭거리다 못해 파삭 마른 잎처럼 되고 싶지 않은 자들의 최후의 발악이자 최선의 용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날부터인가 짬짬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어떤 날은 함께 영화를 보고, 또 어떤 날은 가지도 못하는 여행 계획을 세워 주저리주저리 서로에게 읊는다. 삶의 진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시답잖은 농담들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며 머릿속을 가볍게 비워낸다.
‘무언가’의 정체는 수도 없이 바뀐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맛있는 간계밥이 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열심히 기름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반짝이는 날을 위하여.
조금 더 맛있어질 인생을 위하여.